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간호사 열악한 노동환경에 신규인력 30%이직, 고스란히 환자피해… 전문가들 “노동환경 개선없인 백약이 무효”

 

쏟아지는 수술, 뽑아도 뽑아도 떠나는 ‘백의천사’

간호사 열악한 노동환경에 신규인력 30%이직, 고스란히 환자피해… 전문가들 “노동환경 개선없인 백약이 무효”

 

“수술량이 많다. 하루에 해결이 안될 만큼 수술을 집어넣는다. (중략) 환자 당겨서 빨리 하고, 또 하고. 그럼 간호사는 엄청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중략) 실제로 환자들 세팅이 길어지면 매우 문제가 된다. (중략) 시간이 안 맞으면 마취해 놓고 그냥 기다리게 한다. 수술시간이 맞지 않은 경우, 환자는 마취해놓고 펠로우(전임의)가 열어 두고 그렇게 기다리는 거다. 환자 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

한 대학병원 간호사의 증언이다. 열악한 노동환경 -> 간호인력 부족 -> 의료서비스 질 저하의 악순환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간호인력부족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월 간호인력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간호인력개편안을 두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개악안’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정부 간호인력 개편안,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간호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한 열악한 노동환경 -> 간호인력 부족 -> 의료서비스 질 저하의 악순환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현행 간호인력은 간호사(4년제)-간호조무사(1년제)로 2단계 구조로 이뤄져있다. 보건복지부의 개편안은 기존 2단계를 간호사(4년제)-1급 실무간호인력(2년제)-2급실무간호인력(1년제)의 3단계로 바꾸고 상위단계로 이동이 가능하게 한다. 즉 간호조무사도 시험 등을 통해 간호사가 될 수 있는 것. 이런 방안이 나온 데엔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 현상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환자들에게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 2010년 한국의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4.6명(간호조무사를 제외하면 2.3명)에 불과해 OECD 국가 평균인 9.3명의 절반 수준이다. 간호사 한 명이 돌봐야하는 환자 수가 그만큼 많기 때문에 이는 열악한 노동환경, 의료서비스 질 저하를 야기시킨다. 그림 = OECD Health data 2012

최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실시한 병원간호사 간담회에서 현장 간호사들은 “환자가 많으니까 우리가 할 일을 다 환자들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는다”(KB대) “의사, 인턴 다 관심없고 모든 걸 다 간호사가 하니까 힘들다. 응급실 간호사들은 거의 그만두고 중환자실은 거의 신규다”(C대), “급격하게 수술환자가 많아지다 보니까(중략) 환자를 보다가 놓치고, 위험해지는 상황이 너무 자주 만들어진다”(S대) 라고 증언했다.

경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씨도 “환자들에게 확인을 하면서 약을 줘야하는데, 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까 확인을 못해 약을 잘못 줬다”고 털어놨다. A씨가 간호하는 환자는 30명 수준이다. 8시간 근무를 한다고 했을 때, 환자 1명이 A씨에게 받을 수 있는 간호시간은 15분 남짓이다. 그 외에도 설명없는 투약 등 작은 실수는 일상이다. A씨는 “결국 모두 환자 손해”라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인력은 꾸준히 이탈한다. 대한간호협회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13년 1월 ‘인력기준법 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간호사의 근속연수는 5.7년이고 조무사는 3.6년이다. 특히 신규간호사 1년내 이직률은 30%에 달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간호사) 배출을 아무리 많이 해봤자 현재처럼 이직률이 높으면 사회적인 낭비“라며 ”신규간호사 이직률이 30%하는 것은 보통 높은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열악한 노동강도와 이에 따른 간호인력 이탈이 곧 의료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조성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의 2006년 연구에 따르면, 종합병원 간호사 배치수준이 낮을수록 환자 사망률은 증가한다.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1명씩 증가할수록 환자 1000명당 15명의 사망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 교수는 “간호사는 환자와 의료제공자의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간호인력의 수준이 의료서비스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그러나 복지부가 내놓는 개편안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간호인력이 부족한 원인은 진단하지 않고 간호사가 되는 경로만 넓히는 식이기 때문이다. 정은일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단순히 자격자를 양성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병원 현장에서의 인력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간호인력부족의 실질적인 원인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다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의 2013년 자료를 보면 간호사들은 장시간 노동, 업무량 과다, 불규칙한 교대근무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환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간호사 투입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우석균 실장은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이 없는 상황에서 인력제도를 바꾼다해도 (인력부족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몇년간 간호대학 정원을 늘리는 등 배출은 꾸준히 확대되어 왔지만 간호인력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대한간호협회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13년 1월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만여명이던 간호대학 정원은 2012년 1만6000여명으로 증가했고, 2016년에는 2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 중 간호사로 일하는 비율은 40% 남짓이다.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은 “간호사 공급이 부족한 게 아니라 간호사들의 노동시장 이탈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개편안이 병원자본의 이해만 충족시켜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인력이 부족한 지방중소병원이 노동조건을 개선해 간호사를 고용하지 않고, 4년제 간호사 대신 2년제,1년제 실무간호인력을 고용하게 돼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몫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우석균 실장은 “복지부의 개편안은 중저가형 간호인력을 양성하는 개악안에 불과하다. 결국 병원자본의 이해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진=대한간호협회 제공

이 때문에 만성 간호인력 부족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간호인력을 확충해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 종사자 등의 진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은 법이 정한 간호인력을 충족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은일 대표는 “현재 법정인력기준 미충족 병원은 86% 인데, (이에대한) 관리감독은 부실”하다며 “간호사 적정인력 채용 안하고 수익성만을 고려하는 의료기관을 정책으로 바로 잡기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석균 실장도 “지금은 병원이 법정인력기준을 안 지켜도 큰 문제가 없는 구조인데, 안 지킬 경우에 병원 운영을 정지하는 등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들어간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아가 간호사 정원의 상향조정도 필요하다. 최소한 현재보다 병상당 2배 이상이 법정 최소 간호사 정원이 되어야 한다”며 “이렇게 해도 병상당 간호사 수는 OECD의 절반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토론자들은 간호사의 인력확충이 환자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우석균 실장은 “병상당 간호사 수가 줄어들게 된 이유중 하나는 병상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병상수가 증가한 것은 과잉진료가 성행한다는 의미다. 병원 영리화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2년 OECD Health data를 보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병상수가 급증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 2005년 5.9병상에서 2010년 8.8병상으로 2.9병상이 증가했다. 활동간호인력 수가 최하위권인 것과 달리 병원의 총 병상수는 인구 1000명당 회원국 평균인 4.9병상의 두배에 가까운 것이다. 선진국들은 과잉진료를 막기 위해 병상수를 제한하고 있다. 정은일 대표는 “적정인력을 채용하지 않고 수익성만 고려하는 의료기관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노동환경, 배출인력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득영 보건복지부 정책과장은 23일 토론회에서 “취업률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만을 펴야한다는 주장은 수정돼야 한다. 인력배출의 문제냐 노동시장 이탈의 문제냐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면서 “2월에 발표한 것은 기본 방향이고, 여기에서 외국 사례를 토대로 국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일문일답] 김원일 대한간호협회 정책전문위원

보건복지부의 간호인력개편안에 가장 관심이 많은 이들은 당연히 간호사다. 현장 간호사들은 “말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개편안을 두고 열린 첫토론회에 이해당사자인 대한간호협회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개편안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신중히 접근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미디어오늘이 김원일 대한간호협회 정책전문위원에게 입장을 들어봤다. 아래는 김 위원과의 1문 1답이다.-이번 간호인력개편안을 어떻게 보나.
간호인력체계에 개편이 필요한 건 맞다. 간호인력관련 법이 1951년 이후 그대로라 문제가 있다. 현실반영이 되지 않는 것. 그러나 지금 복지부의 간호인력개편안은 문제가 있다.

-복지부 개편안의 문제는 뭔가.
간호인력개편방안은 전혀 노동인력부족을 해소하거나 중소기업인력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지금도 간호인력은 넘친다. 예를들어 간호조무사는 매년 4만명씩 나왔다. 그런데 자격자중에 일하는 사람은 20%밖에 안 된다. 간호조무사가 시험을 봐서 간호사 자격을 갖게 해주는게 본질적인 해결 방안이 아니다. 간호협회는 이 부분에는 절대 반대한다.

-밥그릇 싸움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간호보조인력이 없는 곳은 없다. 간호보조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간호조무사가 시험 등으로 간호사가 된다면 4년제가 해야하는 일을 2년제가 하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환자 건강에 무척 좋지 않다. 지금 의사가 부족한 곳에서 일을 대신하는 간호사들이 있다.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저임금으로 부릴 수 있는 2년제 간호사를 만들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간호사들의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간호인력개편안이 어떤 방식으로 되어야하나.
먼저 간호업무와 간호보조 업무를 구분해야 한다. 지금은 간호조무사도 간호사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의료서비스 질을 생각하면 안 되는 일이다. 간호사가 하는 의료보조, 간호조무사가 하는 간호보조 업무는 분리되는게 맞다. 복지부 개편안도 업무 구분을 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사안은 좀 더 지켜보야 한다.

-간호업만 구분 외에 다른 문제는 없나.
노동환경, 저임금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가 2008년부터 지적해왔다. 환경이 열악하니까 모든 간호사들이 그나마 노동환경이 좋은 서울로 모인다. 그러니까 지방병원은 간호사가 항상 부족하다. 경북지역은 간호사가 가장 많이 배출되는 지역인데, 실제 인력은 제일 부족하다. 말이 안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나.
의료기관이 시장에 맡겨졌기 때문이다. 공공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인력과 기관을 같이 통제한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의료인력은 통제하면서 기관(병원)은 통제를 안 한다. 가령 의대나 간호대 정원수는 조정하는데, 의료기관이 인력을 적게 뽑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규제가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입원환자 2.5명당 간호사 1명을 고용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현실은 간호사 1명이 환자 19명을 본다. 병원은 인건비를 절감해서 경영난을 해소하겠다는 거다.

-어떻게 해소해야하나.
노동환경 개선이나 제도적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복지부가 간호인력을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말을 했다. 그렇다면 의료기관에 강제해야 한다. 또 간호사 인력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에서만 일하는 간호사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스웨덴 같은 경우는 전국 간호사 임금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니까 의료서비스 질의 양극화가 없다. 아직은 복지부의 구체적인 안이 나오지 않았기에 지켜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