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와 의료개혁 : 복지국가 무엇이 실종됐나

미국에서도 대통령 선거 유세전이 한창이다. 이번에도 4년 전 선거와 마찬가지로 ‘오바마케어’라고 불리는 오바마의 의료개혁안이 주요 이슈 중 하나다.

오바마의 의료개혁안은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 3천1백만 명을 의료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시키는 것이 골자다. 2009년에 법안은 통과됐다.

그런데 아직까지 시행되지 못한 까닭은 공화당이 의료보험 의무가입과 가입하지 않는 사람에게 벌금을 물리는 것은 ‘국가가 브로콜리를 강제로 구입’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위헌을 주장했고, 올해 6월에서야 미 대법원에서 겨우 5 대 4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2014년부터 시행될 의료보험 의무가입을 위한 법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공화당의 롬니가 당선하는 즉시 의료개혁을 무효화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사실 미국 의료개혁의 성사 여부가 아니다. 오히려 오바마의 의료개혁이 진짜 의료개혁인지가 문제다. 오바마 ‘의료개혁’의 내용은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당연한, 공적 전국민의료보험제도 도입과 의무가입이 아니다. 오히려 ‘민영’의료보험에 대한 의무가입을 말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미 공화당이 ‘브로콜리 강제구매’에 비교하며 왜 국가가 민영보험상품을 구매하게 하냐고 딴지를 걸 만도 하다. 게다가 이 안은 애초 오바마가 내건 공약과도 다르다. 오바마의 공약은 국민들이 민영의료보험과 정부가 운영하는 공적건강보험 중에 하나를 선택(퍼블릭 옵션)하도록 해 민영보험기업의 이윤 추구를 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갖고 있었다.

4년 전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 오바마는 “왜 연방정부 공무원들은 정부가 운영하는 공적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데 국민들은 못 하는가” 하고 물으며 “국민들도 공적의료보험과 민영의료보험 중에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고 호기롭게 주장했다. 그러나 이 공적보험 선택 정책은 거대 보험회사들의 격렬한 반대로 후퇴하고 말았다.

오바마 집권 초기로 돌아가 보자. 2009년 12월 24일 상원에서 의료개혁법안이 통과됐을 때  오바마는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전국민 건강보험 도입 시도가 실패한 이래 1세기에 걸친 싸움을 끝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고 말한 바 있다.

후진적

의사당에 휠체어를 타고 나온 로버트 버드 민주당 최고령 상원의원은 “이 표는 내 친구 테드 케네디(고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 후 ‘예스’라고 외쳤다. 미국에서는 이 순간이 역사적인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국민들에게 이 장면은 미국 사회보장제도가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보여 주는 순간이었을 뿐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물론이고 존. F. 케네디가 추진했던 의료개혁은 오바마가 추진하는 의료개혁과는 전혀 다른 공적 전국민 건강보험 도입이었다. 당시 여기에 대항해 내놓은 리처드 닉슨의 공약이 바로 공ㆍ사보험의 선택, 즉 민영의료보험 혹은 정부 운영 의료보험에 대한 의무가입이었다. 다시 말해 오바마가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그것도 지키지 못하고 후퇴한 공약이 바로 미국인들이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닉슨의 정책이었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오바마의 ‘역사적인’ 의료개혁은 1960년대 공화당 정책보다도 못한 ‘의료개혁’일 뿐이다.

왜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오바마는 전국민의료보험 도입 운동(PNHP)의 대표들을 아예 의료개혁 논의 테이블에 초청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공적보험과 민영보험을 경쟁시키자는 안 — 퍼블릭 옵션 — 을 포기하면서는 이를 핵심적으로 여기는 민주당 내 ‘진보파’에게 공개적으로 맹공을 퍼붓기까지 했다.

미국의 대중이 보수적이 된 것일까? 오바마가 공적보험안을 포기한 후 여론조사는 오바마의 의료개혁안에 대한 찬반이 뒤집어져 반대표가 더 많아졌음을 보여 준다.

이에 대한 답은 1960년대와 현재의 미국의 진보적 사회운동의 존재와 조직화 수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60년대 미국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대중운동이 매우 활발했던 시기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그나마 현재 의료보장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메디케어(노인의료보험)와 메디케이드(빈민층 의료보호)가 도입됐다. 이후 미국 사회운동은 내리막 길을 걸었고 이에 따라 민주당의 사회보장정책도 같이 내리막 길을 걸었다.

사회보장제도의 역사는, 설사 어떤 복지제도가 보수정당에 의해 도입된다 하더라도 진보적 대중운동이 그 동력이었음을 보여 준다. 비스마르크 시대가 대표적 예다. 흔히 비스마르크를 건강보험제도와 산재보험제도, 연금제도 등의 사회보장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싶어 도입한 것이 아니다.

동력

유럽 전역을 휩쓴 혁명의 파도 속에서 ‘언론과 다수결이 아니라 무기(철)와 탄압(피)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이른바 ‘철혈’ 총리 비스마르크는 혁명을 예방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다. 그가 사회주의자 탄압법(1878)을 입법하면서 동시에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요구를 일부분 수용해 도입한 것이 건강보험제도(1881)와 연금제도(1891)등의 복지제도다.

비스마르크 자신도 1884년 11월 독일제국의회 연설에서 “만일 사회민주당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아무도 그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사회개혁에서 행했던 적절한 진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이를 인정한 바 있다. 독일 최초의 복지제도 도입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세력은 유럽의 혁명, 그리고 계급투쟁을 강력하게 추동했던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과 급진적 노동운동이었다. 이후 복지제도의 역사 또한 고세훈 교수가 말하듯이 1백여 년에 걸친 치열한 “계급투쟁의 역사”다.

오늘날 어떤 복지국가 논자들은 이번 대선에서 복지국가 논의가 실종되고 있다고, 핵심 쟁점이 아니라 하위 쟁점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한다.

예를 들어 김윤태 교수는 “민주당이 무상복지 운운한 것부터 잘못됐다. 복지가 산타클로스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공짜인가. 복지국가에는 돈이 들고, 시민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하고, 이상이 교수는 “대기업과 부유층에게 아무리 많은 세금을 걷어도 국가 차원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다. … 더욱이 이런 방법은 부유층을 사회적으로 경원시하고 공격하는 것이어서 사회통합을 해칠 수 있다” 하고 말한다(‘복지국가 담론 깜짝 실종사건’, 2012년 10월 9일자 <시사인>). 보편증세 담론이 실종돼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가 복지담론의 실종 혹은 보편증세 담론의 실종인가? 내가 보기에 복지담론이 실종됐다는 것도 과도한 주장으로 보인다. 박근혜까지 복지 공약을 내걸고 있는 것은 오히려 현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매우 크다는 것의 반증일 뿐이다.

지금 실종된 것은 누구나 돈을 내자는 보편증세 담론이 아니라, 왜 부자들과 기업들만 배부르고 서민들은 더 못살게 됐는가를 똑바로 묻고 바로 부자들과 기업주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직하게 주장할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이 아닐까?

실종된 것은, 복지국가가 부자와 빈자가 ‘공동구매’를 하자고 사이좋게 합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민중이 지배자들과 자본가에 대항해 누구의 국가인가를 두고 벌이는 투쟁의 결과라는 사실, 그리고 이를 주장할 진보세력이 아닐까?

그리고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이러한 진보세력 없이는 누가 대통령이 되고, 집권을 하든 복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것은 ‘진보의 실종’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건강과 대안 부대표)

 

* 이 글은 <레프트21> 91호 칼럼으로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