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조선·중앙 ‘송도 영리병원’에 쌍수 들어
시행령 통과, 총선 끝나자마자 정부가 재벌에 안긴 선물
중앙일보는 “송도 하버드·존스홉킨스 병원 … 2016년 문 열 방법 찾았다”(4월18일자 22면) 기사에서 송도 경제자유구역기획단 이종석 지식서비스투자팀장의 “송도에 국제병원이 설립되면 연간 6만여명의 국내외 환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빌려 영리병원의 도입에 화답했다. 또 중앙일보는 “투자병원은 의료산업의 미래다”라며 의료영리화를 강하게 주장하고 나왔다.
조선일보도 “법적 장애물을 10년만에 걷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4월18일자 1면)며 환영하고 나섰다.
이런 일이 물론 새삼스럽지는 않다. 지난해 7월경 중앙일보는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하는 기사를 무려 90여 꼭지 가까이 실었던 적 있다. 그해 8월 국회에서는 ‘영리병원’ 법의 통과를 주문하고 나섰으나, 결국 여론의 뭇매를 맞고 법안 통과는 좌절된 바 있다. 그러자 9월 정부는 영리병원 지지자인 경제관료 출신의 임채민씨를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했다.
이번 시행령이 통과된 날은 4.11 총선거가 끝난 바로 다음주 월요일이었다. 정부는 총선 뒤 어수선한 틈을 타 재벌에 대한 막판 선물로 이번 영리병원 시행령을 준비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는 지난달 30일 보건복지부는 지식경제부의 시행령에 맞춰 ‘시행규칙’을 공시하기에 이르렀다. 국민건강을 지켜야 하는 보건복지부가 ‘영리병원’과 관련해서 완벽하게 지식경제부의 똘마니 역할을 해낸 셈이다. 물론 이러기 위해서 지난해 경제관료 출신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하지 않았겠나 싶다.
하여간 정부는 총선 뒤 ‘뒤숭숭한 민심’과 수많은 정권비리, 미국 광우병 발생 등 어수선한 틈을 타 ‘영리병원’을 도입하기 위한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영리병원=친재벌·삼성…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왜 이렇게 정부는 영리병원을 집효할 정도로 추진하려고 하는 걸까?
우선 의료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의료를 영리화하자는 분’들의 핵심논리는 ‘의료는 산업이며, 규제를 풀어 투자처로 병원을 활용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의료서비스 경쟁력 강화’ 같은 애매모호한 말로 포장해도 “누가 돈을 더 버는 정책일까?” 물으면 답은 분명하다. 바로 병원과 투자자들이 돈을 ‘더’ 벌 수 있다.
하지만 의료비는 증가한다. 그런데 이걸 왜 국민들이 찬성해야 하나? 지금도 큰 병이 나면 병원가기가 무서울 만큼 체감 병원비는 비싸다. 이전에는 경쟁을 하니 ‘의료비가 싸진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했지만, 최근에는 병원비가 싸진다는 이야기까지는 안 한다. 하여간 이분들은 세상 모든 것이 돈벌이기 떄문에, 인간의 건강도 돈벌이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삼성재벌의 이익’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이번 시행규칙도 잘 들여다 보면 외국기관과의 연계, 그리고 그 명성도 등이 고려사항에 들어있는데, 이는 송도에 투자컨소시엄을 만든 삼성을 위한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사실 2000년대 초반 영리병원 논란이 시작될 때부터 삼성생명(민간의료보험)-삼성병원(영리병원) 모델이 폭로된 바 있고, 최근 들어 삼성이 차세대 동력으로 바이오산업을 거론한 바도 있다.
실제로 현재 한국의료의 영리화는 삼성과 현대 양대 재벌이 주도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절대’ 아니다. 삼성서울병원과 현대아산병원의 경영선진화가 실제로 ‘의료진에 대한 인센티브’, ‘병상경쟁’, ‘부대사업 확장’, ‘고가의 건강검진도입’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의 영리화 과정을 촉발 시켰다. 현재 이들 병원은 하루 외래환자만 1만명에 육박하는 ‘매머드급’ 병원이 되었다.
특히 삼성서울병원의 법인은 삼성생명 공익재단인데, 삼성생명 공익재단은 삼성생명 주식을 5% 가량 가지고 있다. 즉, 현재 구조에서도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생명의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삼성이 송도에 영리병원을 짓게 된다면, 이 병원은 공식적으로 병원수익을 배분받을 수 있는 삼성의 의료산업 네트워크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를 확산하려고 할 것이 틀림없다.
미국을 보고도 모르나? 결국 건강보험 재정 파탄날 것
이것이 결국 ‘뱀파이어 효과’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즉 영리병원이 의료비를 올리면서, 다른 병원들도 의료비가 점차 따라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는 건강보험료 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영리병원과 연계된 민간보험상품이 나오면서 의료비는 더욱 급증하고, 향후 건강보험 필수가입등이 와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건강보험체계가 붕괴할 수도 있다. 필수가입이 와해되면 부자들이 먼저 민간보험으로 옮겨 타면서,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쇄적인 흡혈효과가 있기 때문에 영리병원은 단순한 단일 병원의 문제일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미국으로 이민 간 노인들이 미국의 의료비 감당 때문에 역이민하고 있다는 기사가 언론에 공개되었다.다. 실제로 미국에 이민간 한국인들이 의료비 등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한 번 병원에 가면 평생 모은 재산을 몽땅 날리는 것은 물론이고,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다. 미국은 알다시피 민간의료, 영리병원의 천국이 아닌가? 미국의 영리화된 의료체계가 한국에도 이런 식으로 영향을 준다. 내국인 영리병원의 의료비 증가가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고용창출? 의료서비스질↑?
영리병원은 비정규직 양산 기관 다름 아냐
그런데도 이런 영리병원이 ‘좋은 점도 있지 않은가?’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우선 고용창출에 유리하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투자가 있으므로 당연히 고용은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비영리병원 등과 비교해 환자대비 의료진의 수 등 모든 부문에서 영리병원의 고용효과가 낮다. 유일하게 고용율이 높은 부문은 병원 경영진이다. 물론 병원 경영진의 월급도 영리병원이 더 높다. 즉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 보다 고용창출 효과도 낮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될 뿐이다. 고로 주주들과 일부 경영진에게만 유리하다는 말이 된다.
물론 이는 당연한 결과다. 영리병원은 이윤배당이 우선이라 인건비를 대폭 삭감하거나 비정규직화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나마 인력창출조차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증가이다. 한국은 그렇지 않아도 병상당 간호인력등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대형병원들은 지금도 상당수 의료인력을 외주한 상태이다. 실제 병상당 고용인력이 많고 정규직을 채용하는 곳은 스웨덴처럼 공공병원이 대부분인 무상의료를 실현하는 나라들이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라면 공공병원을 더 설립하거나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것이 해법이다.
의료서비스의 질이 좋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영리병원은 돈벌이를 위한 것인 만큼 피부, 미용성형 등 돈벌이가 되는 분야의 의료서비스 질은 상승할 수 있다. 또한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패키지는 질이 더 좋아 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필수의료서비스 분야는 정반대다. 미국에서는 영리병원 환자가 비영리병원으로 갔다면 연 1만 4천명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투석환자 같은 만성환자면서 가난한 환자들에 대한 시설과 의료인력충원에는 인색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무엇보다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무상의료 선진국들이 의료비 지출대비 효과에서 미국 같은 영리병원 천국보다 앞선다는 것도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 ‘도박 한 번 해보자고? 공공의료 확충해도 모자랄 판
이처럼 외국에서 영리병원을 도입했던 나라들에서 이미 숱한 문제점이 들어났고, 영리병원의 이점으로 간주되고 있는 부분들은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이제는 일단 한번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을 해보고 평가하자는 주장도 한다. 정말 무책임한 주장이다.
의료제도는 한 번 잘못 가면 돌려놓기가 어려운 분야라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수 많은 연구논문으로 영리병원 문제점이 증명됐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망가져 봐야 정신차리겠다는 것은 황당할 따름이다. 개인사업이라면 저질러보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한국의료의 근간을 뒤흔들고, 국민건강과 환자생명을 담보로 한 실험이 용납될 수 있을까?
실제로 경제자유구역가 이미 6군데가 넘고, 내국인 진료가 되므로 사실상 전국이 영리병원이다. 더구나 공공의료가 7%정도인 한국에서 공공의료를 확충해도 모자랄 판에 ‘영리병원 한 번 경험해보자’는 주장은 한국 의료를 도박판으로 보는 것이다. 또 한미 FTA의 통과로 외국인이 투자한 영리병원을 되돌리기는 이제 너무나도 힘들어졌다. 따라서 한번 해보자는 주장은 영리병원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의 다름 아니다.
무상의료정책 선언한 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 본 받아야
최근 메트로 9호선이 임의로 요금을 올리겠다고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오세운, 이명박이 서울시장을 할 당시 서울의 공공시설을 민영화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문제는 9호선의 경우를 봐도 한 번 ‘영리화 혹은 민영화’ 한 공공사업을 되돌리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는 친시장적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물론 박원순 서울시장은 9호선 지하철의 공공화까지 지시하며 강력하게 제지하고 나섰다. 시민들이 시장을 잘 뽑았다고 자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지금 송도 영리병원은 어떠한가? 민주통합당 출신의 송영길 인천시장은 걸핏하면 송도 영리병원에 반대하기는 커녕 지지하고 나섰다. 무상의료정책을 선언한 민주당이 자신의 당 출신인 시장의 의료영리화 추진을 막지는 못할 망정, 영리병원에 흐물흐물한 태도를 보인다면 누가 민주당의 무상의료정책을 신뢰하겠는가?
민주당의 이러한 태도에 국민들의 지지는 회의에 빠질 것이다. 국민들이 박원순 시장을 뽑고 흐뭇해하는 것처럼, 송영길 인천시장도 시민들을 흐뭇하게 할 인천시 제 2의료원 같은 공공의료정책에 지원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시점에서 야당출신 시장을 뽑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국민들이 반대하는 영리병원을 막는데 민주당이 끝까지 진지하게 임해주길 기대한다.<끝>
* 이 글은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이 작성한 글로, <민중의 소리>에 5월 3일자로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