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8 16:41
코로나19 사태로 각국이 의료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를 최전선에서 치료할 감염내과 의사는 고작 250여 명에 불과했다. 코로나19 확산에 정부가 전담병원을 지정하고 병상을 확보했지만 정작 감염내과 의사가 없어서 코로나19 환자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의협, 공공의대 반대 여전
특히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대구·경북 지역은 의료인력 부족으로 큰 위기를 겪었다. 전국 각지에서 의사들이 파견됐고, 260여 명의 공중보건의사가 배치됐다. 정부는 올해 배출되는 신규 공중보건의사 742명을 조기 임용했다. 국방부 소속 군의관의 입영 군사교육 기간도 단축해 코로나19 대응에 투입했다. 그럼에도 의료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보건의료계가 총선을 앞둔 각 당에 공공의료인력 확충을 호소한 이유다.
이 같은 의료인력 부족은 사스와 신종플루, 메르스 등 신종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유행했음에도 획기적인 의사인력 확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공공의과대학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공의과대학은 정부가 학비를 전액 부담해 양성한 의료인력을 10년간 의료 취약지역에 의무복무하게 하는 구상이다. 의사인력의 수도권 집중과 의료 취약지 근무 기피 현상 심화, 공중보건의사 감소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거론된다. 실제 20대 국회에서 김태년 의원 등이 폐교한 서남대 의대(정원 49명)를 공공의대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은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법’ 등을 발의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보건의료계는 공공의과대학 설립이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줄곧 반대해온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책임이 크다고 보지만 의협은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협은 오히려 공공의료와 민간의료를 나누는 것이 문제라면서 의료 현장의 자율성 증대가 공공성과 효율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협은 지난 4월 9일 “국립공공의료대학원 설립 등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 추진에 대한 대응이라는 기존의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공공의료 개념 재정립에 역점을 두고 의료계가 앞장서서 공공의료 활성화 대책을 수립해 나가기” 위해 ‘공공의료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는 이에 대해 의협이 공공의료 인프라와 인력 확충을 반대하는 조직적 활동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최근 성명에서 “의협이 국립공공의대 설립을 원천 봉쇄하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며 “의사인력 확충 과제를 더 이상 정치논리로 접근하거나 지역챙기기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통화에서 “코로나19로 공공병상과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다면 당연히 공공의과대학 설립과 의대 정원 확충에 찬성해야 한다”며 “의사인력 충원을 반대하면서 공공의료를 강화한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의료인력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는 2.3명(한의사 포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은 3.4명인데 한국은 그중 꼴찌다. 간호조무사를 포함해 우리나라 임상 간호인력은 인구 1000명당 6.8명으로 OECD 평균 9.5명보다 2.7명 적다.
의사인력 부족은 의사들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양질의 진료를 어렵게 한다. 도시근로자 소득 대비 의사 소득의 비만 OECD 국가들의 2~3배 수준인 6배 정도로 높을 뿐이다. 의사가 부족해 병원에서는 의사의 고유업무인 수술, 시술, 처치, 환부 봉합, 처방, 진료기록지 작성, 동의서 설명 등을 진료보조(PA) 간호사에게 떠넘긴다. 엄연한 의료법 위반이고, 환자들을 기만하는 불법행위이다. 나순자 위원장은 “예전 대학병원 외과에 전공의들이 연차마다 4명씩은 있었는데 지금은 한 명씩밖에 없다”면서 “일반 대학병원도 의사가 부족해 의사 업무를 대신할 PA 제도를 활용하면서 현장에서 불법 의료가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감염병 확산과 고령화로 인한 보건의료 수요 증가에 대응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의료인력 확충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의사인력은 대체 가능성이 매우 낮고 교육 기간이 길어 사전에 충분한 공급을 계획해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발간한 ‘고령인구 증가와 미래 사회정책’ 보고서에서 2030년 의사수 공급 부족을 최소 1만8585명에서 최대 5만67명으로 예상하고 의대 입학 정원을 현재의 3058명에서 최소 5000명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의협 회장, ‘전국의사 총파업’ 가능성 비쳐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은 의사 확충을 위해 지방 국립대 의대를 먼저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부위원장은 “국립대 의대의 정원을 늘리는 방향이 최선이지만 늘리지 못해도 기존 정원의 10~20%를 지역 공공의료 장학생으로 선발하면 일단 급한 불을 끌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의료 지역 장학생 선발과 동시에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심으로 한 국립공공보건의료 대학 설립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공간호인력 역시 간호 장학생을 뽑아 충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부위원장은 “지금 코로나19 방역을 잘했지만 사실 중환자 치료를 잘 했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의협이 의료인력 확충에 반대하는 것은 진정성이 심각히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는 공공의대 설립이나 의료인력 확충이 공공의료의 답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성 이사는 “공공의대 설립이 공공의료인력 양성에 있어서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입장은 그대로다. 전 세계적으로도 공공의대를 설립한 곳은 일본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의대 입학 정원 안에서 위탁교육생을 뽑아 교육한 후 지역 의료 현장에 투입하는 것으로 공공의대 설립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공공의료와 민간의료를 구분하는 것에도 반대했다. 그는 “의료 자체가 다 공공의료”라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의대는 의사를 공무원화해서 발령내는 것인데 그러면 영국이나 이탈리아처럼 환자를 대충 보고 끝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공공병원을 비롯한 공공의료 인프라나 공공의료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급할 때 별도의 노력 없이 빨리 활용하기 어렵다”면서 “공공의대 설립만으로는 부족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는 민간의 인력과 시설도 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의협은 여권의 총선 압승에 공공의료 논의가 확산될 것을 경계하고 있다. 최대집 회장은 총선 직후인 4월 16일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협회가 합리적 사유를 들어 오랫동안 반대해 왔던 정책들을 힘의 논리로 독단적으로 강행한다면 반드시 전국의사 총파업으로 맞설 것”이라면서 “의료를 멈춰 의료를 살리겠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