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서울대병원당국과 노동조합이 노사협의 끝에 의료급여환자의 선택진료비(특진료)를 경감하는 안에 합의했다. 이는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의 환자부담을 가중시키는 선택진료비 전체 폐지 요구에 대한 절충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병원측에서는 의료급여환자의 선택진료비 경감만으로도 연간 20억의 손해가 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울대병원 같은 대표적 국립의료기관이 극빈층인 의료급여 환자에게도 특진료를 부과하여 의료비 부담을 지웠으며, 그 부담액이 최소 연 20억원이 넘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국의 의료보장제도는 의료급여 1,2종을 합쳐 국민 중 하위 3.1%를 대상으로 의료비를 받지 않거나 일부를 경감하고 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계하고 있는 빈곤층이 12%인 것에 견주어 보면 의료급여 대상자들은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극빈층이라는 의미다. 요약해말하면 한국의 대학병원들은 극빈층에게 따로 특진료를 받고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장 가난한 극빈층을 대상으로한 선택진료비 전면 페지를 요구하며,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선택진료비 등 건강보험 비적용 본인부담 의료비는 의료영리화를 강화시킨다.
1963년에 시작된 선택진료비의 전신인 특진비는 처음에는 국립대병원의 적자보존용으로 진찰료에만 부과되었지만, 이제는 모든 병원으로 확대되었고 또한 진찰료, 입원료, 마취 처리료, 검사비용 등 거의 모든 항목에 55%-100%까지 부과되게 되어 제한요소도 없어졌다. 이 때문에 선택진료비가 병원의 수익 증대 도구로 전락한지는 오래되었고 국민들의 숱한 비판을 받아왔다. 2009년 말 기준으로 선택진료비 추정치는 총 1조1113억 원에 이르며, 전체 상급병원 비급여진료비의 31%에 육박한다.
선택진료비 등의 비급여 진료비를 통해 대형병원들이 더욱 커졌고, 대형병원들의 외래진료가 늘어났으며, 의료공급체계의 양극화는 가중되어왔다. 다시말해 선택진료비는 현재의 기형적 의료체계와 의료비 증가를 낳는 구조적 원천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의료비 증가와 과잉진료의 온상이 될 수 있어 시급히 폐기되어야 할 비급여 진료 중에서도 선택진료비는 모든 의료행위에 임의로 가산되기 때문에 즉시 폐기되어야 한다. 하물며 가장 가난한 환자들인 의료급여환자에게까지 선택진료비를 부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 의료에서 ‘선택’은 돈에 따른 치료의 차이를 의미해서는 안된다.
환자의 상태와 조건에 따라 최선의 의료기술과 처치, 의약품 등이 제공되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현재의 ‘선택’ 진료비는 환자들의 경제적 상태에 따라 마치 ‘최상’의 진료를 환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결국 돈으로 ‘의료의 질’까지 선택하게끔 하여 의료양극화를 제도적으로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돈이 없어 무상으로 진료를 받게 법적으로 보장된 극빈층인 의료급여환자에게조차 돈을 내야만 ‘선택’되는 의료진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돈이 없으면, 소위 대학교수들의 ‘양질’의 진료에서도 배제되어야 하는가? 이 제도는 한 나라의 건강과 의료에 대한 철학을 단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의료접근성을 시장 원리로 제한하려는 선택진료비는 비인도적이고 비윤리적인 제도다. 더욱이 이를 의료급여환자에게 까지 적용한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로 즉각 폐지해야 한다.
셋째. 서울대병원 등의 국립대병원들은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인 대형병원의 팽창에는 서울대병원과 같은 국립대병원이 적정진료를 선도하지 못하고, 사립대형병원과 똑 같은 영리적·상업적 진료행태를 보여왔던 것이 한 몫을 했다. 국립대 병원도 수익증가를 위해 비보험 진료를 늘려왔다는 비난을 계속 받아왔는데,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선택진료비이다. 전국 12개 국립대병원이 2008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선택진료비로 벌어들인 수입은 6053억에 이르렀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조차 공익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은 2010년 선택진료비 수입 540억 원중 48.6%는 주로 의사성과급으로 지급되었다. 부산대병원 등 여타 국립대병원도 그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서울대병원을 위시한 국립대병원은 수익성이 아니라 공익성을 추구하여야 하며, 적정진료에 장애가 되는 선택진료비를 의료급여환자까지 받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돈이 없어 나라에서 무상으로 의료를 제공하는 의료급여환자와 같은 극빈층에게 선택진료비로 또 하나의 경제적 장벽을 만드는 한국의 의료보장제도는 제대로 된 국가 의료보장 제도라고 볼 수 없다.
또한 가난한 환자의 주머니를 털어 대학병원들이 얼마나 더 잘 살겠다는 것인가? 선택진료비 자체가 폐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선 당장 의료급여환자에 대한 선택진료비부터 폐지되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선택진료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여 의료급여환자에게는 선택진료비를 징수할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하고 규제에 나서야 한다. 입만 열면 서민을 외치는 현 정부가 대형 재벌병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또는 국회가 이번 회기내에 의료법 46조를 개정 또는 폐지하여 선택진료비 자체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우선적으로 의료급여환자에 대한 선택진료비 징수를 금지할 수 있다. 대선주자들과 여야 구분없이 말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대형병원들이 극빈층 환자들에게 특진비까지 받는 ‘야만’부터 막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2012.9.21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