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마지막 환자, 공공병원서 다시 진료받을 수 있을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864032.html#csidx3175d2657e248c58381b3b1bbf887f7

보건복지부 공공의료 발전대책 발표

의료서비스 지역 격차 줄이기 위해
70여개 지역에 책임의료기관 지정
병원 없는 곳은 공공병원 신축도

“공공의료 강화 미흡…짜깁기 정책” 지적도

10월 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에서 박능후 장관이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 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에서 박능후 장관이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상남도 진주시에 사는 서해석(71)씨는 자신을 ‘병(病) 백화점’이라고 소개했다. 간경화, 고혈압, 당뇨, 관절염, 백내장 등으로 먹는 약만 10여가지다. 서씨는 2013년 4월 폐업한 진주의료원의 마지막 환자 가운데 한 명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이자 독거노인인 그는 10여년 동안 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을 드나들었다. 1년에 두어차례씩 간경화로 쓰러져 한달 정도 입원했다. 대학병원에서는 하루 7만~8만원씩 내며 간병인을 써야 하지만, ‘보호자 없는 병동’ 사업을 실시했던 진주의료원에서는 간병비 걱정이 없었다.

“고향 같은 병원을 떠날 때 서운해서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봤지라예.”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고 그 건물에 경남도청 서부청사를 옮겨온 탓이다. 요즘 서씨는 진주에 있는 다른 민간병원을 다닌다. “진주의료원과 달리 2주 정도 입원하면 무조건 퇴원하라 하대요.” 진주의료원 폐업 이후 장애인 치과 등 공공의료 사업은 인근 민간병원으로 떠넘겨졌다. 강수동 서부경남공공병원 설립 도민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진주의료원이 없어진 뒤 의료취약계층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진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지역 간 의료격차는 심각하다. 수도권에 양질의 의료 자원이 집중된 탓이다. 서울 강남구의 ‘치료 가능 사망률’(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았다면 사망을 피할 수 있었던 사람의 비율)은 인구 10만명당 29.6명인 반면, 경북 영양군은 107.8명에 이른다(2015년 기준). 산모가 분만 의료기관에 도착하는 평균 시간도 전남(42.4분)이 서울(3.1분)의 13배를 넘는다. 이런 지역 간 의료격차를 줄여줄 버팀목이 그나마 공공병원이다. 하지만 한국의 공공보건의료기관 비율(5.4%)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다.

1일 보건복지부는 공공의료를 강화해 필수 의료서비스의 지역 격차를 없애겠다는 내용을 담은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가장 큰 뼈대는 인구, 의료이용률, 병원과의 거리 등을 고려해 전국을 70여개 진료권으로 나눈 뒤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하는 것이다. 광역시·도에서는 국립대병원이 공공보건의료 전달체계의 ‘중추’가 되어 의료인력 파견·교육, 환자 연계 등을 맡는다. 70여개 지역 책임의료기관으로는 지방의료원·적십자병원 등 공공병원이나 민간병원이 지정된다. 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된 민간병원이 ‘공익특수의료법인’으로 전환하면 공공병원과 비슷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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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서비스가 취약한 지역에는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의 기능을 보강하고, 공공병원 구실을 할 의료기관이 아예 없는 곳에는 공공병원을 새로 짓는다. 진주의료원이 있던 경남 서부권이 대표적이다. 구체적인 진료권 지역 분류는 내년 상반기께 나온다. 정부는 지방의료원 기능 보강 예산을 84% 늘려 내년에 977억원 편성해놓은 상태이고, 공공병원 신축 예산은 2020년에 반영할 계획이다.

지역 책임의료기관은 퇴원 환자가 동네에서 이용 가능한 병·의원이나 보건소를 연계하는 일도 맡는다. 정부는 내년에 예산 30억원을 신규 편성해 국립대병원에 ‘공공의료 협력센터’를 설치한 뒤에 지역 의료기관과의 협력 강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 정부 대책에 나온 공공병원 확충 목표가 불분명하고 책임의료기관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의료계에서 제기되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민간병원에 공공의료를 맡기는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시작된 일”이라며 “민간병원은 아무리 수가를 올려줘도 결핵·메르스 등 돈 안되는 진료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노무현 정부 때의 ‘공공병원 30% 확충’이라는 목표에도 못미치는 미흡한 수준의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 국립대병원의 의사는 “우리나라처럼 환자들의 특정 병원 쏠림이 심한 곳에서 정부가 관념적으로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수직적인 체계를 마련한다고 해서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의료시스템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이 아닌 짜깁기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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