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사업 늘린 시행규칙 입법예고
건강식품·화장품 등 일부만 제한
시민단체 “진료보다 수익 앞세워
결국 환자부담 늘릴 가능성” 반발
“일단 약은 처방해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관절염은 완치가 없어요. 수영 같은 운동도 꼭 해야 합니다. 마침 우리 병원 지하 1층에 수영장이 있습니다. 일반 수영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우리 병원 소속 물리치료사가 환자의 상태에 꼭 맞는 운동처방을 해 줄 겁니다. 꼭 그리로 가라고 권하는 건 아닌데요, 잘 생각해서 이용하시면 됩니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심한 통증에 시달리며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1회당 8만원짜리 개인 운동처방 이용권을 덜컥 사고 말았다. 약값으로 낸 돈이 1만원 수준인데, 병원 부설 수영장에 회원 등록을 하며 낸 돈은 연회비 72만원과 개인 운동처방 30회 이용권 금액인 240만원을 합쳐 300만원이 넘었다. 부담은 됐지만 ‘그래도 의사가 권하는 병원 수영 프로그램인데…’라는 생각에 외면할 수도 없었다.
이르면 8월 중순께부터 대형 병원을 찾는 환자라면 종종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앞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법인이 수영장 등 체육시설이나 호텔 등 숙박시설, 여행사 따위를 세워 환자나 그 보호자를 상대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10일 밝혔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보건의료단체연합) 등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세월호 침몰 사고 등으로 미뤄둔 의료 영리화의 꼼수를 드러냈다며 반발했다.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가 넓어지면 병원이 환자 진료보다 수익사업에 매달릴 가능성이 높고, 이는 전체 의료비의 상승으로 이어지리라는 우려에서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의료법인이 손댈 수 있는 부대사업의 범위를 넓힌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복지부는 의료법인이 별도의 자회사를 세워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 설립·운영 가이드라인’(자법인 가이드라인)도 함께 배포했다. 바뀐 의료법 시행규칙은 이르면 8월 중순부터, 자법인 가이드라인은 11일부터 적용된다.
개정안을 보면, 앞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법인은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 판매업, 의료기기 구매지원사업을 빼고는 수익사업을 제한없이 할 수 있다. 지금은 의료·의학 조사 및 연구사업이나 장례식장·주차장·휴게음식점·편의점·산후조리원 운영 등 제한적인 사업만 가능하다.
의료법인이 외부 투자를 끌어들여 부대사업 목적의 별도 회사를 세우는 것도 허용된다. 자법인 가이드라인을 보면, 의료법인은 법인 순자산의 30% 범위에서 별도 자법인에 투자할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외부 투자자가 자법인 사업 내용에 함부로 개입하는 행위를 막겠다며 의료법인이 자법인 주식의 30% 이상을 보유하며 동시에 최다 출자자여야 한다고 못박았다.
‘의료 민영화·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는 이번 개정안을 의료 민영화·영리화 추진 행위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병원이 자회사를 세워 수익사업을 하게 되면, 수익성이 높은 자회사가 병원 운영 방식을 좌우해 사실상 영리병원에 다름 아니게 되리라는 우려에서다. 정부도 이번 조처로 병원의 경영 상태는 호전되겠지만, 그만큼 환자 의료비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이날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의료법인의 영리 부대사업 확대는 ‘의료법인의 비영리성’을 근간으로 하는 현행 의료법 체계를 뒤흔들어 의료기관이 환자 진료보다 돈벌이에 치중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료영리화저지특별위원회도 성명을 내어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의료의 본질을 헤칠 수도 있는 중대한 사항을 법률 개정이 아닌 ‘시행규칙’과 ‘가이드라인’으로 추진하려는 꼼수는 국회의 입법권 침해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성진 박수지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