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경제성장 도구 될 수 없다

2018-09-19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최근 경기 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 속에 신산업 촉진에 대한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들 신산업 촉진요구가 이들에 대한 지원책보다는 주되게 국민생명과 안전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청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규제개혁을 하지 못해 작금의 경제위기가 가중되는 양 주장되고 있다. 이들 신산업은 대부분 ‘가능성’에 기반을 두고 있음에도 기초과학 투자보다는 최종판매상품과 관련된 규제완화에만 열을 올린 기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여기에 바이오헬스산업발전을 핑계로 보건의료 규제완화가 다시 추진되고 있다.

지난 정권과 달라진 것 없어

경총이 제시했던 9대 혁신성장과제만 보더라도 영리병원, 원격의료, 영리약국설립 허용, 의사 간호사 공급확대 등 보건의료부분이 4가지나 포함됐다. 7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신의료기술평가 간소화, 산,병 협력단(병원기술지주회사) 도입등의 방안을 제시했고 정부가 반대하던 원격의료 허용에 대해 언급했다. 재벌 민원을 처리해준 것으로 알려져 ‘최순실법안’으로 불리던 규제프리존법도 여·야 합의가 이뤄졌다. 규제프리존법에는 병원부대사업확대, 개인건강정보활용, 기업실증특례제도를 통한 제약,의료기기사업의 평가간소화 등이 포함돼 사실상 민영화 법안이다. 끝으로 빅데이터활성화를 위해 개인정보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완화도 예고되었다. 개인정보 중에서도 기업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것은 생체정보인 건강정보이다.

이런 연속된 보건의료규제완화책은 지난 10여년간 추진되던 의료민영화 과제와 유사하거나 동일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이들 과제 상당수를 ‘의료민영화’로 같이 비판하던 현집권여당이어서 실망감이 크다. 하지만 도덕적 문제보다는 현정부 스스로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 즉 스스로 오락가락 하는게 더 문제다.

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성장’으로 불리는 분배를 통한 성장론을 주창했다. 그런데 보건의료지출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낮출 수 있는 필수지출로 필연적으로 가계소비 및 건전한 지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약화시킨다. 사람은 누구나 아프기 때문에 기업들이 호시탐탐 노리던 시장이 사람의 건강과 관련된 부분이지만, 건강보험등의 제도가 마련된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즉 최저임금과 소득을 올려도 의료비, 약값이 더 들어간다면, 실제 가계지출은 늘어나지 않는다. 소득증대가 타산업 발전에 도움이 안되는 건 자명한 원리다.

거기다 현 정부는 비보험을 없애 국민들의 의료비 걱정을 덜어주겠다는 ‘문재인케어’를 불과 1년전에 주장했다. 효과가 불분명한 의료기기 및 검사들이 도입된다면 ‘문재인케어’는 불보듯 실패할 것이다. 보건의료규제완화 와 문재인케어는 근본시각부터 모순되어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OECD 선진국은 보건의료부분을 산업이 아니라 공공재로써 철저히 관리한다. 특히 독일,일본 등 제조업 선진국들은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복지제도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완화된 규제속에서 시장에 진입한 의료기기 및 약품이 해외에서 경쟁력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이게 한국 식약처에서 승인된 약품의 상당수가 미국,유럽,일본에서 승인받지 못한 이유이다.

‘문재인 케어’ 추진 발목 잡을 것

하지만 한국에서는 보건의료산업화 와 민영화를 통해 일자리도 크게 창출되고, 경제성장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겨왔다. 더구나 보건의료 부분 일자리조차 공공병원과 같은 공익적 보건사업 확대가 영리병원 같은 영리사업보다 휠씬 낫다. 보건의료부분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인력을 축소하고, 가격은 높게 받는 방식밖에 없다. 보건의료부분은 생산제조업이 아니라 태생부터 사회를 보좌하는 필수서비스산업이다. 따라서 주요선진국 누구도 추구하지 않는 보건의료부분 시장화 정책은 망상이고 허상이다.

더구나 보건의료부분 AI 도입, IT연계는 작금의 일자리 부족을 해결할 방향이 아니라 일자리를 축소할 구조조정 정책일 공산이 크다.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산업성장의 먹잇감으로 보건의료를 거론해선 안된다. 정상국가로 돌아가야할 과제 중 하나는 보건의료의 공공적 성격을 공고히 하고 더 이상 산업발전과제로 보건복지부분을 거론하지 않는 것이다. 이게 상식이 되어야 한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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