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족한 국공립병원 확충과 의료인력 고용 확대가 제대로 된 코로나19 위기대응 뉴딜⦁일자리 대책이다.
정부가 코로나19 위기를 빌미로 원격의료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비대면 의료서비스 산업 육성’을 언급한 바 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29일 ‘비상경제 중대본’ 회의에도 ‘한국판 뉴딜’로 원격의료가 논의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시민 모두 코로나19를 이겨내자며 힘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민영화’ 추진이라니 어이가 없다. 질병관리본부가 밝힌 대로 코로나19는 2차 유행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차 유행에 대비한 공공의료 강화 방안에 대해서 정부는 별달리 진척된 내용을 밝힌 바 없다. 지금은 국가가 예산과 행정력을 총 동원해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공공병상과 중환자병상, 공공 의료인력과 의료인 보호장비 등을 확보하는데 집중해도 모자랄 시기다. 그런데 거꾸로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며 의료민영화를 꺼내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우리는 이 정부가 제대로 된 상황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과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아래와 같이 강력히 요구한다.
첫째, 정부는 재난을 빌미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해선 안 된다.
현재 병의원이 하고 있는 비대면 전화상담은 불가피하게 용인되는 한시적 조치다. 많은 사람들이 온전하지 못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으며 다소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때를 틈타 제도적 원격의료를 추진하는 것은 재난상황을 이용한 기업의 영리추구, 즉 전형적인 ‘재난자본주의’다. 이를 위해 앞장서는 것은 매우 질이 나쁜 정치다. 메르스 유행 당시 삼성병원을 중심으로 원격의료를 시도하고 해외환자유치 법을 통과시키려 했던 박근혜 정권과는 달라야 하지 않는가?
정부와 경제계가 현재 수준의 전화상담과 연관지으며 원격의료를 제시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전화상담이 무슨 돈이 된다고 ‘비상경제 대책’이겠는가? 기업들이 노리는 핵심은 손목시계형 심전도장치 등 디지털 장비와 통신설비를 판매하는 것이다. 값비싼 기기와 설비를 사용해서 의료비를 높여야 ‘경제대책’이고 돈벌이가 된다. 하지만 비싸기만 할 뿐 수없이 시범사업을 했지만 안전과 효과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못 내놓았던 것이 원격의료다.
원격의료는 안전·효과가 입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환자 대형병원 쏠림으로 의료전달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고, 필연적으로 민간 통신기업에게 개인 질병정보 집적을 허용하기에 정보유출 위험도 적지 않은 기술이다. 벽오지·도서지역에 필요하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전국 지자체 4곳 중 1곳이 응급의료 취약지다. 취약지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기계 판매가 아니라 방문진료체계와 응급시설을 갖춘 공공의료다. 재난 상황에서 이 자명한 사실을 또다시 논해야 하는 현실이 기막히다.
둘째, 제대로 된 정부투자와 일자리 창출방안은 국공립병상 확충과 공공의료인력 확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와 고용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 국가사업을 추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비대면 산업 육성 뜻을 밝혔다. 그런데 코로나 위기 시대에 진정 그 목표를 달성할 방안은 겨우 전체 병상의 10% 밖에 안 되는 공공병상을 대폭 확충하고, OECD 평균에 턱없이 못 미쳐 과로노동에 허덕여온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력을 공공 인프라로 양성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이것만큼 시급하고 필요한 뉴딜이 있을 리 없다.
단적으로 한국은 병상 당 간호인력이 OECD 평균의 3분의 1 밖에 안 된다. 감염병 사태에서 헌신과 희생이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은 평소에도 살인적 노동환경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간호인력은 비상상황이었다. ‘덕분에 챌린지’가 아니라 이 현실을 바꿀 사회정책을 내놓는 게 정부 역할이어야 한다. 법적으로 환자 당 간호인력 적정기준을 강제해야 하고, 공공의료기관부터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당장 수십만의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당장 환자를 돌볼 인력이 없는데 비대면 ‘디지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은 지나치게 한가한 소리다. 게다가 기기·설비 중심의 원격의료가 상식적으로 무슨 일자리 창출이 되겠는가? 디지털 인프라와 빅데이터 등은 대표적으로 고용을 늘리지 않는 영역이다. 오히려 기계화·자동화는 의료인력 축소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환자 급증에 대비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공공병상과 중환자병상, 의료인력, 의료인 보호장비(PPE), 인공호흡기 등의 시급한 확충을 요구해왔다. 현장에 있는 의료진들도 이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정부가 제대로 계획을 내놓고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병상 준비 수는 밝힐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수차례 코로나19 비상대책과 추경이 나왔지만 공공병상 확충 계획은 없고 감염병 전문병원도 겨우 2곳 설계비를 책정했을 뿐이다. 정말 시급하게 필요한 공공의료 정책과 예산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는 급기야 의료민영화 추진이 정부의 주요 방향이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이 상황을 매우 우려한다.
한국은 의료영리화 추진과 공공의료 홀대로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빨랐던 역학적 초기대응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어 가까스로 커다란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유럽보다 훨씬 열악한 공공의료 자원을 가진 한국에서 2차 유행이 일어난다면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인 초기방역 성공에 취해 공공의료 소홀과 의료민영화 추진으로 일관해선 안 된다. ‘위기가 기회’라며 이 시기에도 이윤 추구에 혈안이 된 기업 소원 수리에 나설 때가 결코 아니다. 향후 몇 개월 정부 정책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의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 시민들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