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위기에 직면한 공공병원… 역대 정부 모두가 ‘홀대’

첨부파일 : l_2013040801001104300084612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절차를 밟으면서 한국의 공공병원 체계가 기로에 섰다. 진주의료원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한국의 공공병원은 사그라져가는 중이었다. 공공병원 병상 점유율은 201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10.4%)로 OECD 평균(75.1%)의 7분의 1에 못 미친다.

단순히 양적 문제도 넘어섰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정책국장은 “민간병원의 과잉진료와 공공병원의 쇠퇴는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공공성을 지키는 보루가 위축되면서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민간병원 힘만 날로 세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공공병원은 왜 이렇게 초라한 존재로 몰리고 있을까.

▲ 의료보험 도입 뒤 수요 늘자
병상 확충 민간 지원 집중
사실상 ‘병원 장사’ 부추겨

▲ 공공병원도 ‘수익’ 중심 평가…
MB 정부선 ‘영리병원’ 시도

한국 의료의 현대사는 ‘공공병원 포기’의 역사였다.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에 의료보험이 처음 도입되면서 의료 대중화가 시작됐다. 의료 수요는 1980년대부터 급증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은 이 수요를 민간에 완전히 내맡겼다. 공공병상을 늘리는 지원은 거의 없었다. 정형준 국장은 ‘의료영리화의 궤적과 대안’이라는 글에서 “(5·6공에서) 공공의료에 투자하기보다는 철저하게 민간에 위탁한 까닭에 1980년대 인천 길병원, 서울 성심병원·을지병원·김안과병원·차병원·백병원 등 의사 소유의 민간병원이 급성장했다”고 말한다. 1988년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개막하면서 병원을 찾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돈을 많이 번 민간병원들은 1990년대 들어 의과대학을 허가받았다. 건양대(김안과의원)·가천의대(길병원)·포천중문의대(차병원) 등이다. 대형병원 경쟁에 속도가 붙은 것도 이즈음이다. 1989년 서울아산병원은 1200병상으로, 1990년 서울삼성병원은 1000병상으로 개원했다. 두 병원은 병상을 계속 늘려 2000년대에 2000병상을 돌파한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톨릭대 성모병원도 병상을 늘려갔고 다른 대학들도 대형병원 짓기에 가세했다.

커다란 병원시장이 저절로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정부 정책의 덕이 컸다. 2002년 나온 ‘우리나라 병상자원 정책의 집행실패 원인’(도영경·김용익·박기동·문옥륜 공저) 자료를 보면, 정부는 지속적으로 ‘차관 또는 은행자금을 이용한 민간자본 투자 지원’을 통해 민간병원 짓는 것을 도왔고 이를 공적으로 내세웠다. 1980~1990년대 보건사회부 백서엔 한 번도 빠짐없이 ‘민간병원 건립 지원을 통한 병상 확충’ 실적이 의료시설자원 육성 정책 성과로 언급됐다.

이 기간 공공병원은 찬밥 신세였다. 서울대 이진석 교수는 ‘공공의료의 현황과 비전’ 자료에서 “공공병상 확충은 민간병원을 통해서도 병상 확충이 어려운 지역이나 시장성이 열악해 민간 참여가 어려운 영역(결핵·정신병원)에 국한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 결과 민간병원은 넘쳐나지만 공공병원은 찾아보기 힘든 지금의 구조가 만들어졌다.

통계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결핵·정신·나병원 등 특수목적 병원을 빼고 계산했을 때, 1971년 60.6%였던 민간병상 비중은 2011년 91.6%로 늘고, 공공병상 비중은 40년 사이 39.4%에서 8.4%로 급전직하했다. 상전벽해였다.

꽉 들어찬 민간병원들은 저마다 투자한 것을 뽑아내려고 애썼다.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 아래서는 환자·진료행위 숫자가 수익 창출의 핵심 변수다. 건강보험 보장이 되지 않는 비급여진료를 중심으로 과잉진료 현상이 나타났다. 병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계 1위가 못되면 고사당하는 분위기”(정형준 국장) 때문에 병원 증축은 이어졌다. 점차 민간의 진료과잉을 통제하기 어려워진 상황으로 치달은 것이다. 실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진료비는 2006년 4조3000억원에서 2010년 8조3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이 와중에 한 줌에 불과한 공공병원은 적정한 진료 표준모델을 내놓고 민간병원의 과잉진료를 제어하는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목숨과 건강문제가 경제력에 따라 흔들리는 게 당연한 세상이 도래했다.

급기야 공공병원까지도 ‘수익’ 중심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공공보건의료기관에 ‘경영혁신지침’을 내렸다.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을 하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경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996년 마산의료원, 1998년 이천·군산의료원은 수년간 민간위탁경영을 하기도 했다. 2000년 즈음에 대부분 공공병원에 인센티브제가 도입됐고 공공병원의 많은 의사들은 정규직에서 연봉계약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공공병원 중에서도 서울대병원 같은 국립대병원은 정부 지원을 많이 받았고, 외려 지나치게 상업화됐다는 비판이 내부에서도 나올 정도로 수익 중시 흐름이 커졌다.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홀대 받아온 지방의료원만 수익 없는 진료에 많이 나서면서 ‘돈’만 기준으로 할 때 도태되기 쉬운 상황에 처했다. 현재 34개 지방의료원이 부채와 적자를 안고 있는 배경이다.

공공병원이 살아날 뻔한 적도 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은 ‘공공병원 비중 30% 달성’ 등 공공의료 강화 공약을 적극적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실제 공공의료추진기획단이 정부 내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이 소폭 올랐을 뿐 노무현 정부는 공공병원 비중을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이진석 교수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행위 수가(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하는 가격)가 낮기 때문에 비급여진료를 줄여 적정진료를 하려 하는 공공병원으로선 적자를 면할 길이 없었다”면서 “이 때문에 공공병원 자체를 정부가 지어주겠다고 해도 병원을 운영해야 하는 실질적 주체인 지방정부가 적자문제 때문에 손사래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진주의료원 폐업 문제도 이처럼 적정진료로는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수익구조의 문제, 공공병원의 적자를 안으려 하지 않는 지방정부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지방의료원에 대해 예산 등에서 일부 지원은 있었지만 공공의료기관 비중을 어디부터 어떻게 높일지 초기부터 그림을 그려 진행하지 못했다”면서 “후기에는 의료선진화 논리가 전면에 나서면서 공약이 거의 실종됐다. 민간의료실손보험도 이때 도입됐다”고 말했다.

의료를 ‘산업’으로 다루려는 정책은 이명박 정부에서 더 가속화됐다. 임기 내내 영리병원 허용을 위한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결국 임기말인 2012년 보건복지부는 경제자유구역 내에 영리병원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시행규칙을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공공병원 비중이 급추락 중이었음은 물론이다.

한국의 공공병원은 누가 죽였는가. 그 책임은 역대 정권에 걸쳐 있다. 경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을 막고 죽어가는 공공병원을 다시 살려내야 할 의무 역시 정권을 만들고 움직인 정치와 정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