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항상 똑같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시장에 가서 어묵을 먹고, 복지 시설에 가서 밥을 나눠주고, 거리에 나가 청소를 한다. 정부는 언제나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정책을 추진한다, 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는 원격의료를 장애인과 어르신, 의료소외지역 주민을 위해 제공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 원격의료 홍보 안내문 | |
ⓒ 보건복지부 | 관련사진보기 |
의료기관 부대사업에도 취약계층을 위해 장애인 보조구 사업을 추가했다(환자의 신체 특성별로 맞춤형 제작·수리가 필요한 장애인 보장구 등(의수·의족, 전동휠체어 등)의 맞춤제조·개조·수리를 신설함). 의료취약층을 위해 의료민영화를 하고, 장애인과 어르신들을 위해 원격의료를 한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중소병원을 위한 선의의 정책이며, 항상 포커스는 취약계층이다.
취약계층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정책은 왜 거꾸로…
▲ 원격의료 안내 홍보 자료. | |
ⓒ 보건복지부 | 관련사진보기 |
그런데 취약계층은 정의하기가 어렵다. 빈곤층, 장애인, 사회적 약자, 아동·여성·노인 등 범주도, 취약한 영역도 다르다. 2012년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에 보고한 보고서 ‘취약계층의 객관적 정의 및 고용과 복지를 위한 정책방안’에 따르면 ‘취약계층’은 아래와 같이 정리되어 있다.
‘취업활동과 생애 과정에서 부딪히게 되는 각종 사회경제적 위험에 (현재)노출되어 있거나 노출될 위험성이 높아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보호가 없을 경우 (미래)빈곤층으로 전락하여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계층을 지칭한다. ‘취약계층’은 결과적인 사회경제적 상태(빈곤, 사망 등)를 지칭하기 보다는 그러한 결과에 놓이게 될 과정적 위험성이 높아 정책적 지원과 개인이 필요한 계층을 지칭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취약계층의 정의에는 ①개인적 속성이나 사회적 위치(attributes & position), ②사고(event & accident), ③생애과정(life-course) 등의 차원이 명시적으로 구분되어 정의되어야 하며 그에 맞게 정책수단들도 명시적으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즉, 현재의 상태에 집중하기 보다는 개인적 특성(유전적, 개인 능력의 차이), 사회경제적 위치, 불운, 생애과정(아동과 여성, 노인은 상대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등에서 위험에 처하기 쉬운 계층을 의미한다. 또한 각각의 차원에 따라 각각 다른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이유라면 소득정책이, 건강상의 문제라면 보건의료 정책이, 여성이거나 노인이라는 생애주기별 위협이 문제라면 그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보건의료에서 취약계층과 그를 위한 정책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보건의료에서 취약계층이란 ▲경제적 이유나 거동 불편, 지리적 접근성 때문에 의료서비스 이용에 제약이 있는 사람들 ▲질병에 걸릴 위험률이 높은 사람들 ▲건강상의 취약으로 취업이나 일상생활에서 불평등에 직면하는 사람들이 보건의료 부문의 취약계층으로 분류될 수 있다.
돈 많은 사람이 건강한 이유, 돈 없는 사람이 아픈 이유
건강은 모든 취약계층 발생의 원인이며 결과이다. ‘장애는 빈곤의 절친한 친구’라는 말에서도 그 일단을 살펴볼 수 있듯, 장애와 질병이 있으면 빈곤해지기 쉽고 역으로 빈곤하면 아프기 쉽다.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이다.
저소득층은 건강할 수 있는 정보도 건강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취약한 먹거리는 건강을 악화시키고, 병이 생겨도 경제적 이유로 쉽게 치료받지 못해 가벼운 병이 큰 병으로 악화된다. 비정규직은 노동조건이 취약하고 집이 멀리 있어 출퇴근길과 직장에서 병을 키운다. 그러다가 병이 본격화되면 질병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고 낮아진 소득은 병을 악화시키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부유층은 돈이 많은 것뿐 아니라 건강하기까지 하다. 건강은 아프면 불편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능력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은 학업, 취업, 직장생활, 사회생활, 가정생활 모두를 가능케 하는 역량이다. 건강이 불평등해지면 이런 모든 일에서 뒤처진다. 일생이 불평등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를 ‘빈곤의 덫’이라고 부르며, 이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각각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소득에 관계없이 좋은 주거환경과 먹거리,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을 제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건강상 취약해지기 쉬운 아동·여성·노인층에 집중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질병과 장애가 발생할 경우 소득과 관계없이 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질병으로 줄어든 소득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 연계고리에 ‘의료민영화’가 끼어들 틈은 없다. 의료민영화는 취약계층에게 직격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건강 취약 계층을 범주화하고 핵심 정책 대안을 정리한 표이다.
▲ 건강취약계층과 그 대책. | |
ⓒ 이은경 | 관련사진보기 |
병원에 가기 위해 드는 엄청난 돈, 없으면?
정부의 말대로 원격의료와 부대사업이 확대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원격의료를 위해서는 의료기관과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 기기 말고도 생체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진단기기와 이를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이 같이 보장되어야 한다.
결국 돈과 사람이다. 정부는 모니터와 휴대폰만으로 원격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될 경우, 엄청나게 위험한 진료가 남발되거나, 결국 정부의 말과는 다르게 돈을 내고 기기를 전부 구입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병원에서 판매하는 장애보조기구들 역시 질은 좋을지 모르나 시중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가격이다. 병원에서 헬스장을 짓고, 수영장을 만들면 명의선생님이 권고하는 아쿠아로빅과 건강프로그램을 받으며 명품재활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분들만 환영하는 병원이 된다.
반면, 바로 갈 수 있는 저렴한 공공병원과 동네병의원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진주의료원 폐쇄로 장애인 산부인과와 장애인 치과가 없어진 것은 그 신호탄이다. 이미 상당수의 공공병원이 산중턱, 고속도로 옆, 허허벌판 등 가기조차 어려운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수익이 안 나기 때문이다.
동네병원은 임대업을 허용해 줘, 병상을 줄이고 임대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생겼다. 그나마도 투자하기 어려운 병의원은 원격의료가 본격화되면 살아남을 수도 없게 된다. 그 결과는? 병원에 가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해진다. 자주 병원을 이용해야 하는 건강취약계층은 건강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의료 취약계층에게 직격탄이 될 의료민영화
이런 시나리오는 이미 현실이다.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년도보다 생활비가 더 든 장애인가구는 72%나 되는데, 세부내역을 보면 의료이용, 장애보조기구, 요양간병비로 전부 의료 관련 비용이다. 또한 장애인의 70.0%가 자신의 장애상태와 관련이 있거나 장애 외의 다양한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72.4%가 정기적 진료를 받고 있어 의료 수요 역시 매우 높다. 하지만 18.9%가 최근 1년간 본인이 병의원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경험이 있었고, 가지 못한 이유로는 경제적인 이유가 58.7%에 달했다.
가구 의료비가 가구총소득의 10% 이상으로 의료비가 과부담인 가구 비율은 2008년 상반기 13.63%, 2008년 하반기 14.80%, 2009년 상반기 14.63%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으로, 전체 소득 중에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하위 20%가 제일 크다.
미충족의료와 당뇨환자 비율, 장애등급 보유자 역시 저소득층에 집중되어 있다. 의료비 지출 역시 증가율의 감소는 의료급여 환자에게서 두드러진다. 필요의료서비스 미치료율 또한 소득 수준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 상대적으로 경제적 이유에 의한 미치료율이 높게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비 폭등과 의료의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의료민영화 정책을 취약계층을 위해 추진한다고 사탕발림하는 것은 사기에 가깝다. 건강으로 가난해지지 않아야 하고, 가난하다고 건강이 나빠져서도 안 된다. 이를 지켜주는 것이 국가이다. 그러고 난 연후에 경제성장이든, 산업발달이든 이야기해야 한다. 경제성장만이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 의료민영화한다고 경제가 성장하지도 않는다. 이제 그만 의료민영화의 헛된 꿈을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