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와 기만으로 일관한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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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기초연금 20만 원’ 공약폐기와 개악을 두고 말이 많다. ‘기초연금 20만 원 공약’이 박근혜 정부의 핵심 복지공약일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인 어르신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낸 공약이기 때문이다. 평소 ‘신뢰와 약속의 정치인’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던 박근혜 대통령은 이 때문에 집권 1년차부터 거짓말쟁이의 오명을 쓰게 될 듯하다.

그러나 ‘기초노령연금 20만 원’ 공약만큼 작년 대선에서 논란이 된 복지 공약이 또 있었는데, 바로 전국 방방곡곡에 붙어 있던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 공약이다. 사실 ’1백 퍼센트 국가 책임’이란 구호는 그동안 진보진영이 주장한 ‘무상의료’를 차용한 것이고, 이를 4대 중증질환에 먼저 적용하겠다는 것은 정책의 ‘현실성’을 드러내려는 시도였다. 즉, 부분적이지만 ‘실현하는 무상의료’로 대중을 사로잡으려는 슬로건이었다.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만 보장성을 100%까지 올리겠다는 이 공약은 이미 작년 대선 토론회 때부터도 논란이 됐다. 우선 100% 보장에 간병비가 들어 있냐는 의문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TV 방송에서 ‘간병비도 보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집권도 하기 전인 인수위에서부터 ‘간병비’ 제외를 기정사실화 해 큰 지탄을 받기도 했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3월 인사청문회 때에 이르러서는 이런 복지 공약이 ‘선거캠페인’이었다는 발언까지 했다. 급기야 4월 1일 건강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첫 회의에 출석한 보건복지부 차관은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공약에 애초부터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3대 비급여 경감을 위해 ‘국민행복 기획단’을 꾸린다고 하여 사실상 3대 비급여를 다른 논의테이블로 이관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6월 말에 이르러서는 그나마 진료 부분의 비급여에 대해서도 ‘선별급여’라는 중간지대를 두어 환자가 50~70% 부담하는 공인 비급여를 신설하려 하고, 급여범위 본인부담액도 전액 면제에서 후퇴했다. 그리고 건강보험 보장 영역(치료 영역)도 전액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부담금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최종안에서 4대 중증질환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돈이 기껏해야 이전보다 25퍼센트 정도 경감되는 안이 제시됐다. 즉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100% 공약 또한 완전 사기였고, 거짓이었다.

이처럼 공약을 누더기로 만들고 사기 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의료정책 노선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다음 날 한국 역사 최초로 공공의료기관 폐원 시도가 일어났다. 바로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원 시도였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의료·복지정책의 방향을 예측케 했다.

첫째, 일단 지자체의 복지 축소에 대해 중앙정부는 철저하게 ‘불개입’을 내세웠다. 즉, 정부가 복지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적 방임을 천명하고, 지방정부 탓을 하면서 실제로는 복지 축소의 면죄부까지 얻은 것이다.

둘째, 건강보험으로 대표되는 보험 부분에서는 쩨쩨한 복지 확대는 생색내기로 하더라도, 공급 부문에서는 병원자본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6개월간 ‘메디텔’, ‘보험업의환자 유치·알선’, ‘원격의료’, ‘영리병원’ 등 다양한 의료민영화, 영리화 시도를 계속하면서, 병원으로 돈을 벌겠다는 의지를 불살랐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노동자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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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3월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4대 중증질환·기초노령연금 등 박근혜 대통령 대선공약의 말 바꾸기 논란에 대한 질의를 듣고 있다. 진 후보자는 이 자리에서 “대선은 캠페인으로 캠페인과 정책은 약간 차이가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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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중증질환 공약은 국민을 기만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우선 원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는 3대 비급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실제 공약집에 보면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부분 포함”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75% 수준인 4대 중증질환의 보장률”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75% 수준’이라고 밝혔다는 점이 중요한데, 건강보험공단의 통계를 보면 나머지 25%에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백 번 양보해도 애초부터 최소한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는 포함된 ‘보장성 100%’를 박근혜 정부는 상정했던 것이다. 즉 비급여를 제외한 것은 집권하자마자 공약을 지키지 못하겠다는 발뺌을 넘어, 아예 그 공약이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태까지 낳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가 내놓은 4대 중증질환 의료비는 추계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공약 시 내놓은 안과 다르게 심뇌혈관 질환의 경우 ‘심뇌혈관 질환 중 수술’에 대한 것만 추계하고 있다. 그래서 상급병실료 5400억 원, 선택진료비 2100억 원으로 과소 추계했다.

무엇보다 뇌졸중과 같은 핵심 뇌질환에서 중요한 것은 재활치료와 추후관리이다. 그런데 이를 완전 제외했다면 이것이 어떻게 4대 중증질환만이라도 보장하는 것이 될 수 있는가? 국민들은 중풍 걸린 어르신들의 재활치료가 당연히 ‘국가보장 100%’에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에 보건복지부가 10월 1일부터 비급여 진료인 초음파의 경우 4대 중증질환에 우선 급여 적용을 한다고 광고를 하는 대목도 문제다. 사실 수 년 전부터 초음파의 급여화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근혜 정부의 성과인양 생색내면서, 급여의 확대범위를 4대 중증질환으로 축소한 것을 공약이행으로 봐야 하는가?

원래 계획보다 4대 중증질환으로 축소하면서 무려 271만 명이나 대상이 축소되었다. 이는 초음파 급여화의 측면에서는 개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이처럼 이전 정부 때의 계획에 자신의 공약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생색내기만 하려 한다.

또한 돈 문제를 보면,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재원에단 한 푼의 국고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누더기 ‘보장성 강화안’조차 그동안 국민들이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아서 생긴 건강보험의 흑자를 재정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이러려면 왜 4대 중증질환부터 보장성을 강화해야 하는지조차 문제가 된다. 국민들이 낸 보험료의 흑자를 이용해 정권은 생색만 낼 뿐 실제로 보장성 강화를 위한 추가재정에는 관심이 없으니 이 또한 사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다 추가예산에 대해서는 이미 기획재정부안 중 하나로 부가가치세에 건강보험료를 추가하는 ‘건강세’ 등까지 거론한다. 즉, 의료민영화를 추진해 자본의 배는 불려주려 하면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노동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만 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가격 통제는 정부가 무상의료를 시행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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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복지확대 공약 걸고 당선되니 오해라네” 참여연대 소속 회원들이 3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국민 기만 복지공약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의 복지공약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밝힐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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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나 치료재, 검사 등(비급여)에 대해서도 ‘선별급여’라는 차등 급여구간을 두려고 한다. 병원들이 진료비 인상의 주원인인 비급여를 무분별하게 늘리는데,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으면 그 가격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그래서 비급여 진료 중에 일부에 대해 건강보험이 30~70퍼센트만 지원하는 선택구간을 두겠다는 것이다.물론 이렇게 하면 병원들이 제멋대로 가격을 정해 받던 각종 검사 비용 등의 가격이 정해지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의료비 상승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비급여 항목들은 대부분 비필수의료(성형, 미용 등)거나 아직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것들인데, 이를 반쯤 인정해주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병원들은 이런 진료를 크게 늘릴 것이다. 다른 모든 진료가 그렇듯 환자들은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게다가 그동안 이런 비급여 항목에 대한 심사평가기준이 없어 곤란을 겪던 민간보험 입장에서는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건강보험의 부분 부담으로 보험 지급액을 일부 줄일 수 있고, 가격 표준화로 분명한 재정계획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 기초가 되는 심사평가는 건강보험에서 다 해주니 일석이조다. 사실 가장 효과적인 가격 통제는 정부가 무상의료를 시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건강보험 보장성이 높아지면 정부가 대부분의 진료비를 결정하고 통제하게 된다.그런데 그렇게 되면 민간의료보험은 필요 없게 돼 소멸할 것이다. 이 때문에 필요한 비급여를 모조리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것은 민간보험에 직격탄이 되고, 이를 막는 것이 민간의료보험에게도 사활을 걸 문제다. ‘선별급여’라는 꼼수가 나온 이유다. 앞서 주장했듯이 이미 박근혜 정부는 5월 민간의료보험이 외국인 환자를 유치·알선할 수 있게 해 주고, ‘메디텔’이라는 의료호텔을 통해 병원과 연계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정부의 로드맵은 기껏해야 환자의 부담을 이전보다 25% 정도 경감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100%는커녕 50%도 안 되는 개선인 것이다. 원래 4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급여 내 보장성이 90%~95%이다. 가장 보장성이 높은 질환군에 대한 보장성 강화안조차 겨우 25% 경감하는 수준이라면, 이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완전 사기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박근혜 정부는 시작부터 의료민영화와 민간보험 그리고 병원자본의 손을 들어주고자 자신의 공약은 완전 누더기에 사기가 돼 여론의 지탄을 받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거짓말, 생색내기, 꼼수로 자신의 진정한 속내를 계속 드러내 보였다. 혹여라도 공약파기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알고 있다면 다른 것은 둘째 치더라도 자신의 복지공약만큼은 ‘신뢰와 약속’에 따라 지키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이조차 지키지 못하고 개악으로 일관한다면 그때는 약속을 어긴 만큼 정권의 ‘리콜’ 역시 각오해야 할 것이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
* 이 글은 2013년 10월 25일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