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료기술평가 면제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첨부파일 : 국민건강보험_요양급여_기준에_관한_규칙 개정안_의견서 (보건의료단체연합) 8772018d3ca8353cab5c6da906754c47_8TxVjt3jU6NBgMMJpgqN

보건복지부 공고 제2014 – 640호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일부 개정령안에 대한 의견서

 


1. 의견

현재 “신의료기술등의 요양급여 결정신청”(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10조)에 대해 명시한 규정을 변경하여 임상시험을 통해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신의료기술의 경우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치지 않고 요양급여 신청을 가능하도록 하는 규칙 개정안에 반대하며 이 개정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2. 의견에 대한 사유

◌ 현재는 식약처 품목허가를 거친 의료기기라 하더라도 그 의료기기를 사용한 의료기술에 대하여 ‘신의료기술평가’ 과정을 거친 후에야 환자에게 사용하고 요양급여 결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의료기기가 임상시험을 거쳐 품목허가만 받으면 곧바로 환자에게 사용하고 요양급여 결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려 한다. 즉 ‘신의료기술평가’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정부는 이미 올해부터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한 규제완화를 추진했고 상당히 규제를 완화시켜 신의료기술평가제도를 일부 무력화시켰다. 4월에는 신의료기술평가 제외 대상을 확대하여 체외진단검사기기와 시술기구의 상당수를 관련 기술의 신의료기술평가 없이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제한적 의료기술’이라는 범주를 추가하여 안전성은 있으나 효과성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여 탈락한 의료기술을 비급여로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8월에는 의료기기의 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를 동시에 진행하는 ‘원스톱서비스’를 시행하였다. 이러한 규제완화는 국민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위험한 조처였다. 또한 특히 체외진단기기에 대하여 특혜를 주어 원격의료의 도입을 빠르게 앞당기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추진되는 규칙 개정안은 규제 완화의 수준이 아닌 신의료기술평가제도를 아예 생략해버리도록 하는 것으로 그 심각성이 앞서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 정부는 식약처에서 임상시험을 거쳐 품목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신의료기술만 신의료기술평가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식약처의 품목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신의료기술평가는 평가의 대상, 내용, 방법이 완전히 다른 것이므로 서로를 대체할 수 없다. 식약처 품목허가는 의료기기를 대상으로 하며 그것의 단기적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기기 자체의 물리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것으로 품목의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신의료기술평가는 (의료기기 등을 이용한) 새로운 의료기술을 대상으로 하며 장기간 연구된 기존 문헌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의료행위의 부작용, 합병증, 사망 등의 결과지표를 분석하고 의료결과의 향상, 진단검사의 정확도 등을 판단함으로써 그 기술의 사용 대상과 시술 방법 등을 결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현재까지 식약처의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이후 신의료기술평가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여 환자에게 쓰지 못하도록 결정된 의료기기는 무수히 많다. 신의료기술평가가 시행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6년간의 자료를 보면 총 신청 1349건의 의료기술 중 694건은 평가대상이 아니라고 판정을 받았고, 나머지 620건 중에서도 471건만이 신의료기술로 인정을 받았다. 즉 신의료기술평가제도는 기존 기술과 유사하거나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하기에 연구결과가 부족한 연구 51.4%를 애초에 제외할 수 있었고 평가과정에서도 안전성·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24.1%의 기술을 차단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의료기기가 품목허가를 통과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기술의 임상적 근거까지 확인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신의료기술평가 과정이 없으면 효과가 없거나 환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많은 의료기술들이 환자에게 적용되어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 심지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도 지난 10월 31일 보고서를 내어 ‘의료기기 허가심사와 신의료기술평가의 평가 영역은 서로 다르며, 허가심사에서 임상시험자료의 검토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의료기기가 동반된 의료행위에 관한 의료기술평가절차를 생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이라는 결론을 내놓은 적이 있다.

◌ 정부는 또한 지난 2일 ‘신의료기술 요양급여 등재절차 개선 관련 간담회’에서 임상시험자료를 통해 허가한 의료기기가 2011년부터 2013년 사이에 3%에 불과하다며 매우 적은 수의 의료기기만이 신의료기술 생략 대상에 해당하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런데 의료기기법 시행규칙 제7조제2항에 따르면 식약처 품목허가를 받으려는 의료기기는 임상시험 결과를 제출할 의무가 있으며 임상시험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도 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기는 “이미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와 구조·원리·성능·사용목적 및 사용방법 등이 본질적으로 동등한 의료기기”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임상시험을 거쳐 식약처 허가를 받는 것은 ‘새로운’ 의료기기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새로운 의료기기를 이용한 의료기술이야말로 신의료기술평가를 꼭 거쳐야 할 대상이지 평가를 면제받아서는 곤란하다. 또한 현재는 임상시험을 거쳐 품목허가 받는 의료기기가 3%에 불과할지라도, 개정안이 시행되어 임상시험자료 제출이 신의료기술평가 면제의 조건이 되면 허술한 임상시험이 수없이 자행되어 그 비율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부실한 임상시험자료로 신의료기술평가를 건너뛰고 않고 환자에게 곧바로 적용될 위험한 의료기기와 의료기술들은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 정부는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된 제품에 대하여 요양급여 절차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임상시험 요건을 강화(비교 임상문헌 존재시)하고, 식약처 허가가 특정 사용대상·목적 등을 한정한 경우에 한해 허용할 계획”이라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보도자료의 내용과 달리 실제 개정안은 두 조건 중 하나만 만족하면 신의료기술평가 생략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각각의 조건 역시 신의료기술평가를 생략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먼저 임상문헌이 존재하는 경우는 오히려 그 문헌에 대한 체계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하지 검토를 생략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임상문헌을 요양급여 결정을 하는 건강보험심사평원으로 넘긴다고 하여 제대로 된 평가가 될 리도 없다.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그 역할과 인적 구성 모두에서 철저하게 다른 기관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식약처에서 특정한 사용대상·목적 등을 한정하여 허가한 의료기기라고 하여 안전성과 효과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명백하다.

◌ 정부는 또한 보도자료에서 “안전상 위해요소 등이 있는 경우에는 요양급여 결정과정 중간이라도 직권으로 신의료기술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개정안에서 그것은 ‘보건복지부장관이 필요하다고 평가한 경우’로 되어 있을 뿐이어서 구체적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이 현실화되면 신의료기술 평가를 생략한 안전하지 않은 수많은 의료행위와 그와 관련된 의료기기가 빠른 속도로 병원 현장에 도입될 것이다. 의료기기의 조속한 시장 도입을 꿈꾸는 의료기기업체들 입장에서는 1년이나 빠르게 의료기기 판매의 길이 열리는 것이며, 병원은 환자를 상대로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여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 입장에서 이는 의료비를 폭등시키며, 효과도 없고 안전하지도 않은 의료행위로 병원을 위험하게 만들 조치일 뿐이다. 정부는 기업과 병원에게는 엄청난 이익이지만 국민들에게는 재앙이 될 의료민영화 조치들을 계속해 시도하고 있다. 이번 신의료기술평가 생략 역시 마찬가지로 매우 심각하고 노골적인 의료민영화 정책 중 하나이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파괴할 이 개정안을 즉각 폐기하여야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