[성명]‘노동해방연대’가 진정 싸워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 노동해방연대의 글 “전철연 비대위의 혁신투쟁을 지지하며”(3월 29일자)를 비판한다
민성노련
민성노련은 최근 성노동자운동을 축으로 철거민노동자운동에 결합하고 있다. 당국이 2007년까지 집창촌 폐쇄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과 연대, 현장 투쟁에 동참 중이다.
최근 ‘전철연’을 비판하는 관련 인사 및 단체의 문건을 보는 우리 민성노련의 심정은 난감하다. 무엇이 어제의 동지들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오산 수청동 사건과 영세가옥주 문제, 상가철대위 등에 대한 반대편 측의 주장은 동의하기는 어려운 대목이 많지만 어느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침묵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생채기를 내고 있는 논쟁의 한 가운데 민성노련이 나서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노동해방연대(http://struggle.jinbo.net/ )가 발표한 3월 29일자 문건 “전철연 비대위의 혁신투쟁을 지지하며”은 우리들로 하여금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노동해방연대의 글 중 문제의 부분을 발췌해 옮긴다.
<”가령 상가에는 노동자들을 악랄하게 착취하고 탄압하는 중소자본가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마석 성생공단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쥐어짜 배를 불렸던 악랄한 중소 자본가들도 자기 매장이 철거당할 위협에 처했을 때 ‘자본가철거민’이 된다. 그리고 성매매 여성종사자들의 인권을 유린해 돈을 벌고 있는 포주들도 정부로부터 철거위협에 받아 ‘포주철거민’이 된다. 이런 자본가들이나 포주가 정부로부터 강제철거를 당한다고 노동자계급이 지원할 수는 없다. 노동자계급이 자본가들 사이의 다툼에 끼어들어 어느 한편을 지지하는 것은 자기무덤을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 사회변혁운동가들은 기득권자들의 정치공학적 용어 거부해야
노동해방연대는 “성매매 여성종사자들의 인권을 유린해 돈을 벌고 있는 포주들”이라고 간단히 규정했다. 글은 사실을 기초로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점에서 노동해방연대는 오류를 범했다.
먼저, ‘성매매’ 용어사용에 관한 문제다.
사회변혁운동을 하고 있는 진보진영의 유력한 단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사회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국내 기득권자들 특히 부르주아 여성주의자들의 정치공학적인 용어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성매매’란 용어는 국제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용어는 여성계가 성매매특별법을 입법하는 과정에서 모든 ‘성거래’를 극악한 범죄인 ‘인신매매’로 통칭하기위해 억지로 만든 말이다.
1993 년 유엔총회의 ‘여성에 대한 폭력의 근절을 위한 선언’ 제2조는 “성적 인신매매(sex-trafficking)’만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1995년 베이징 여성대회에서 채택된 베이징 행동강령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성인 간에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성거래노동(sex-trade working 줄임말 ‘성노동’)과 ‘성매매’는 분명하게 구분 사용해야 한다.
다음으로 ‘인권유린’에 관한 일반화 오류다.
민성노련은 영국 성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IUSW(국제성노동자연대)처럼 한국사회에서는 유일하게 노조(법외)를 건설한 집창촌 성노동자들의 이익단체다. 우리는 나름대로 성노동자들이 ‘인권유린’을 당하지 않게끔 단체협약을 통해 합리적인 분배원칙과 노동시간 및 휴일제를 정하는 등 구체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 보완장치가 100%라고 장담은 할 수는 없지만, 일반 기업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빈도수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포주’ 부분에 관한 곡해다.
우리는 ‘포주’라는 말 대신 국제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성산업인(sex-industrialist)이란 호칭을 사용한다. 이는 우리들이 성노동자로 대접받기 위해서도 마땅한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민성노련의 경우, 성산업인들은 이미 매니저 개념 차원으로 이행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통념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성노동자들에게 주거공간을 임대하고, 취사 및 세탁 등의 일상 업무를 처리한다. 또한 유사시에는 불편한 고객들로부터 성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키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성산업인들은 이와 같은 용역을 제공한 대가로 ‘단체협약’에서 정한 분배를 받는다. 따라서 성산업인들이 성노동자들의 인권유린으로 돈을 번다는 노동해방연대의 생각은 극히 단순하며 문제의 소지가 많다. 다소 복잡한 문제는 복잡한 방식으로 풀 수밖에 없다.
- 성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여성주의자들의 시혜를 거부하는 삶의 주체
우리 민성노련은 부르주아 여성계가 요구하는 명칭인 ‘성매매여성’ 혹은 ‘성매매피해여성’ 대신 ‘성노동자’를 선택했다. 그들의 명칭을 인정하고 그들을 찾아가면 우리는 당장 6개월 동안 월 42만원의 긴급생계비를 받으며 학원을 다닐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거부한다. 이러한 조건은 성노동자들이 처한 엄중한 현실을 타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삶의 주체가 아닌 부르주아 여성주의자들에의 시혜 대상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근무기간은 평균 2년 안팎이다. 때가 되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성노동자들 자신의 판단으로 이곳을 떠난다. 그때까지는 당당하게 일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성노동자 의식’이라 부른다.
지금 성노동자들은 성산업인들과 함께 당국의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인한 압박과 2007년까지 집창촌 폐쇄계획으로 인해 생존권과 주거권 상실 등의 위기에 처해 있다. 주지하다시피, 오늘 성노동자들의 발생과 위기는, 이미 노동해방연대가 자신의 단체소개에서 노동자의 현실을 진단한 것처럼 “가난과 실업, 불평등과 전쟁, 격화되는 착취와 경쟁”이 그 원인인 노동자의 위기와 본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린 이를 줄여서 ‘빈부양극화’라 말한다.
- 현 전선은 “서민+성노동자+영세성산업인 : 부르주아 여성권력계
성산업인들 중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성매매특별법 이후 기업형이 많은 음성적인 부문으로 이미 진출했다. 이 사회의 온갖 오명과 낙인을 집중적으로 공격받으며 이곳에 남은 성산업인들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을 정도로 경제력이 취약한 계층이다. 이들을 ‘자본가’라 칭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노동해방연대는 성노동자들에게 직접 빨래해주고 밥해주는 사람을 자본가라고 부를 수가 있겠는가.(원한다면 현장을 공개할 의사가 있다.)
성노동자나 영세성산업인 모두가 지금 집창촌 폐쇄로 공멸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기존의 노자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은 무리다. 정확하게 말해 성매매특별법 하에서의 현 전선 구도는 “서민+성노동자+영세성산업인 : 부르주아 여성권력계(여성가족부 및 관련 여성단체)”이다.
지금 부르주아 여성계(일부 소부르주아 포함)는 지난해까지 280여억원, 올해 83억원이란 거액의 혈세를 투입해 성노동자들을 ‘탈성매매’(이 부분은 그들도 이미 포기했다)도 아닌 ‘탈업소’ 시키겠다고 아우성이다. 성노동자들에게 집창촌을 나와 제발 음성 쪽으로 이동해 달라는 말이다. 이들은 여성을 말하지만 기실 권력을 가진 ‘국가’의 얼굴로 우리를 공격한다. 이들은 재개발사업자들과 지자체와 결탁해 불도저로 집창촌을 쓸어버리겠다고 공언한다. 이만하면, 사회과학이론으로 잘 무장된 노동해방연대가 진정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노동해방연대가 “노동자계급이 자본가들 사이의 다툼에 끼어들어 어느 한편을 지지하는 것은 자기무덤을 파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끝까지 ‘자본가=영세성산업인’ 등식을 고집한다면, 민성노련은 노동해방연대를 ‘무덤’을 지나치게 확장 해석하는 기회주의적 단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고집이야말로 빈부양극화의 가장 극명한 산물인 ‘성노동자 운동’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는 유일한 논거이기 때문이다. 항상 “노동해방의 정치는 현장을 기반으로 한 대중적 실천을 통해서만 옳게 발휘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노동해방연대의 실천적인 답변을 기대한다. 우리는 지금 대중현장에서 투쟁 중이다.
2006. 4. 7
민주성노동자연대 (민성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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