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정부대책, 문제를 제기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민생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비상 경제시국”, “전시에 준하는 상황” 등을 언급하며 각종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정부 대책 속에서, 위기를 틈타 재벌과 기드권층의 숙원사업을 해결해보려는 시도, 글자만 바꿔 새로운 정책인 양 포장하는 관료적 발상, 그리고 눈가리고 아웅의 보여주기식 대책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고 있으며, 이에 그 중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기업만 배불릴 원격의료 추진을 중단하고,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
정부는 한시적이고 제한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비대면 전화상담을 성공사례로 들며 ‘비대면 의료’라는 이름만 바꾼 ‘원격의료’ 허용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현재와 같은 비상 상황을 빌미로 원격의료를 제도화해 재벌·기업들의 숙원사업을 허용해주겠다는 것이다. 원격의료는 정부가 여러 차례 시범사업을 했지만 안전과 효과가 증명되지 않아 추진되지 못해왔던 대표적 의료영리화다.
또한 정부는 ‘디지털 뉴딜’이라며 민감한 개인의료정보 판매·공유를 허용하는 의료정보 상업화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의료정보가 상업적으로 활용되면 기업은 돈을 벌지 몰라도 개인은 온갖 인권 침해와 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료영리화가 아니라 중환자병상·공공병원·의료인력 확충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10%밖에 안되는 공공병상을 대폭 확충해 OECD 평균인 73%까지는 안 되더라도 당장 20%까지 늘릴 계획을 내놓아야 하며, 무엇보다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려면 중환자 병상을 시급히 확충해야 한다. 공공의료 인력도 늘리고, 의료인 보호장비와 인공호흡기 등 필수의료장비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정부기금 지원에 ‘고용유지’ 조건 등이 강제되어야 한다.
정부와 한국은행 출자 등으로 조성되는 40조 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이 대기업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으로 이어져서는 안되며, 반드시 고용유지 조건이 강제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는 자금지원을 받는 기업이 지원 개시일부터 6개월간 근로자수를 최소 90% 이상 유지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그에 따른 수출감소, 내수부진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위기가 단지 몇 개월 만에 끝나리라는 보장이 없다. 간접고용노동자를 포함한 ‘고용유지’ 조건은 최소한 자금이 지원되는 기간 동안 보장되어야 한다.
협력업체에 대한 부당한 손실전가 금지 역시 지원 전제조건으로 명시해야 한다. 자금지원을 받는 기업으로 하여금 자사주매입, 주주이익배당, 계열사지원뿐만 아니라 부동산·금융자산 매입 등 비생산적 이윤 축적 행위 일체를 금지하고, 자금이 고용과 생산유지에 최대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예외적 경제난을 이유로 막대한 자금이 민간기업에 지원되는 반면, 경영 정상화에 따른 이익 공유가 너무도 미흡한 것도 문제이다. 총 지원액의 10%만 주식 형태로 지원하도록 한 정부의 방침을 개선하고, 기금이 취득한 기업주식에 대한 의결권행사 금지, 주식 처분 시 지분권자 우선매수권 부여 등 기업 총수 특혜 규정도 폐지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에 공급사슬의 최상위에서 이윤을 축적하고 경제 권력을 누려온 대기업을 지원하는데 있어 공짜가 허용돼선 결코 안 될 것이다.
셋째,‘전국민 고용보험’, 연기만 피우지 말고 실질적으로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
코로나 경제위기 속에 특수고용, 간접고용, 플랫폼 등 비정규 불안정노동자들과 4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해고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20대 마지막 국회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대폭 후퇴시켜 250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또다시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로 내팽개쳤다. 예술인노동자 5만여 명이 추가 혜택을 받는다고 자찬하지만, 이 또한 일부일 뿐 수많은 예술인노동자들은 제도적 기준 미달로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국회는 ‘범위가 넓다, 사용자를 모른다, 재정이 부담’이라고 이유를 대지만 모두 핑계에 불과하다. 특히 법안에도 적시된 ‘종속적 취업자군’이 대다수인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사용자와 함께 보험료를 납부하게 되는 주체로 오히려 고용보험기금의 안정성에 기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얼토당토않은 궤변이다. 결국 국회는 250만 특고노동자의 고용과 생계보다 재벌대기업과 자본의 압박에 굴복한 것이며 자본의 돈벌이 욕심에 편승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민심이 천심이고, 밥이 하늘이라고 했다. 급속히 무너져가는 취약한 노동자들의 삶을 국가가 책임지고 시급히 법제도를 보완하여 보호하지 않는다면 초유의 코로나 위기 극복은 한낱 꿈일 뿐이다.
며칠 뒤면 21대 국회가 출범한다. 더 이상 핑계 댈 수도, 미룰 수도 없다. 21대 국회 개원 즉시 전국민 고용보험 제도를 만들어 모든 노동자가 예외나 차별 없이 최소한의 고용안전망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재벌 민원수리, 규제완화로 이어질 수 있는 한국판 뉴딜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정부가 지난 6일 ‘한국판 뉴딜’ 추진방향을 발표한 이래, 정부에 이어 지자체들 역시 저마다 앞다퉈 ‘뉴딜’을 진행한다며 나서고 있다.
우리는 지난 이명박 정권 이래로 수많은 소위 ‘뉴딜’을 봐왔으며, 이들은 하나같이 추상적 목표, 목표와 수단 간의 불일치, 재벌과 토건중심 경제구조 개혁의 비동반 등의 원인으로 재벌 숙원사업 처리, 규제완화, 토건 부양 등으로 귀결되었다.
이번 ‘한국판 뉴딜’ 역시, 우리 경제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코로나19로 더욱 심화될 수 있는 경제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노동과 재벌 개혁, 사회보장 강화 등 제대로 된 종합적 개혁방안을 결여한 채, 글자만 바꿔 새로운 정책인 양 포장하는 관료적 발상만이 난무한다면 결코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이며, 그저 ‘토건 부양’ 앞에 ‘디지털’만 붙이는 꼴이 되고 말 수 있다.
다섯째, 전자출입명부 시스템 도입 계획은 철회되어야 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클럽, 노래방 등 집합제한조치대상 시설을 대상으로 「전자출입명부(QR코드)」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입자 기록이 부정확하다는 이유로 전자적인 방식의 기록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개인들의 신원정보와 시설 출입기록을 분리해서 보관하겠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국가가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개인들을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국민들은 언제든지 국가가 감시할 수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역이라는 미명하에, 정부가 완벽한 감시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집단 감염에 대한 대응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아무런 구체적인 맥락도 없이 만일을 위해 개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의무적으로’ 수집한다면, 그것이 바로 감시국가로 진입하는 길이다. K방역이 기본권을 제한하고 통제와 처벌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이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희생하는 조건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성공적인 방역도 중요하지만, 코로나 19 대응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중요한 가치와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가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방역과 공공의료, 해고의 중단과 고용의 유지, 농민, 소상공인 등 각계 민중의 생존을 위한 사회안전망의 필요함을 일깨우고 있음에도, 정부 대책은 ▲시장주의적이며 기업중심적 접근, ▲기업 지원에 비하면 약소하기 짝이 없는 전국민 재난소득 지급에 벌벌 떠는 기존의 관성, ▲도탄에 빠진 소상공인들에게 “대출을 받아 건물주에게 상가임대료를 내라”는 식의 기득권용 정책들이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는 기존의 관성을 타파하고, 현 민생위기에 걸맞는 과감한 대책을 내놓을 것을 다시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