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레랑스론에 대한 전면적 비판! <관용 :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br><br>

<align=”center”> 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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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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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국내 최초로 출간되는 본격적인 똘레랑스 비판서!<br><br>
* 과연 똘레랑스는 우리 시대의 정치적 해법일 수 있는가?<br><br>
자유주의 관용 정치의 탈정치화 효과를 분석하면서 정치적인 것의 재구축을 역설한다.

이주민, 여성, 동성애자, 흑인, 유대인, 무슬림에 대한 관용은 제국의 지배적 규범에 대한 도전을 견제하고 봉쇄한다!<br><br>
◎지은이: 웬디 브라운 ◎옮긴이: 이승철 ◎출판일: 2010년 2월 22일 <br>
◎판형: 변형 신국판(145×215) ◎쪽수: 344쪽 ◎정가: 18,000원 <br>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023-7 ◎도서분류 : 카이로스총서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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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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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우리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의 원인을, 불평등과 부정의가 아닌 “불관용”에서 찾게 된 것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회적 변화나 평등이 아닌 개인과 권력의 관용을 호소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일까? 웬디 브라운의 『관용:다문화 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상세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정치이론가 중 한 명인 저자는, <u>우리 시대의 윤리적 이상이자 선으로 칭송받는 관용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고, 최근 20여 년 간 전 세계적으로 부흥한 관용 담론이 생산하는
탈정치적
효과에 대해 상세히 파헤친다.</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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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출간의 의미<br>

다음과 같은 점들이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을, 우리 시대의 다문화주의와 정치, 민주주의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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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문화적 관용”의 탈정치성에 대한 문제 제기<br><br>
오늘날 <u>“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용”은 우리 사회의 다문화화로 인한 각종 문제들의 궁극적 해결책으로 이야기되고 있다.</u> 관용론자들은 인종차별이나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 등의 문제가 서로 다른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관용적 태도의 부족 때문에 발생하며,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경험과 노력을 통해 관용적 감수성을 함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u>이러한 표준적 관용 담론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을 개인의 태도와 감수성 차원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있다고 반박한다.</u> 더 나아가 <u>관용 담론은
차이를 가진 소수자들을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차이를 정부나 지배 문화로부터 “관용 받아야 할” 수동적 주체로 재현한다.</u> 이 책은 오늘날 보편적 선의 외양을 한 다문화적 관용 담론의 이면에 놓인 탈정치화 효과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 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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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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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슬람에 대한 배제와 테러와의 전쟁은, 야만에 맞선 문명의 이름하에 행해지고 있다. 대체로 <u>서구 문명의 산물로 간주되는 관용은, 이러한 제국주의적 행태들을 정당화하는 핵심적 기능을 담당한다.</u> 서구 및 선진국 국가들의 문명은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반면, 이슬람을 비롯한 후진적 국가들의 문명은 불관용적이고 편협하다. 따라서 불관용으로 고통 받는 후진 국가들의 민중들을 “해방”시키는 것은, 이제 서구의 정의로운 행위이자 문명사적 임무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흔히 <u>폭력을
억제한다고
이야기되는
관용은, 관용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식별하고 이 관용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난 대상들에 대한 폭력적 조치들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u>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9/11 이후 관용 담론이 어떤 식으로 문명화된 서구와 야만적 이슬람을 대립시키고, 서구의 자유주의적 제국주의를 정당화해 왔는지를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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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로운 정치적 기획에 대한 촉구
<br><br>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은 <u>관용 담론이 오늘날 정의와 연대의 가치에 기반한 정치적 기획들을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지</u>를 조명한다. 관용 담론은 특정 집단의 차이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자 공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논의될 사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될 수 없는 고정된 정체성으로 파악한다. 이제 우리는 “너와 나는 다르다”라는 선언 아래 서로 간의 차이를 관용할 수 있을 뿐, 연대의 가치 하에 새로운 공통성을 생산하고 공동의 행동을 전개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저자는 관용의
이러한
분할 효과를 비판하고,
권력에 대한 분석과 연대 및 민주주의의 가치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적 대항 담론들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점에서 『관용: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은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정치적인 것과 보편성에 대한 정치철학적 논의들과 긴밀히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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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의 핵심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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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똘레랑스론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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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995년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출간되면서 그의 ‘똘레랑스론’이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을 얻게 되었다.</u> (홍세화는 최근 2000년에 출간했던 『왜 똘레랑스인가』(필리프 사시에 지음, 상형문자, 2000)을 『민주주의의 무기, 똘레랑스』(이상북스, 2010)라는 제목으로 직접 번역하여 다시 펴내며 ‘똘레랑스’가 우리 사회에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u>“9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혜성같이 등장해 대중화되었던 “똘레랑스” 담론이 어쩌면 당시 막 자리 잡고 있었던 새로운 자유주의적 통치를 보충하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u> 80년대를 특징짓던 “전쟁 담론”의 빈 공간을 메우며 진보주의자들의 언어로 자리 잡았던 “똘레랑스”는, 어쩌면 사회의 보편적 적대를 부인하는 동시에 이러한 적대를 전면에 내세우는 급진적 담론들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던 자유주의적 통치와 일종의 공모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옮긴이 후기, 337쪽)
<br><br>
■ 저자는 푸코의 방법론에 따라, ‘관용’ 담론의 계보학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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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border=”1″ width=”554″ height=”310″ bordercolor=”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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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tr>
<tr>
<td width=”178″ bordercolor=”white”>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역설한 <br>존 로크

</td>
<td width=”168″ bordercolor=”white”>

신교도에 대한 불관용의 폐해를 지적한 볼테르

</td>
<td width=”186″ bordercolor=”white”>

2010년 미국에서 관용 승리의<br>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br>버락 오바마

</td>
</tr>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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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이후 존 로크의 관용론<br>“서구 사회에서 통치의 원리로서의 관용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5~16세기 이단자의 처우와 관련해서였다.…물론 <u>자유주의적 관용의 기원이라고 할 만한 여러 원칙들이 등장한 시기는, 르네상스 시기보다는 종교개혁 시기라고 할 수 있다.…종교개혁 이후 가장 대중적으로 관용의 원리를 정식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존 로크였다. </u>로크는 1689년 영국의 왕위 계승자를 둘러싸고 종교 간의 논쟁이 한창 벌어지던 당시, 『관용에 관한 편지』를 익명으로
출판하였다.…이
『편지』에서 로크는 단지 관용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u>정치, 사회와 종교적
삶을
구분할 것을 주장</u>하였다.
…로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러므로 자기 영혼을 돌보는 일은 각자에게 달려 있으며, 각자에게 맡겨져야 한다.”(405) 이러한 선언은, 장차 근대성의 상징이 될 개인적이고 사적인 신앙인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다.…공동체 내의 다양한 믿음들은, 이제 그 믿음이 어떤 공적 중요성도 없음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장 관용:권력의 담론, 66~69쪽)
<br><br>
볼테르의 『관용론』<br>18세기 초반 프랑스의 계몽주의자였던 볼테르는 신교와 가톨릭교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당시 상황에서 벌어진 한 신교도 가장(칼라스)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하였다. 종교적 편견에 의해 조작된 칼라스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마음먹은 볼테르는 이 책을 통해 광신과 편견에 의한 진실의 왜곡, 무자비한 고문, 사형 등 야만적 형벌 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동서양의
역사와 성서 등을 뒤져 불관용에 대한 반론의 논거를 구체적으로 찾아나간다.
그는 <u>불관용의 폐해를 지적하며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었다.</u> 개인의 양심과 믿음에 기반한 신앙에 대한 관용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한 세기 전 로크의 주장과 볼테르의 관점은 일맥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의 관용 담론<br>
“최근 들어 다문화주의 관용 담론이 부흥하면서<u>, 개인보다는 집단에 기반한 관용 개념―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특정한 집단에 귀속된 개인에 대한 관용 개념―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 같다.</u>…근대 초기, 종교적 이견이나 양심의 자유에 적용되었던 관용은, 이제는 종족, 인종, 민족, 섹슈얼리티의 문제 등에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u>관용이 종교적 믿음이나 타인의 신념에 적용되었던 시기, 즉 관용이 믿음을 사사(私事)화함으로써 국가 권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을 때의 관용은, 종교 및 양심의
자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라는 평등 개념과 긴밀히 연결</u>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근대 유럽 역사에서, 관용은 종교의 자유와 치환 가능한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초기 자유주의자들이 정치적 평등의 조건으로 정식화한 도덕적 자율성과도 별 문제없이 수렴해 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관용은 평등과 동의어는 아니었으며, 종교 간의 실질적인 평등을
목표로 삼지도 않았다.) 그런데 <u>관용의 대상이 특정한 속성을 갖춘 개인들이나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정체성들로 변하게 되면,…관용은 평등에 대한 자유주의적 실천의 한계를 은폐하고 그것을 보충하면서, (스스로를 완벽한 것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자유주의적 평등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u>” (2장 관용:권력의 담론, 72~75쪽)
<br><br>

<span style=”font-size:10pt;”>■ 다문화시대에 관용론이 갖는 정치적 효과를 면밀히 분석한다. </span><br><br>
관용은 갈등과 불평등을 포장하고 관리하는 대표적인 ‘탈정치화’ 기제로 기능한다. <br>
관용은 차이와 정체성을 존재론의 수준으로 물화하고, 극복할 수 없는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여,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구조적 원인을 은폐한다. 또한 차이에 대한 묵인과 갈등 그리고 적대행위의 회피를 유일한 대안으로 보며, 기존의 체제를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u>관용은 필연적으로 운동을 침묵시키며 실질적인 도전과 저항을 방해한다.</u>

<span class=”개요 4″ style=”line-height:200%;”>위기에 처한 국가 권력을 강화하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span><br>“오늘날 관용 담론은…국가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국가 권력을 확장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현대 국가는 한편으로는 세계화로 인한 주권의 약화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표방해 왔던 보편성의 위기로 인해 곤란에 처해 있는데, 관용 담론은 이러한 <u>위기에 처한 국가를
강화시키고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u>하기도 한다. (4장 관용:통치성―보편주의의 쇠퇴, 국가 정당성, 국가
폭력, 142쪽)

관용은 중동과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착취와 유럽의 적대행위를 정당화한다. <br>
“관용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오늘날 국제적인 차원에서 서구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담론으로 기능한다.…관용을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하고 비자유주의 체제를 근본주의와 동일시하는 담론은, 결과적으로 서구의 도덕적 우위와 비(非)서구에 대한 서구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결국 <u>서구를 문명의 편에서 “불관용”을 규제할 수 있는 전도사로 만들고, 이는 현재 해방(liberation)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귀결</u>된다.
이런 식으로 관용은 어느새 21세기 서구 제국을 정당화하는 핵심적인 용어가 되었다.” (2장 관용:권력의 담론, 77쪽)

미국 사회의 생생한 사례들을 통해 관용의 기만적 효과를 폭로한다.<br>“지난 대선에서 <u>버락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이 추구하는) “관용의 승리”라는 이름하에 찬양되었고, 이어서 오바마가 자신의 취임식 기도를 동성애에 반대해 온 복음주의 목사와 동성애자 가톨릭 신부에게 동시에 맡긴 것 역시, “관용의 표현”이란 이름으로 옹호</u>되었다. 첫 번째 사례에서 사람들이
관용의 이름으로 흑인의 종속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흑인들은 이 승리를 관용한 백인들의 미국에 다시 종속된다. 두 번째 사례는 편견의 관용과 동성애자를

향한 관용을 동등하게 취급하면서, 시민권에 관한 복잡한 정치적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 9쪽) <br><br>“유엔 회의장이나 국제 인권 운동 속에서, 관용은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근본적인 요소로 언급된다. 유럽에서, 관용은 제3세계 이민자들과 집시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유대인과의 갈등에 대한 적절한 처방전이자, 발칸 반도 분쟁의 해결책으로 각광받고 있다. <u>미국에서, 관용은 다양한 인종의 이웃들을 한데 묶어주고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게 해 주는 방책이자,
군대 같은 조직의 동성애 혐오에 대한 적절한 처방전, 그리고 늘어만
가는 증오 범죄에 대한 해독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관용은 2000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이자 독실한 유대교인이었던 리버만(Joseph Lieberman) 지지자들이 내건 슬로건이었으며, 조지 W. 부시가 개인의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행정부 각료를 선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용한 단어이기도 하다.”</u> (1장 관용:탈정치화 담론, 19쪽)
<br><br>“이곳은 일단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장소로, 벽에는 <책임지기>라는 제목을 단 거대한 열 개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u>여성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는
여성들의
“밤길 되찾기” 시위, “관용 깃발”을 만들고 있는 초등학생들, 반反유대주의적 폭력에 항의하는 몬태나 주의 시위, 노숙자 지원 캠페인, 세자르 차베스를 기념하는 법정 공휴일 지정, KKK단에 맞서 관용 기금을 모금하는 “레모네이드 프로젝트”, 분쟁지역의 청소년들을 후원하는
“평화의 씨앗”, 유대인과 흑인을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인 “이해하기”, </u>1990년 미국의 장애인법 제정,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안네 프랑크와 보스니아 내전 생존자인 즐라타 필리포비치(ZlataFilipovic)에 대해 배우는 롱비치 고등학생들의 모습.” (5장 관용:박물관의 전시물―<시몬 비젠탈 관용박물관>, 213~214쪽)
<br><br><br>

4. 지은이·옮긴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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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border=”0″ cellpadding=”1″ cellspacing=”1″ width=”431″ height=”168″>
<tr>
<td width=”417″ height=”166″></td>
<td style=”text-align:left; vertical-align: bottom” width=”7″ height=”166″> </td>
</tr>
</table>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의 저자 웬디 브라운]<br><br>
|지은이|<br>
웬디 브라운 (Wendy Brown)<br>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맑스와 니체, 푸코 등을 이론적 자원 삼아, 후기 자유주의의 정치적 조건들과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분석한 일련의 독창적 저작들로 주목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남성성과 정치:정치이론의 여성주의적 독해』(1988),『상처의 상태: 후기 근대의 권력과 자유』(1995), 『역사 바깥의 정치』(2001),『경계에서:지식과 권력에 관한 비판적 에세이』(2005) 등이 있으며, 자넷 할리(Janet Halley)와 함께 『좌파 법치주의/좌파적
비판』(2002)을
편집하였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정치합리성 비판과 주권 개념의 변화를 추적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2009년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자끄 랑시에르 등 대표적인 현대 정치철학자들과 함께 『어떤 상태의 민주주의?』를 불어로 출판하였다.

|옮긴이|<br>
이승철 (Lee Seung-Cheol, 1980~ ) <br>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생정치와 폭력, 자유주의적 통치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푸코의 맑스』(갈무리, 2004)가 있다. <br><br><br>
5.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차례<br><br>
한국어판 서문<br>
감사의 말<br><br>
1장 관용:탈정치화 담론 017<br>
관용:권력의 담론, 통치성의 실천|관용과 탈정치화 혹은 탈정치화로서의 관용<br><br>
2장 관용:권력의 담론 057<br>
계보학|관용의 대상들:믿음, 진리, 정체성<br><br>
3장 관용:대리보충―“유대인 문제”와 “여성 문제” 091<br>
유대인|여성|평등과 관용<br><br>
4장 관용:통치성―보편주의의 쇠퇴, 국가 정당성, 국가 폭력 135<br>
동성 결혼|이슬람 관용하기<br><br>
5장 관용:박물관의 전시물―<시몬 비젠탈 관용박물관> 179<br>
<관용박물관>의 역사|<관용박물관> 관람기|탈정치화로서의 관용, 관용의 탈정치화<br><br>
6장 관용의 주체들:문명인 ‘우리’와 야만인 ‘그들’ 243<br>
프로이트|자유주의와 그 타자<br><br>
7장 관용:문명 담론 283<br>
문명 담론|관용 교육|관용을 베풀기/관용을 철회하기|<br>
관용과 자본 그리고 자유주의적 제국주의<br><br>
옮긴이 후기 329<br>
찾아보기 341

<br><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