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탄저균,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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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균 사고 책임 안 묻는 美 국방부

사건 발생 두 달을 넘겨 미국 국방부는 탄저균 배달 사고에 대한 검토 보고서 발표 기자 회견을 했다.로버트 워크 미국 국방부 부장관은 살아있는 탄저균이 86개 실험실, 7개국에 배달된 사건을 두고 “용납할 수 없는 구조적 실패”라고 공식 인정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미 국방부의 살아있는 탄저균 배송 사건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실제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송된 시험장은 더그웨이 시험장뿐이라면서도 이곳에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결국 ‘탄저균 포자 사균화 관련 검토위원회’ 명의로 작성된 미 국방부의 조사 보고서는 탄저균 배달 사고 발생의 이유나 책임 소재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31명의 노출 피해자 인적 상황, 22명이라는 압도적인 노출 피해자를 발생시킨 주한 미군 평택 오산 기지 사태, 그리고 살아있는 탄저균이 발생한 시기와 배송 지역에 관련된 보고서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정보마저 모두 누락된 수준 미달의 보고서였다.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

미국 국방부 보고서를 세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사고는 났지만 모두가 규정은 지켰다. 더그웨이 시험장에서만 사고가 났지만 더그웨이도 규정은 지켰다. 그러므로 규정을 고치면 될 뿐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

보고서의 대전제는 앞으로도 방사선 조사를 통한 비활성화라는 불안한 탄저균 샘플 생산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보고서의 목적은 살아있는 탄저균이 나타날 가능성, 즉 불량품 발생을 낮추고자 작성하는 것이지 누군가의 책임을 묻거나 안전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 때문에 보고서는 더그웨이 시험장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었으면서도 아무런 추궁을 하지 않는 것이며,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도 대부분 누락시키고 있다.

보고서가 지목한 더그웨이 시험장의 문제들

원래 미 국방부 보고서의 목적은 “불완전한 탄저균 샘플의 근본 원인을 규명하고, 왜 생산 후 검토 과정에서 이것이 확인되지 못하였는지, 실험실은 관련 절차와 규정을 준수했는지,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고서에는 더그웨이 시험장에서만 발견되었던 문제를 주목하고는 있다. 보고서에서 지적한 문제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더그웨이 시험장의 결함의 첫 번째 문제는 생존성 시험이다. 생산된 탄저 포자 중 일부에 대한 표본 조사를 해야 하는데, 더그웨이는 미 국방부 시험장들 중 가장 낮은 비율인 5%만을 실시했다. 비활성 탄저균을 생산, 배송하는 미 국방부의 다른 실험실들은 10% 이상 표본 조사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방사선 조사 후 생존성 시험까지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 혹시 살아남은 탄저균이 회복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회복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이 시간이 가장 짧았다고 한다. 더그웨이 시험장처럼 많은 양을 생산하는 곳에서는 이 두 가지 이유로 살아 있는 탄저균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 보고서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는 않지만, 생산을 늘리기 위해 더그웨이가 과학적 데이터의 범위를 벗어나는 많은 양의 포자에 방사선을 조사하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왜 살아 있는 탄저균을 배송한 유일한 연구소인 더그웨이 시험장의 잘못을 묻지 않는가?”

24일 기자 회견장에서도 당연하게 이 질문이 나왔다. 네 군데 시험장의 규정들이 제각각이었다면 누군가 최저 수준의 규정을 결정하였을 것이며 또한 그곳이 더그웨이였다면 이 책임을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 말이다. 그러나 미 국방부의 주장은 더그웨이 시험장이 표본 조사량이 적고 검사 시간이 짧았다는 점이 살아 있는 탄저균이 그대로 배송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연결되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대량 생산’이라는 더그웨이 시험장이 미 국방부 내에서 갖는 중요한 역할 때문에 불가피하게 ‘불량품’이 나타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중요하게 짚어두어야 할 것은 더그웨이 시험장이 생물 무기 방어 영역에 있어 생산이라는 특별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 더구나, 더그웨이 시험장은 타 화생방 프로그램 연구개발을 위해 생산하는 비활성 세균 샘플과 독소들의 주요 생산자이며. (…) 미 국방부 내 비활성 탄저균의 최대 생산자이다.”

보고서는 비활성 탄저균 대량 생산을 그만둘 수 없다는 미 국방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배달 사고가 난 더그웨이 시험장의 문제를 전반적인 실험실 표준화와 규정의 문제로만 정리하기로 결론을 내고 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두 달여에 걸친 미 국방부의 보고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정상적인 정부라면 지금 한국 정부가 미국에 물어야 할 것은 최소한 두 가지다. 주한 미군이 한국 땅에서 실시한 훈련의 내용과 그 실험의 정당성 말이다.

미 국방부가 최소한 더그웨이 시험장에 대한 문책도 하지 않기로 결론을 냈다면, 불법 반입과 실험과 훈련이 자행된 평택 오산 기지 주한 미군 문제라고 해서 어떤 대응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미 국방부 보고서에도 이번 사태로 탄저균에 노출된 피해자 31명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다. 단지 처음 배송된 6개 실험실에 8명에 대한 예방적 항생제 치료를 했다는 것만 적시돼 있을 뿐이다.

게다가 6개 실험실에 8명이 노출되었다고 하면서 22명이 한꺼번에 노출된 평택 오산 기지의 노출 피해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또 한국 등 7개 국가와 미국 내 86개 실험실에 배송된 살아있는 탄저가 어떤 배지(batch)에서 언제 생산된 것인지 등에 대한 내용도 누락되어 있다.

우리에게 불법 반입된 탄저균이 죽어있는가 살아있는가가 중요했던 이유는 그것이 다른 국가나 미국 실험실들과는 달리 실제 훈련에 이미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훈련과 실험의 내용에 대해 한국 정부가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으며 이를 감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탄저균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리고 어떤 사고가 날 수 있고, 이미 났는지조차 제대로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전 글에서 주장했다시피 그 훈련과 실험들은 매우 위험하고 주한미군 주변 한국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에 위협이 될 만하며, 살아있는 탄저균이라면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된다. 그런데 미 국방부의 보고서를 통해서도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고, 한국정부는 아무런 질문도 문제제기도 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주한 미군의 훈련과 실험은 여전히 어떤 위험성이 있었으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향후 어떻게 될 것인지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다.

한미 합동실무단, 한국 국방부의 자존심을!

이제 한미 합동실무단이 주한 미군 오산 기지를 방문 조사하는 것이 남았다. 이미 8월 6일로 조사일까지 합의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주권국가로서 최소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미 국방부 보고서에 누락된 주한 미군 탄저균 실험에 관련된 내용을 모두 조사해야 한다.

훈련 과정에서 22명이 한꺼번에 노출된 이유와 원인에 대한 근거 있는 답변을 받아 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하며,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또 미군이 진행하려고 했던 야외 세균 실험 계획과 시행 여부에 대한 조사도 반드시 이뤄져야한다. 늦었지만 한국 정부가 최소한의 자존심을 보여주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관련 기사 : ① 왜 한국에서 22명이나 탄저균에 노출되었나? ② 미군 용산 실험실 세균의 정체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