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효, 군에 끌려 가 만기제대를 앞두고 쓰러진지 6월 29일로 29년이 되었
습니다. 그의 의대학우 신인식선생과 경북대 민주화 학생운동에 동조적이라고
경북대 수학과 교수직에서 쪼껴난 안재구박사님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비명에
간지 28년만인 2005년 6월에 민주민족통일열사 범국민 추모연대에서 민주화
운동 희생자로 인정받아 문익환목사님을 위시한 350여분 열사들과 나란히
추모제단에 영정이 모셔져 양심시민들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박정희의 압력인지 경북대 높은 자리 선상넘들이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학생을 갖다 바쳤는지 의대생들이 침묵철야농성을 하니 잽싸게 현승효를
제적해 버렸다.
1974년 12월 15일 의대에서 (박희명학장에 이시형학생과장 )제적이 되고
18일날 바로 졸병으로 입영통지서가 날아 왔다. 2월 22일날 의성에서
장정들이 모여 논산으로 간다는데 응할 것인가 불응할 것인가 수없이 생각
해도 결정을 못 내리고 소집일을 하루 앞둔 날 21일도 종일 초조해 하며 온
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그를 보니 천방지축이던 내가 무섭게 냉정해졌다.
군대 가는 거로 결정하라 했다. 수배를 피해 도망질하다 예민한
사람이 피말리다 죽을 것 같았다. 눈 딱 감고 가라고 기다리겠노라
했다. 그 말에 긴장을 확 풀고 안정을 찾는 것 같았다.
달빛이 차겁게 쏘아내리는 겨울 밤, 천지는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고
그 밤 그가 너무도 사랑하는 스승님 주강선생님께서 직접 운전하시는
피아트차로 의성으로 갔다. 사랑하는 동생들 경대의대 간호학과의
백의의 천사들 영순 진미 수남이도 함께 갔다.
그 와중에도 선생님은 짖궂으시게도 갑자기 커다란 렌턴을 꺼내어
불을 환하게 키시고는 뒷좌석에 앉아 왜 저러시나 하는 우리 둘의 손을
확 비추시며 아 그림 좋다 하셨다. 물론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있었지
늦게 의성에 도착하니 작은 촌바닥에 몇 안되는 여관마다 논산 가는
촌놈들로 방이 꽉 차서 낭패해 하는 우리를 잠자코 보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아! 하고 소리 치시더니 <의성의원>으로 차를 확 몰으셨다.
그 의원 원장님이 그때는 미국에 있던 제자의 삼촌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시고.
수인사를 하시고 선생님이 승효씨가 강제입대하게 된 그간의 경위를
말씀해 드리니 원장님께선 숙연한 표정으로 들으시고는 “아무리 그래도
이런 폭력은 있을 수 없다” 하시며 치를 떠시었다.
그날 밤 선생님과 영순이와 진미는 대구로 돌아가고(수남이는 의성 오는
도중에 차가 너무 무겁다고 하시니 자진해서 양보하고 깜깜한 밤에 혼자
차에서 내려 인적이 없는 길을 건너는 수남이가 아직도 가슴에 쨍하다)
원장님 부부께서 가만가만 말씀을 나누시더니 원앙금침에 병풍까지 준비한
정갈한 방을 마련해 주셨다. 독재자의 폭력으로 강제로 헤어지는 우리가
불쌍하셨던지 이 어른들은 우리를 정식부부로 만들어 주시려는 것 같았다
극도의 초조와 긴장으로 그는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하는 것 같아 나는
애가 말라 죽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잠을 좀 잔 것 같은데 옆에서
피를 말리는 듯한 불안함에서 나오는 거친 숨소리에 살짝 들었던 잠이
깨지고 우리는 손은 잡고 있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날이 밝아오니 사모님은 정성스럽게 차린 아침밥을 겸상해서 주시고,
아! 그 어른들이 지금 살아 계실까?
원장님은 그를 빼내 주시려 쉽지않은 일을 단행하시기로 결심을 하시는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사무장을 불러들이고 사무장은 연방 들락날락
하며 보고를 드리고….
항문에 포도당 주사를 놓아 일시적으로 치질상태로 만들어 잘 아는
군의관에게 말해서 귀향조치를 하신다는 거였다. 그때 승효씨는 최대의
예를 다하여 원장님께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이 은혜 어떻게 다 갚겠습니까? 하지만 선생님께 누를 끼칠까도
두렵고 만약에 뜻대로 안되어 입영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서 그냥 제 몸
컨디션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했다.
원장님은 “아니야 해 보는데까지 해 보는거야, 이대로 보낼 수 없어”
하시며 단호한 표정을 하시며 주사를 놓으셨다.
(이날 부터 꼭 넉달 뒤에 우리는 다시 만났는데 포도당 반응은 전혀
나지 않았다며 히히 웃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다 큰 자식이 너무 점잖으면 소외감 느끼신다며 엄마 아부지 앞에서는
개막내이, 팩 성질만 부릴 줄 아는 무식한 내 앞에서는 바보 맹구영구같이
행동하여 맨날 “바보같애” 하면 돌쇠바우같이 낄낄 능글능글 웃고 그랬는데
그 말을 할 때는 눈빛이 얼마나 사려깊은지 그리고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신념을 가진 이에게서만 볼 수 있는 늠름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어
아 남자도 저래 아름다울 수 있구나 싶었다
잘 되어 간다 하시더니 아니나다를까 좀 있다 사무장이 사색이 되어 돌아
왔다. 시커먼 선글라스를 쓴 가죽잠바 아저씨들이 등을 탁탁치면서 괜한 짓
하지 말고 돌아가라 하더라며 벌벌 떠셨다
원장님의 위험한 시도는 입대하는 것을 확인하려고 신병 집결지인 의성
까지 출장 온 가죽잠바부대 정보요원들에 의해서 차단되었지만 그를 우리
품으로 돌려보내 주시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시던 원장님의 모습과
사무장님의 수고는 평생 잊을 수 없고 의인은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을
굳게 믿게 돠었다.
살아 계실까? 지금 그분들이 가슴 사무치도록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