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폐원 조례 개정안이 12일 저녁 도청 공무원이 동원된 상태에서 “폭력 날치기”로 통과됐다. 홍준표 도지사는 “강성 노조와의 전쟁”이라면서 폐원 강행을 천명하고 있다. 이제 18일까지 도의회 본회의 결정만이 남은 상태다.
현 상황에 대한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왜 홍준표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진주의료원을 기어코 폐원 시키려 하는가? 그리고 진주의료원 사태에 침묵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복지 정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지막으로 진주의료원 폐원 반대 투쟁의 의미다.
홍준표가 진주의료원을 기어코 폐쇄하려는 이유
홍준표 도지사는 진정 비상식적인 일을 벌이고 있다. 재정 적자를 이유로 대고 있지만 이는 누차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공공 의료 기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오죽하면 ‘착한 적자’, ‘건강한 적자’라고 하겠는가? 진주의료원은 응급실, 분만실, 중환자실 등의 돈 안 되는 필수 의료를 유지하고, 사립 병원들보다 과잉 진료가 적어 진료비가 타 병원의 70%밖에 안 되게 싼 탓에 적자가 생긴다. 거의 모든 지방의료원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적자다.
게다가 경남도는 1년 총 재정이 12조 원 정도다. 진주의료원의 적자는 연 30억 원 정도다. 경남 재정의 0.025%인 셈이다. 따라서 재정 적자를 이유로 의료원을 폐원한다는 것은 사실상 정치적 목적이 없고서야 있을 수 없다.
이런 정치적 목적은 ‘강성 노조와의 전쟁’이라는 주장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6년째 임금이 동결되고 8개월치 임금을 체불당한 노조에게 도대체 강성 노조라는 말은 어찌 붙일 수 있을까? 게다가 진주의료원 노동자들의 월급 수준은 다른 지방의료원의 80%밖에 안 된다. 귀족 노조 운운할 근거가 없다.
▲ 우석균 정책실장 등 보건의료단체연합 회원들은 진주의료원 폐업 철회를 촉구하며 보건복지부 앞에서 15일로 6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
홍준표 도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원을 강행하려는 진정한 목적은 진주의료원의 재정 적자와 강성 노조 탓이 아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목적으로 진주의료원 폐쇄를 강행하려 한다.
홍준표 도지사는 올해 2월 1일 경남도의 부채가 1조3450억 원이라면서 부채 상환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희생양이 진주의료원이고 또 그곳 노동자들이다. 경남도의 정책 실패를 서민들을 위한 의료원 폐원과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전가하려는 것이다.
재정 적자 위기를 맞은 유럽은 대규모 복지 재정 삭감과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스페인은 공항과 국영 복권 회사 민영화를, 아일랜드는 국영 가스와 발전 부문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규모와 목표물이 다를 뿐이지 홍준표 도지사의 정책도 이와 동일하다. 진주의료원은 복지 시설이고 그 폐원이야말로 공공 의료의 민영화다.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고, 필수적 진료를 행한 진주의료원의 적자가 30억 원이라서 폐원을 한다면 그 30억 원의 ‘적자 치료비’는 그럼 어디로 가는 걸까? 바로 더 비싼 사립 병원을 다녀야 하는 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간다. 이는 설명할 필요도 없는 복지 재정 삭감이다.
그리스나 스페인에서 보는 것처럼, 이러한 복지 재정 삭감과 민영화에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따르며 또 이에 대항하는 구심점에는 언제나 노동조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강성 노조’니 ‘귀족 노조’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해 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할 때마다 이 소리를 들어왔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결국 홍준표 도지사의 ‘복지 시설 재정 적자’론과 ‘강성 노조’론의 실체는 세계적 경제 위기 시기의 재정 적자 부담을 누가 질 것인가의 문제다. 그리고 진주의료원의 폐쇄라는 해법은 경제 위기의 부담을 바로 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지게 하는 것이다.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으면 당연히 다른 34개 지방의료원들의 폐쇄 또는 구조조정이 줄을 이을 것이다. 다른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여러 지방의료원은 물론 여타 공기업 직원들이 ‘진주의료원을 봐라. 우리도 계속 적자 내면 문 닫게 된다.’라는 협박을 듣고 있다.
홍준표와 오세훈은 세계적 경제 위기 시기의 보수의 선구자가 되겠다는 점에서는 최근 사망한 영국의 대처와 닮았다. 이 점에서 그들은 같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도시 서울에서, 아이들의 문제인 무상 급식이라는 문제를 놓고 싸움을 건 오세훈보다는 여권 지지 성향이 강한 경남에서 진주라는 한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병원 하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점에서 홍준표가 훨씬 영리해 보인다.
진주의료원 사태로 본 박근혜 정부 복지 정책의 실체
박근혜 대통령은 민생과 복지를 내걸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당선 직후 ‘경제 민주화’가 사라졌고 복지 공약의 대표적인 두 가지 공약, 즉 4대 중증질환 100% 보장과 기초노령연금 20만 원 공약이 대폭 후퇴해 ‘사기’ 공약으로 판명되었다.
더욱이 ‘준비된 대통령’이라더니 국가 운영에 내정한 ‘인사’가 어떻게 ‘참사’ 그 자체가 될 수 있는지, 초기 내각 구성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40%라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여기에 그마나 있는 5%의 복지인 지방의료원 중 하나를 날려버린다는 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복지만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민영화도 ‘경쟁 체제 도입’이라는 순화된 용어를 사용했을 뿐, 전기나 가스, 철도 민영화는 여전히 추진 중이다. (다만 수서발 KTX 매각이 제2공사 설립으로 바뀐 것처럼 우회적이고 지역적인 방법이 사용될 것이라는 언질만 있을 뿐이다.)
지방의료원 활성화라는 공약을 내건 박근혜 정부가 진주의료원 폐원을 직접적으로 막지 않고 미적거리는 이유가 단지 지방자치단체 고유 업무이기 때문일까?
진보 교육감이 진보적 정책을 내면 곧바로 문제를 삼던 정부가, 왜 정권 초기 공약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홍준표 도지사의 조처에 대해서는 이리도 굼뜬가. 홍준표 지사의 정책 기조가 박근혜의 그것과 크게 보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이 밝혔듯이 ‘폐원 결정 과정이 너무 거칠고’ 여론이 좋지 않아서다.
게다가 이들은 노조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아무런 이견도 없다. 새누리당 정의화 의원의 “폐업은 최후의 수단으로 노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카드로 쓸 수는 있다”는 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준표 지사가 대화할 때도 노조 문제나 인력 감축 문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즉 구조조정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진주의료원 휴업 및 폐업 위기는 어떤 의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주의료원은 진주의료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복지 정책, 나아가 노동 정책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도 곧 경제 위기로 인한 재정 적자와 내핍이 다가올 것이다. 1997-1998년의 IMF 경제 위기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2008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경제 위기는 크루그먼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자체의 세계적 경제 위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망가진 경제의 부담을 누가 지는가라는 것이 지금 전 세계적 문제다. 홍준표 도지사는 이를 복지 삭감으로 그리고 노조 분쇄로 ‘홍 반장’답게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 조치가 성공한다면 자신이 보수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는 진주의료원 사태에 대해 “잡음과 비난이 있어도 기차는 간다”고 말했다고 한다. 홍준표의 기차가 달리기 위해 이미 170여 명의 환자들이 병원에서 반강제로 쫓겨나야 했다. 특히 의료 급여 환자들이 ‘기초수급권 혜택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공무원의 전화를 집중적으로 받아야 했다. 가난한 환자들에게 밥이냐 병원이냐를 선택하라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야만이 아니고 무엇이 야만인가?
이 모든 상황을 박근혜 대통령도 새누리당도 한국의 재벌들도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차마 홍준표를 두둔하지는 못하지만 홍준표 도지사가 지금 이 전투에서 이기면 앞으로 수많은 곳에서 더 큰 규모로, 재정 적자를 들이대고 강성 노조를 들이대면서 복지 재정 삭감과 대량 해고를 훨씬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또 진주의료원 폐원은 200여 명의 직원들에 대한 대량 해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반대는 모두 강성 귀족 노조의 사치로 취급된다.
따라서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는 단지 진주의료원 문제가 아니다. 진주의료원이 이대로 폐원되고 또 노조가 구조조정을 당하면, 몇 년간 한국 사회가 복지 재정 삭감과 민영화로 가는 지름길을 열게 된다.
나는 진주의료원을 지키기 위해서 진주의료원 노조가 다른 지방의료원들의 80% 임금밖에 못 받는 ‘약체 노조’였다 해도 앞으로는 진짜 ‘강성 노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준표의 폭주를 막는 강성 노조 말이다. 그리고 다른 노조도 시민들도 나서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앞날이 지금 여기 경남 끝자락의 진주의료원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호소한다. 진주의료원과 공공 의료를 지키기 위해 16일 오후 7시 광화문에 촛불로 모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