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에게

[편지]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에게

반갑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님^^

민성노련이 지적한 국가인권위(인권위)의 에이즈예방법개정안 권고에 대하여 <인권운동사랑방>과 <민중언론 참세상>에 올린 미류 님의 글 “성매매여성의 건강권, 국가를 넘어 날아오르길”을 잘 보았습니다.

미류 님께서 우리 민성노련의 주장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 점에 감사드리며, 좀 미진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한해 보충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에이즈 검진이 반드시 강제검진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매매특별법처럼 실효성 없는 ‘도덕적 시각’으로만 접근한다면 결과적으로 에이즈가 무방비 상태로 방치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성노동자나 성구매 고객을 포함해 국민들 모두에게 에이즈는 합리적인 ‘의학적 관점’(예방과 치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민성노련의 입장입니다.

미류 님은 글에서 “성매매여성들에 대한 강제검진은 남성들의 안전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정책인 만큼 여성인 나로서는 더욱 불쾌한 정책”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뒤에서는 “직장에서 작업환경으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 악화를 예방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검진을 시행할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하는 것처럼, 성매매여성들에게도 검진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말씀하셨습니다만.

큰 틀에서는 민성노련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미류 님은 “여성인 나로서는 더욱 불쾌한 정책”이라고 강제검진의 성격을 규정했습니다. 민성노련이 주장했던 것처럼 성노동자들에게 ‘검진’은 다소 귀찮아 할 수는 있어도 직업 특성상 우리들의 몸을 보호하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은 우리를 찾는 고객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기에 이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따라서 만약 불쾌해야 하다면, 이해 당사자인 우리 성노동자들이 불쾌해야 하고, 고객들이 불쾌해야 하고, 에이즈에 노출된(노출될) 국민들이 불쾌함을 말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합니다. 다소 외람된 표현입니다만 적어도 우리가 보기에 미류 님은 에이즈 검진과 관련하여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적은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는 제3자가 느끼는 막연한 ‘불쾌함’과 사회적으로 실현 가능한 ‘법’은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인권위가 우리 성노동자들의 인권침해를 고려해 권고했다면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공청회 같은 사회공론화 과정이 먼저 있었어야 했습니다. 비단 성노동자 이슈만이 아니라 왜 항상 제도에서 바닥 민심은 소외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법이 민심으로부터 나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회 상층부 인사들로부터 강요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기득권자들이 정치적으로 어떤 이익을 노리거나 혹은 그 알량한 도덕으로 국민들을 함부로 가르치려는 권위주의적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미류 님께서는 일반 직장에서 사업주들에게 부과하는 정기 건강검진 의무처럼 우리 성노동자들이 검진을 요구할 권리에 대해 지지를 보냈습니다. 민성노련은 이 지점에서 미류 님의 비유가 문제해결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님의 표현처럼 우리들의 ‘건강권이 국가를 넘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제도적인 보장이나 혹은 암묵적으로라도 인정되는 대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준비는 자발적으로 존재하는 성노동(일/직업)에 대한 명백한 인식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권위의 이번 권고에서 문제가 많은 미 부시행정부의 성매매 금지주의를 엿보게 됩니다. 부시는 브라질 정부에게 에이즈 보조금 4800만달러(약 480억원)를 미끼로 성매매 비난 서약을 유도했지만 룰라 대통령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지요. 브라질은 현재 성적 순결보다 콘돔 사용을 중요시하면서 효율적인 에이즈 퇴치운동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미류 님은 “민성노련이 ‘고객의 건강을 위하여” 검진에 응한다는 말에서 국가의 성매매여성강제검진의 논리를 엿보며 멈칫하게 되고 강제검진폐지가 “주류여성계의 음모가 아닌지’ 우려하는 그녀들의 목소리에 순간 아득해진다”고 걱정했습니다만, 이 점은 그리 우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인도의 두르바위원회(DMSC) 소속 성노동자들이 고객들을 처벌하지 말라고 당국을 상대로 강력하게 시위하는 사실에서 보듯, 특히 개발도상국의 대다수 가난한 성구매 고객들은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발언할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이는 유교적인 문화에 익숙한 한국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성노동자들을 찾는 ‘고객’을 배려하는 일은 최소한의 상식으로 보더라도 그들과 직접적인 관계에 놓인 우리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여기에 미류 님이 굳이 국가의 강제논리에 갖다 붙이는 건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류여성계에게 집창촌 폐쇄가 초미의 관심사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그 좋은 선물(?)이라고 내놓은 ‘에이즈 강제검진 삭제’라는 권고가 집창촌에서 현실화될 경우, 고객들이 볼 때(일반 국민들이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창촌은 ‘검진 사각지대’로 인식돼 결과적으로 성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완전히 상실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홍글씨’를 말씀하셨는데 이보다 더 심한 ‘주홍글씨’가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미류 님은 마무리 글에서 우리 민성노련을 향해 “이제 발을 떼어 그녀들과 만날 자리는 ‘여성의 건강권’을 얘기할 수 있는 자리이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고 말했습니다. 바라는 바입니다. 언제든지 만나서 모든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여성의 건강권’에서 더 나아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간의 건강권’도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또 건강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확보해야 할 ‘생존권’과 ‘주거권’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나눌 얘기가 너무 많습니다. 미류 님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기대하며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7. 3. 16

민주성노동자연대 (민성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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