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비즈니스보다 중요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의 초라한 금연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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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76개 당사국이 참여하는 담배규제세계협약(이하 담배협약) 제5차 당사국 총회가 12일 서울에서 시작됐고, 담배 밀수를 막기 위한 의정서가 채택됐다. 앞으로 담뱃세 인상, 면세담배 규제, 담배 성분 규제 등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이 논의될 예정이다.

그런데 담배총회를 개최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옹색하다. 담배총회 유치는 단순히 행사를 치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4차 당사국 총회를 개최한 우루과이는 담뱃갑의 80%에 그림 경고문구를 넣고, 한 개 브랜드에 한 종류의 담배만을 허가하는 강력한 담배규제 조처를 시행했다. 이로 인해 다국적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에 의해 투자자-국가소송(ISD)을 당했다. 하지만 우루과이 정부는 이러한 정책을 뒤로 물리지 않았다. 담배기업보다 국민의 건강을 우선한 것이다. 우루과이는 담배협약 당사국 회의 개최를 계기로 담배규제 정책의 획기적인 도약을 이루어낸 것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의 금연 성적표는 매우 초라하다. 남자 흡연율은 1998년에서 2007년까지는 66%에서 45%로 연 2.1%씩 감소했으나, 그 이후 증가해서 2010년에는 48%가 되었다. 여자 흡연율도 2007년의 5.4%에서 2010년에는 6.3%로 증가하였다. 아시아의 금연 선진국으로 칭찬받던 한국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많은 나라들이 2003년 담배협약의 제정을 계기로 담배규제 정책을 강화해왔으나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은 2005년 담배협약 비준 이후 담배규제 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었다. 담뱃갑은 중요한 광고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담배협약은 담뱃갑에 ‘마일드’, ‘라이트’ 등의 문구를 금지하되 비준 뒤 3년 이내(한국의 경우 2008년까지) 시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오도문구가 버젓이 사용된다. 또한 담배 앞뒷면의 50% 이상에 경고문구를 넣되 그림이나 사진을 넣도록 권고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올해 12월부터 담뱃갑의 색과 글씨를 정부가 미리 정해주고, 담배회사는 담배 이름만을 기록하도록 하는 ‘표준담뱃갑’을 도입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담뱃갑 면적의 30%에 글씨로 된 경고문구만을 담고 있어, 금연효과가 거의 없다.

담배회사는 다양한 광고·판촉·후원 등을 통해 청소년, 여성과 취약계층을 담배 중독에 빠지게 한다. 담배협약은 비준 5년 이내(한국의 경우 2010년까지)에 모든 담배 광고와 판촉 및 후원을 전면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소위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라고 불리는 담배회사의 후원도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담배의 잡지 광고가 허용되고 있으며, 청소년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에 대한 후원만 금지되고 있다.

또한 담배협약과 그 가이드라인은 비준 뒤 5년 이내에 모든 실내 작업장과 식당, 술집의 전면적인 금연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전면적 실내 금연이 이루어지는 곳은 병원, 초·중등학교와 보육시설이 전부다. 일부 대형 식당과 술집에서도 흡연구역과 금연구역을 구분하고 있을 뿐이고, 대부분의 식당과 술집에서는 흡연이 허용된다. 식당 주인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간접흡연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2004년 500원 인상을 마지막으로 그 뒤로 담뱃값 인상은 이뤄지지도 않았다. 그동안의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약 22% 정도의 가격 인하가 있었고, 이는 8~9% 정도의 담배수요 증가를 초래했을 것이다. 결국 한국의 담배협약 비준은 국제협약을 비준했다는 것 이외에는 담배규제 정책의 진전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담배규제를 일부 강화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도 담배협약에 비추어보면 아주 미흡하다. 담배는 전세계적으로 한 해에 약 6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가장 심각한 건강 위해 요인이다. 건강이 비즈니스보다 중요하다. 수십억원의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당사국 총회가 한국 정부로 하여금 담배규제 정책의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조홍준 울산의대 교수·건강과대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