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야간 병동에 간호사 고작 2명, 환자는 봉? 대형 병원 시스템, 의사도 ‘갑’이 아니다

야간 병동에 간호사 고작 2명, 환자는 봉?

대형 병원 시스템, 의사도 ‘갑’이 아니다

 

소아암 환자의 어머니인 김희선 씨는 대형 병원의 시스템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병원이 환자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병원의 스케줄에 맞춰 돌아가는 것 같다.

김 씨는 “소아암 병동에서도 간호사들이 24시간 동안 3교대로 근무하면서 이른 시간에 채혈을 하거나 소변을 받아간다”며 “모든 스케줄이 병원 편의에 맞춰지다 보니, 입원을 지속적으로 하는 (암에 걸린) 아이들 컨디션을 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자나 보호자는 의료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없다고 했다. 고가의 검사를 해도 ‘전보다 상태가 좋아졌다’는 간단한 말만 들을 뿐, 검사에 대한 피드백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의료 인력들은 이 환자, 저 환자에게 회진을 돌기 바쁘다.

김희선 씨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공공운수노조·연맹, 의료연대본부가 공동 주최한 ‘대형 병원 횡포로 신음하는 환자·병원 노동자 증언 대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심폐소생술 하러 자기 환자 버리고 옆 병동 가야 하는 간호사

▲ 대형 병원에서 의료 종사자들은 인력 부족에 따른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병원 피라미드의 아래로 갈수록 노동 조건은 열악해진다. ⓒ대한의사협회

환자들이 의료 서비스에 불만족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병원 노동자들은 만성적인 의료 인력 부족과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노동 조건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의료 인력 부족이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우지영 서울대병원 간호사는 “(서울대병원의) 대부분 병동이 야간 근무 간호사를 2명밖에 두지 않는다”며 “심폐소생술을 하려면 최소한 3명이 필요한데,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가 오면) 어쩔 수 없이 옆 병동 간호사가 자신의 환자를 버리고 달려와야 한다”고 말했다.응급 환자가 생기면 기존 입원 환자들이 방치되는 셈이다.

한국의 간호 인력은 어느 정도로 부족할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인구 100명당 간호사 수(2.37명)는 OECD 국가 평균(6.74명)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간호사가 환자 한 명에게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3분의 1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임신 중 10번 밤샘 근무, 돌아온 건 유산

노동 강도가 높다 보니 간호사들은 숙련 인력이 되기 전에 휴직하거나 퇴사하기가 부지기수다.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 사업‘을 하고 있는 서울의료원에서 일하는 김경희 간호사는 “업무 강도는 늘었는데 신규 간호사 기준 월 160만 원을 받으며 24시간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며 “올해에만 간호사 78명이 사직했고, 전체 간호사 가운데 1년 미만 신규 간호사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사가 유산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의료원의 경우 2009년 임신한 간호사 15명 가운데 4명이 유산했고, 2010년 임신한 10명 가운데 4명이 유산을,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생했다. 문현정 제주의료원 간호사는 “한 달에 10번 이상 밤샘 근무를 했고, 입원하고 계신 환자를 내팽개칠 수 없었기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며 “아이를 유산하고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며 나에게 돌아온 것은 스스로 뱃속의 아이조차 지키지 못한 못난 엄마라는 낙인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의료원 간호사의 유산 및 신생아 선천성 심장질환과 업무 연관성 유무 파악을 위한 역학조사>

간병사들도 업무 부담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고화순 서울대병원 간병사는 “간호사가 부족해 의료 행위인 석션(가래 뽑기), 피딩(콧줄로 미음 넣기), 투약, 넬라톤(관으로 소변 비우기)까지 간병인이 하지만, 의료 수가는 병원이 가져간다”며 “24시간 간병하는데 시급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2700원으로 정해놓고, 병원은 우리에게 무료로 의료 행위까지 요구한다”고 토로했다.

김희선 씨는 “전문 간호사와 (복지 수급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사회복지사 등 병원에서 도움 받을 인력이 적은 반면, 원무과 직원은 많다”며 “병원이 의사를 주축으로 환자를 케어할 수 있도록 인력을 체계적으로 정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짜 ‘갑’ 정부, 국립대병원 평가 기준 바꿔야”

변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은 “간호사가 대학에서 4년 공부해서 2년 일하고 그만두는 것이 한국 간호사의 현실”이라며 “한 간호사가 다른 나라의 4배 이상 환자를 보는데, 환자를 잘 돌보기는커녕 눈 마주칠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변 기획국장은 “병원이 주장하는 비상 경영론은 거짓말이다. 건물이나 토지의 감가상각비, 고유 목적 적립금을 빼면 흑자”라며 “그러면서 병원들이 (증축 등으로 생긴) 일시적인 적자를 인력 미충원·임금 동결, 고가 검진 권유 등으로 노동자와 환자에게 전가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변 기획국장은 “의사도 갑은 아니다. 국립대병원에 제대로 투자하고 관리 감독하지 않는 정부 부처가 갑”이라며 “정부가 공공 병원에 투자하지 않았고 국립대병원이 민간 병원화되는 것을 묵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의 평가 기준을 수익성이 아니라, 표준 진료는 하는지, 적정 인력이 있는지, 연구 성과는 어떤지 등으로 평가해야 국립대병원도 모범적인 공공 병원으로 거듭난다”며 “갑으로서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윤인순 의원은 “병원의 다양한 직업군들이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다루는 업무를 하기 때문에 이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 문제를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다루겠다”고 밝혔다.

기사입력 2013-10-11 오전 10:58:30

김윤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