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조무사 관련 법 개정 논란에 대해 정부는 총체적 간호, 간호 보조, 간병 인력 정책으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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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 논란

지난 8월 6일 양승조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간호조무사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두고 대한간호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중소병원협의회 사이에 논란이 많다. 이 개정안은 간호조무사의 명칭을 간호실무사로 변경하고, 간호조무사가 되려면 현재 시도지사의 자격 인정만 받으면 되는 것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이 법 개정을 통해 간호조무사의 사기를 진작하고, 간호조무사에 대한 효율적인 수급관리 및 간호인력난을 해소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법이 발의되자 대한간호협회는 이는 중소병원 등에서 간호 인력을 간호조무사로 대체하기 위한 법 개정안이라고 규정하고, 이렇게 되면 의료서비스 질이 떨어지고, 의료 현장의 혼란만 불러올 뿐이라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이에 대해 대한중소병원협의회는 정확한 보건의료 종사 인력 파악은 적절한 의료정책 수립에 필수요건인데도 이를 반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지적하며 법 개정안에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간호노동에 대한 현실

이와 같은 논란이 불거진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무책임한 의료 인력 행정 부재 때문이다. 양질의 의료서비스 공급을 위해서는 적절한 양질의 의료 인력 양성 및 배분에 대한 정책이 필수적이다. 양질의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력이 적정한 수만큼 다양한 지역과 의료기관에 적절히 분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까지 관련 대학교의 학생 정원 정도만 신경 썼지, 이에 대한 총체적 실태 파악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 적이 없다. 그 결과 한국은 지역별, 의료기관 종류 혹은 규모별 의료 인력 종사 양상의 편차가 너무 심하다. 수도권, 대형병원에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과 의료기사 쏠림 현상이 심한 반면, 비수도권, 중소병원은 상시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인력난은 특히 간호사 직종이 심하다. 지역간, 병원간 임금 격차, 노동 조건 차이 등이 심하다보니 신규 인력들은 수도권, 대형병원에 집중되고, 비수도권, 중소병원은 경력 간호사 구하기도 하늘에 별따기다. 하지만 수도권, 대형병원에 있는 간호사들도 최근 병원의 인력 부족으로 노동 강도가 강화되다보니 채 2-3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이들이 태반이다. 간호 대학을 졸업해 수도권, 대형병원에 취직했지만, 일이 너무 힘들어 2-3년만에 퇴직하고, 비수도권, 중소병원에 들어가거나 아예 간호사직을 포기하게 되고, 비수도권, 중소병원에서도 결국 상대적 저임금, 높은 노동 강도에 시달리다 간호사 직종을 포기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년 신규 간호사 면허 취득자가 적지 않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신규 간호사 배출 속도에 비해 병원을 그만두는 간호사 포기 속도가 훨씬 빠른 까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병원 간호사의 임금 수준과 노동조건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리고 간호사의 업무 영역을 명확히 하고 간호사 업무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간호사들이 병원에 근무하면서 경력을 쌓아가 발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병원 정책 및 간호 인력 관련 정책에 간호사 당사자의 참여 기제를 확충해야 한다. 더불어 간호, 간호 보조, 간병 업무 영역을 명확히 하고, 각각의 업무를 어떤 인력이 어떠한 수준의 교육, 지식, 기술 수준을 가지고 할 것인지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총체적 마스터플랜을 가져야 한다.

 

간호조무사의 열악한 노동 조건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간호조무사를 간호실무사로 변경하고 이를 보건복지부 장관 면허로 바꾸는 것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의료서비스 질 보장을 위해서는 의료 인력의 수도 중요하지만, 의료 인력의 교육, 지식, 기술 수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선진 외국에서 의료 인력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교육, 지식, 기술 수준을 요구하고 있고, 이러한 조건을 충족한 이들에게만 면허를 주어 관련 행위에 종사하게 하고 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간호실무사라는 직종 면허를 신설하기 위해서는 간호실무사 교육 과정의 표준화와 질 향상 및 관리, 간호사와 간호실무사의 업무 영역 규정 및 조정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의 질 관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사설 학원에서 진행되는 간호조무사 교육 과정으로는 적정한 교육, 지식, 기술 수준을 가진 의료 인력을 길러내기 힘들다.

하지만, 간호조무사의 처우 개선을 위한 목소리는 경청하여야 한다. 간호조무사는 협회 추산 50여만 명의 인력이 있다고 하고, 현재 병원,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현재 다수의 의원급,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필요한 정도로 간호사 인력을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임금수준,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그러므로 병원에서 필수불가결한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는 간호조무사의 임금 수준 및 노동조건은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면허 제도 개선을 통해서일지에 대해서는 숙고가 필요하다.

 

정부의 무책임한 의료 인력 정책

논란이 벌어지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정부가 의료 인력 공급 및 배분 정책에 대해 손 놓고 있는 동안 의료 현장은 ‘필요’와 ‘요구’에 따라 급변했다. 그리고 이제는 ‘무대책의 대책’ 속에 형성된 현실이 합리적인 대안적 논의를 어렵게 만들만큼 정책을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은 것은 아니다. 정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역별, 의료기관 규모별 간호사 수급 불균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병원 내 다양한 간호 혹은 간호 보조 업무, 간병 업무를 어떻게 규정하고, 의료의 질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적정한 재정 지출로 최대의 질을 담보할 수 있도록 간호, 간호 보조, 간병 인력을 구성하도록 권고하고, 거기에 맞는 면허, 자격증 시스템을 운영할 것인지, 이제는 정부가 이러한 난제에 답을 내야 할 때다.

 

2012. 9. 20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