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의사가 에볼라 의료봉사단 파견 비판하는 이유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달 16일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전체회의에서 갑작스러운 선언을 했다. 다름 아닌 “한국은 여러 나라로 확산하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 데 이어 보건인력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이다.
문제는 그날부터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더욱 급증하였고, 인도적 지원을 어떻게 누가 할 것인지? 국내방역체계는 대비되어 있는지 등이 조금씩 논의되기 시작했다.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은 서아프리카의 일이고, 에볼라 바이러스의 높은 치사율이 단순한 해외토픽에서 한국사회의 문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의료민영화 정책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결정하면 정부기관과 보건복지부도 빠른 속도로 발맞추어 나가는데, 이번 달 20일에는 조태열 제2차관 주재로 보건복지부, 국방부 및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국장급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관계부처 협의회를 개최해 보건인력 파견에 관한 구체 사항을 협의했다. 여기서 대략 결정된 사항은 선발대를 먼저 보낸다는 것이고, 선발대는 약 20명 정도 보낼 것이며, 의료진 약 10명 정도, 군인을 약 10명 정도 같이 보낼 것이라는 것이다.
보건의료인 지원이 공공병원이나 군 의료진에 집중될 것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자, 정부는 선발대 참가 인원을 24일부터 자원 받기 시작했다. 현재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는 ‘에볼라 위기대응 보건의료인 공모’가 첫 화면에 나온다.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4일부터 시작된 ‘서아프리카 파견 에볼라 대응 보건의료인력’ 공모에 28일 오전까지 의사·간호사·임상병리사 등 약 40명의 자원자가 신청했다고 한다. 약 10명이 가게 되는 의료진 지원자가 벌써 1:4를 넘었다는 설명이다.
급조된 팀이 전염병 대응을 한다?
정부는 처음 아셈의 대통령 발언 때부터 ‘해외에서 유행하는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제대로 구성된 팀 단위의 국내 의료진을 나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사실상 건국 이래 처음이다.’ 라며 이번 조치에 큰 의미를 뒀다.
그러나 이러한 과장성 광고와 달리 전염질환과 관련한 한국의 현실은 매우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일단 에볼라와 같은 고 전염성 바이러스에 대한 전문가가 한국에는 없다시피 하다. 원래 이런 전문가는 대학병원뿐 아니라 질병관리본부 같은 공공기관의 전문가가 필요한데, 한국의 공공보건시스템은 당장 대응할 필요가 없는 질병 관리에는 인색하다.
그리고 공공의료기관 자체가 전염병에 대해 대응을 하기에는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너무 미약하다. 한 줌도 안되는 공공의료기관조차 이런 임무를 거부하기 다반사다. 대표적으로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가 세계적으로 유행할 당시 국립대병원 수장 격인 서울대병원조차 지정병원을 거부한 바 있다. 막상 2009년 신종플루가 한국에서 유행하자, 실제로 민간병원은 거점병원 지정에 반발했고, 서울대병원은 두 차례나 거점병원 지정을 거부한 바 있다. 당시 신종플루의 치사율이 매우 낮았기에 망정이지, 신종플루의 확산을 막기 위한 보유 약제나 병원시스템 모두 엉망이었다.
이런 엉망인 한국의 현실에서 준비된 팀 단위 의료진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정부는 전염병 관리 프로토콜을 며칠 외운 지원자들을 모으면 대응팀이 완성된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그러나 이미 공공의료기관이나 종합병원급에서 사전 대응을 수차례 준비했고, 전문가가 포함된 팀워크가 갖춰진 팀이 있어야 질병 관리차원의 지원단의 실질적 의미가 있다.
더구나 가뜩이나 부족한 공공 의료기관 가운데 진주의료원은 페원됐고, 속초의료원조차 적자 타령에 위기를 겪고 있는 박근혜정부하에서 국내에 에볼라와 같은 고 위험성 바이러스가 들어올 경우 국내 방역조차 제대로 될지가 의문인데, 국제의료지원은 난센스가 아닐까?
전염병 예방의 우선순위
일단 전문가나 준비된 팀이 없지만, 인도주의적 의료진 지원을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기특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전염병에 대한 잘못된 접근방법에서 기인한다. 전염병에 대한 접근에서 의료진은 부차적이다.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과 관련된 여러 비판 중 가장 중요한 지점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치료에 대한 것이 아니다. 왜 수십년전 발견된 바이러스에 대해 예방책이 없느냐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수조원을 들여야 개발할 백신 개발을 등한시 했다는 것이 주된 비판이다. 즉 예방에 대한 국제적 지원이 지금까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예방은 둘째 치더라도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지역에서의 대응도 문제로 떠오른다. 서아프리카 지역의 수준 이하의 공공보건환경이 확산의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전염병의 경우 지역사회의 상하수도 상태, 주거상태, 환자 격리 등 실제로 치료보다는 대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사회 전체를 바꿀 정도의 계획과 자금이 필요하다.
유엔은 약 10억 달러의 에볼라 대응 신탁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는데, 한국은 초기에 60만 달러를 제공했고, 추가로 500만 달러를 내놓기로 했다. 영국은 3200만 달러, 스웨덴은 1500만 달러를 약속했고, 핀란드가 910만 달러를 베네수엘라도 500만 달러를 내놓기로 한 것과 비교된다.
에볼라 지원 외의 국제지원만 살펴봐도 한국의 자화상은 부끄럽다. 한국은 현재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 가운데 하나로 공적개발원조(ODA)를 하는 국가이다. OECD DAC의 자료를 보면 2011년에는 국민총소득대비 공적개발원조 비율이 0.12%로 꼴찌를 하였고, 2012년에 비율이 0.14%로 증가하였으나 국가부도 위기를 겪었던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제외하면 또 꼴지를 했다. 국제사회의 합의된 목표치가 0.7%인 점을 볼 때 한국은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서 가장 부끄러운 국가 중 하나다.
여기에 전체 지원금액의 약 70%가 상환의무가 있는 유상지원금이다. 유상지원금은 사실 생색내기용 금액이다. 상환의무가 크다고 하지 않아도 지원받는 국가나 지역 입장에서는 유상지원금을 냉큼 요청하기 어렵다 보니 공적개발원조금액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다. 정말 저개발국가의 개발원조를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따라서 한국이 정말 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에볼라 창궐지역의 상하수도 및 보건교육, 그리고 의료체계를 갖추는데 일조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의료진보다 여기에 필요한 돈과 인력이 우선 지원돼야 한다.
미국이 가면 우리도 간다?
미국은 이미 서아프리카에 에볼라 확산 방지를 빌미로 약 4000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이에 대해서 서아프리카의 천연자원에 대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로 미국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1970년대 아프리카에서 한번 확산한 이후 이를 연구하면서 바이러스 자체에 대해서는 각종 특허를 걸어두면서도, 백신 개발 등에 대해서는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미국은 우간다 지역에서의 에볼라 의료진 파견을 통해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특허를 국제출연한 상태이다. 이 때문에 ‘아웃브레이크’나 ‘12몽키스’ 같은 영화에서조차 누군가(미국)가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에볼라 바이러스를 연구한다는 ‘음모론’이 회자되고 있다.
지금까지 재난 지역에 대한 정부 차원의 국제 의료지원 역사를 보면 이라크의 경우 미국의 패권전쟁에 한국은 군 의료진을 파병한 바 있다. 동남아 쓰나미 때는 미군 파병과 함께 의료진을 지원한 바 있고, 아이티 지진 때도 미군 파병과 함께 한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서아프리카의 미군 파병, 중국의 대규모 지원 등과 마찬가지로 국제의료지원은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면 정치·군사적 사안이 아닌 때가 없었다. 인도주의적이라는 언사 밑에는 제국주의 질서에서의 한국의 역할에 대한 최소한의 반응일 공산도 큰 상황이다.
즉 박근혜 정부가 선언한 이번 서아프리카 에볼라에서의 의료지원 문제는 ‘인도주의적 지원’이라는 언사와 달리 지극히 국제정치적 사안이다. 정권차원에서는 아셈회의에서 발언할만한 내용이었지만, 사실상 내용이 없는 지원책인 이유, 다름 아닌 생색내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의 처참한 공공의료 현실은 차치하고, 10명의 특공대로 에볼라 대응을 하겠다는 정부의 허언보다도 모순된 것은 정부가 지금 추진하는 ‘국제의료’, ‘의료관광’ 정책과의 관계이다. 새누리당은 의원입법으로 벌써 외국환자 유치알선을 위한 ‘국제의료 특별법’을 국회에 상정하려는데, 외국인을 치료해서 돈을 버는 것을 찬양하는 나라에서 인도주의적 국제진료지원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의료를 국제적 돈벌이로 삼으면서, 재난 지역에 고작 10명의 의료진파견을 광고하는 것이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고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면서 인도주의적 지원을 떠벌리는 모순과 다른 점은 강도의 차이 정도일 듯해 착잡하기 그지없다.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 발행시간 2014-10-30 14:44:00 최종수정 2014-10-30 14:44:00
출처: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808795.html?rsMobile=fal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