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슬쩍 약값 인상… 정말 너무한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 ‘약가제도 개선안’ 입법 예고… 의료 보장성 먼저 강화해야

정부는 12월 17일 ‘약가제도 개선을 위한 시행규칙·고시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내용을 보면 무엇보다 “신약 가격이 낮다”며 투덜대던 제약회사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 신약 가격이 오르면 제약회사는 돈을 벌지만, 환자들과 건강보험의 부담은 증가한다.

2000년 통합 국민건강보험이 출범한 이후 국민들이 내는 약값(약제비)은 매년 1조 원씩 가파르게 상승했다(2011년 6월, 심평원 보도자료 ‘우리나라 약제비 증가 경제성장 속도, 노인인구 증가보다 빨라’). 시민사회단체들이 ‘비싼 약값 때문에 보험 재정이 고갈될 위기’라는 주장에 정부는 2006년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약제비는 2006년 이후로도 매년 꾸준히 상승해 왔고, 2012년 약값을 일괄적으로 인하하고 나서야 겨우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약가제도 개선안 입법예고, 왜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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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 가격이 오르면 제약회사는 돈을 벌지만, 환자들과 건강보험의 부담은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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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부는 약가 일괄 인하를 시행하면서,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제약회사들에게 R&D 지원, 투자 및 융자, 경비지원, 세액 공제, 약가우대 등의 많은 혜택을 줬다. 여기에는 제약산업의 발전이라는 명목이 따라 붙었다. 이를 통해 매년 1000억 원의 세금이 제약회사에게 지원되었다(2014년 10월 남윤인순 의원실 보도자료 ‘혁신형 제약기업 정부지원 셀트리온 1위’).

그런데도 제약회사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신약 개발과 임상실험에 대한 지원, 약값 규제 완화 등 더 많은 지원을 요구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이러한 요구가 관철되는 방식이 ‘투자활성화대책’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5월 29일 ‘심평원 규제개선 대 토론회’를 개최하여 약값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제약회사들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호의를 보였다. 결국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와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11월 20일 제약회사 대표들을 만나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12월 2일 이 모든 요구들을 다 담아 ‘제약산업 육성 5개년 계획 보완조치’를 발표하고 17일 입법예고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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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 등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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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의약품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식약처에서 허가받은 신약이라고 해서 기존 의약품에 비해 뛰어난 약효를 지닌 것은 아니다. 2007년 미국 FDA에서 최근 10년간 허가한 신약들 중 22%만 기존 의약품보다 약효가 나은 것으로 평가되었다(의약품정책연구소 2008. 3권1호).

그러나 제약회사들은 기존 약과 큰 차이가 없는 약을 내놓고 ‘신약’이라는 이름만으로 높은 가격을 요구한다.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은 이 같은 요구가 적당한지, 국민들이 납부하는 보험료를 헛되이 쓰지 않기 위해 신약의 적정 가격과 급여 여부를 꼼꼼하게 평가한다.

그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아래 건보공단)과 제약회사가 약 가격을 정하는 협상에 들어간다. 협상에서 적절한 가격이 정해지면 그제야 의약품은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정부는 무력화 시키려 하고 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약가제도 규제 완화는 크게 4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 개선된 신약의 협상가 기준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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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장약 3종류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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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가격을 매길 때, 기준으로 삼는 가격이 있다. ‘대체약제 가중평균가’(아래 평균가)라는 가격인데, 정부는 이를 ‘비교약제 개별가격’(아래 비교가)으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이름만 들어서는 무슨 말인지 어려우니 다음 예시를 통해 설명을 하고자 한다.

위장약 3종류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평균가는 쉽게 말해 평균 가격을 말한다. 전체 위장약 판매금액 6만5000원을 전체 사용량 1000T로 나눈 가격 65원이 평균가가 된다. 반면 비교가는 사용량이 가장 많은 약제가 비교약제가 되므로, 예시대로라면 가장 사용량이 많은 라니티딘은 100원이 된다. 이렇게 하면 신약 가격이 50% 가량 상승하는 효과가 생긴다.

2011년 가장 사용량이 많은 의약품을 보면 대부분 유명한 제약회사에서 나온 고가의 신약인 경우가 많다. 평균가는 기존 저가 약품도 같이 합산해서 평균을 내는 데 비하여 비교가는 고가 신약 가격만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약가가 비싸지는 건 삼척동자도 알 만한 사실이다. 비싸진 약가는 누가 감당하는가?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다.

② 신약 협상 과정 생략

앞서 언급했듯 신약이 급여 혜택을 받기 전, 마지막으로 건보공단과 제약회사가 60일간의 가격 협상에 들어간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완화하자고 한다. 환자와 제약회사들은 신약의 빠른 급여 혜택을 원하는데, ‘약가를 깎기’ 위한 협상 기간이 너무 길다는 이유다. 이에 정부는 일정 정도의 낮은 가격(새로운 계열의 신약의 경우 평균가의 100%, 기존 계열 신약의 경우 평균가의 90%)을 제약회사가 수용하면 협상을 생략하고 신약의 급여 혜택을 바로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신약 도입 속도가 타 국가들에 비해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이미 허가-보험평가 연계제도와 심평원의 평가 일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신약 도입 속도가 빠른 편이다. 때문에 신약 협상 과정을 생략하자는 것은 신약을 빠르게 도입해 달라는 제약회사의 요구를 아무 근거 없이 들어준 것에 지나지 않다. 신약의 경우 독점 판매할 수 있는 특허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제약회사들은 하루라도 더 빨리 급여 혜택을 받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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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국가들의 신약 허가 및 등재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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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런 약가 협상 생략 과정은 약가 상승으로 이어져 문제다. 지난 11월, 최동익 의원실에서 밝힌 자료 ‘제약회사 배불리기 혈안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가격 협상 과정에서 약값은 평균 약 14% 정도 절감된다. 때문에 가격 협상을 생략하면 약값이 비싸지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에 대해 정부는 ‘새로운 계열의 신약의 경우 평균가의 100%, 기존 계열 신약의 경우 평균가의 90%를 수용하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신약 협상 과정 생략이 제약회사가 선택할 수 있는 제도라는 걸 간과한 말이다. 협상 과정에서 평균가의 90% 이하로 책정될 것이 예상되는 약제는 협상을 생략하고, 약가협상에서 90% 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약제는 협상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새로운 계열의 신약이거나, 생물의약품, 희귀질환 치료제라는 이유만으로 평균가 100% 가격으로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로가 있다. 따라서 제약 업체가 선택할 수 있는 약가 협상 생략 과정은 필연적으로 약가 상승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③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제성 평가 생략

신약의 급여 여부는 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판가름 난다. 제약회사들은 급여 신청시 신약 가격을 매우 높게 부르기 때문에 경제성 평가가 꼭 선행된다. 그런데 정부는 희귀질환 신약은 심사시 평가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며 이 과정을 없애고, 선진국(A7) 약가를 그대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2003, 2004년 기준으로 선진국 신약 평균가격은 한국의 두 배 정도였다(2005년 11월, 심평원 김선미 의원실 제출자료 ‘한국-A7국가, 일반신약 보험약가 비교’)는 것을 생각해보면 약가 상승은 불 보듯 뻔한 이야기이다.

또한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제성 평가는 해당 환자 수가 많진 않아 어려운 것이지,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다. 게다가 희귀질환 치료제는 이미 작년 9월 발표한 약가제도로 인해 ICER(경제성평가 값)의 상향이 이루어져 일반 질환보다 가격을 높게 인정해주고 있으며 위험분담계약(Risk Sharing Agreement) 제도에도 해당되어 있다. 희귀질환의 범주를 어디까지 봐야 할지도 논란 거리다.

④ 수출 신약의 사용량-약가 연동제 폐지

제약회사가 건보공단과 약가 협상을 진행할 때는 신약의 가격만 협상하지 않는다. 협상에서는 해당 약제가 1년간 얼마가 판매될지 예상하는 ‘예상 사용량’도 정한다. 1년 후 예상 사용량보다 판매액이 훨씬 더 커진 약들은 그만큼 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다음해 가격이 깎이게 된다.

약제비가 폭등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이 제도를 ‘사용량-약가 연동제’(아래 연동제)라고 한다. 연동제는 2007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어 2012년 감사원이 발간한 ‘건강보험 약제비관리실태’ 감사 자료에서 제대로 운영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때문에 정부는 작년 9월 강화된 연동제를 발표하고 올해부터 시행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제약회사들은 이 제도가 지속적으로 약가를 깎아 의약품 수출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며, 약가를 깎지 말 것(리펀드)을 요구했다. 이것을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감사원에서조차 연동제를 제대로 운영하라고 지적했고, 강화 계획까지 실행해야 했던 정부가 대형제약회사들의 수출을 위해 이 제도를 폐지해 버린 것이다.

원래 해외국가와의 약가협상은 어디까지나 수출하려는 제약회사의 몫이다. 이를 도와주기 위해 연동제를 수출약에 적용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제약 회사의 이윤을 챙겨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리고 단순한 약가 인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의 재정까지 약화시키게 된다.

약값과 보장성, 어떤 것을 올려야 할까?

환자 개개인은 약값이 일부 상승해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잠시 동안만 복용하는 약제에 한정된다면 그 여파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 가격의 상승은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다.

만약 100원에 들어와야 할 신약 가격이 110원이 되면, 그 차액은 올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건강보험 재정에 누적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여기다 특허가 만료되거나 무효가 된 후 도입되는 복제약의 가격도 특허약의 가격을 기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덩달아 상승된다. 즉 단기간의 약가 인상폭과는 비교가 안 되는 총액 약가의 증가가 발생한다.

정부는 이런 약가 인상 도미노가 일어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약회사의 이윤극대화를 위해 핵심적인 약가 규제까지 완화해 주려 한다. 박근혜 정부는 정말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올해 말까지 건강보험 흑자 재원이 12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막대한 재원을 어디에 먼저 써야 할지를 두고 지금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흑자를 핑계로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삭감하려고 하고 병원들은 너도나도 급여 행위를 늘리고, 수가를 인상해 이 돈을 가져가려 한다. 이러한 흑자 나눠먹기에 숟가락을 올리려는 게 제약회사를 위한 이번 규제 완화책이다.

2014 OECD 헬스 데이터(Health Data) 주요지표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의료비 중 약값 비율은 19.8%다. OECD 평균치(15.5%)를 상회한다. 이에 반하여 건강보험 보장성(의료비 중 공공재원 비중)은 54.5%로서 OECD 평균치인 72.3%에 못 미칠 뿐 아니라, 미국과 멕시코 다음으로 엉망이다. 그리고 이런 엉망을 조장하는 것 중 하나가 약가 정책이다.

무엇보다 보장성을 넓혀야 할 소중한 재원이 제약회사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는 즉시 ‘약가제도 개선을 위한 시행규칙·고시개정안’을 폐기하고 건강보험 흑자를 국민들의 의료비 경감에 도움되는 보장성 강화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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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OECD Health Data 주요지표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의료비 중 약값 비율이 19.8%로서 여전히 OECD 평균치(15.5%)를 상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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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백용욱은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사무국장,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입니다.

 

원문 출처: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66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