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자들이 잇따라 사고로 죽고 있다. 올해 1월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불산이 누출되어 노동자 1명이 죽고 4명이 크게 다쳤다. 지난 해 8월 LG화학 청주공장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재료공장에서 폭발사고로 노동자 8명이 죽고 3명이 다쳤다. 작년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 동안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에서는 감전, 추락, 끼임 사고로 5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4개월 동안 3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더 있다. 한국에서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 수가 하루에 6명도 넘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재 사망 사례를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흔히 좀 더 안전할 것이라 생각되는 삼성, LG, 현대, 대우조선 등 굴지의 대기업에서도 산재사고로 노동자들이 죽는다는 것이다. 산재 사망 자체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빈발하지만 이 사업장 대부분이 대기업의 하도급 사업장인 경우가 많음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산재사망의 주책임은 대기업에 있다. 이들이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소규모 사업장에 위험을 ‘외주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사고의 형태가 매우 ‘고전적’이다. 흔히 ‘재래형’ 사고라고 일컫는 떨어짐, 끼임, 부딪힘, 맞음, 화재·폭발 등에 의한 사고가 전체 사고의 70%를 차지한다. 이러한 사고 유형은 경제가 발전하여 기업의 이윤율이 높아지고, 기업들이 기본적인 안전 조치들을 취할 여력이 생김에 따라 점차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사고가 아직도 주종을 이룬다.
셋째, 주로 사내하청 노동자 등 간접 고용 노동자들이 죽는다. 최근 발생하는 산재 사망자 거의 대부분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이는 하청 노동자들이 위험한 노동 환경에 더 자주 노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노동자라면 알았을 안전 정보를 알지 못해 어이 없이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원청 노동자들은 위험해서 잘 가지 않는 장소에, 멋도 모르고 가다가 추락한 물체에 머리를 맞아 사망한 하청 노동자도 있다. 하청 노동자들은 단기간 고용되어 일하다가 교체되어 업무에 숙련된 기회를 갖지 못해 사고를 당한다. 어떻게 일해야 안전하게 일하는 것인지 익숙해지기도 전에 다른 회사, 다른 업무로 옮겨 다니다 사고를 당한다. 업무에 대한 기본 안전 수칙조차 교육받지 못한 상태에서 위험 업무에 투입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청년 노동자들이 이런 상황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다. 원청이 무리한 일정을 잡아 작업 기간을 단축하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 보면 안전에 신경 쓰기 힘들고 과로를 하다 사고가 나기도 한다.
이윤만이 기업의 유일한 관심인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사고로 죽는 것은 필연이다. 안전을 위해서는 안전 조치를 취해야 하고 안전 교육을 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돈이 드는 일이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비용을 지출할 기업은 없다. 외부 압력이 거세거나 사고 발생시 손실이 더 크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면, 기업은 안전에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조합 등 노동자의 저항과 사회적 압력,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정부의 사회적 규제가 노동자 사망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국 산재사망률이 OECD 국가 중 멕시코, 터키에 이어 3위인 까닭은 명확하다. 한국 정부가 기업 규제에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힘이 약하고 사회적 압력이 적기 때문도 있다. 한국 정부는 IMF 이래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이 관련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해 왔다. 이는 이른바 ‘민주 정부’라 일컬어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율 안전’이라는 명목 하에 정부의 사업장 지도, 감독 횟수는 감소했다. 정부는 신경 안 쓸테니 기업이 알아서 하란 방식으로 노동자 사고 예방이 된 경우는 역사상 지구성 그 어디에도 없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비정규직 비율도 노동자 사고 사망에 영향을 끼쳤다. 하청 노동자 등 간접고용 노동자뿐 아니라 시간제, 기간제 노동자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도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사고나 질병의 위험이 더 높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 과다한 업무량, 부족한 지지 지원 체계, 사업장 권력관계 속에서 나약한 위치 등 때문에 더 많은 사고 및 건강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노동자 산재사망률과 각국의 노동계급의 힘은 정확히 비례한다. 부족하지만 노동자 정당이 있고 노동조합의 힘이 강한 노르딕 국가의 산재사망률이 가장 낮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이 압력을 행사하여 정부가 기업에게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노동자 사고 사망을 줄이는 방법은 한 가지다. 노동계급의 힘을 키워야 한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원)
* 이 글은 레프트21 4월 2일에 기고문으로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