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병원 중심 의료 바꾸지 못하면 ‘또 다른 살인’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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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참여연대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치료와 진료가 거부되거나, 적절하게 의료적 조치를 받지 못하는 의료공백의 상황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기고 ’코로나19와 의료공백’을 통해 의료공백의 문제점을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평등하게 치료받고 진료받을 권리에 대해 짚어 보고자 합니다.[기자말]

 

얼마 전 직장 소식지를 만드는 회의에서 지인이 요즘 예전에 읽었던 소설이 생각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중세 유럽의 페스트 유행 상황에서 평소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던 사람들을 죽이고 마치 감염병 때문에 사망한 것처럼 위장한 살인사건 이야기였다.

회의가 시작돼 결말을 듣지 못했지만, 그날 이후 그 소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당시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를 하며 접한 사례들이 자꾸 소설 속 살인사건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보다 잔혹한 현실

“복통이 있어서 병원에 갔는데 보호자가 없다고 진료가 안 된다는 거예요. 원래는 국립의료원이나 서울의료원에 가는데 코로나 때문에 거기 못 간다고 해서 딴 민간병원에 갔는데, 보호자 없이는 해줄 수 없대요. 똑같은 대한민국 사람이잖아. 병원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생긴 거잖아요. 돈이 먼저가 아니잖아요. 아프다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거절하는데 굉장히 서럽더라고요.

하소연했더니 내부규칙이 그래서 어쩔 수 없대요. 위의 지시라면서. 그렇게 두 군데서 퇴짜를 맞고 결국 집에 돌아왔어요.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로 간 건데 “보호자 있나요?”라고. 주민등록증 입력해보고 딱 잘라 “안 됩니다. 보호자 없이는 진료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는데 그때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아 우리 쪽방촌 주민들 많이 죽었겠구나’ 싶고…” (쪽방의 어느 의료급여 수급권자)

“국립의료원에 다니는데 코로나 전담병원 지정됐대서 다른 병원에 연락했어요. 절단 상황 얘기하니 빨리 오라고 했어요. 해서 갔는데 갑자기 코로나 때문에 안된대요… 분명 다 오라고 했는데 HIV 얘기만 하면 갑자기 다 안된대요. 그렇게 10군데 넘게 퇴짜를 맞았어요. ‘내가 죄인인가?’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OO대병원은 자기네 엠블런스도 이용하지 못하게 했어요. 사설 구급차 불르라고. 내가 출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그럼 그때까지 좀 누워있겠다고 하니까 침대도 못쓰게 했어요. 머리 다친 사람들만 누워있을 수 있다나. 그래서 내가 신문지 깔고 바닥에라도 눕겠다니까 그것도 못 하게 하는 거예요. 코로나 상황에서도 차별 없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단 한 군데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엄지손가락 절단 사고를 입은 어느 HIV 감염인)

“지역의 유일한 응급의료기관이자, 국가가 지정한 지역응급의료기관에 갔어요. 심지어 안심 병원이라고 했는데, 코로나 검사는커녕 병원에 들이지조차 않았습니다. 급하면 어디로 가라는 정보라도 줬어야죠. 1339도 보건소도 그저 OO중앙병원으로 가라고만 했어요. 그렇게 골든타임 다 놓치고 다음 날 결국 대학병원에 빨리 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옆에 있던 구급차조차 제공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유엽이가 죽고 하도 억울해서 탄원서를 냈는데 이 민간병원이 힘이 센지 미래통합당 시의원들은 오히려 병원을 두둔했어요. 메디시티대구다 뭐다 떠들어댔지만 정작 가난한 지역 서민에게 필요한 의료는 없었어요.” (경북 경산 지역에서 폐렴으로 사망한 고 정유엽 학생 유가족)

“안 그래도 이주노동자들이 아파도 치료를 잘 못 받는데, 코로나 상황에서 더 갈 데가 없었어요. 실제 어느 이주노동자가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열이 없는데도 진료 거부를 당해서 결국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도 있었죠.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더 심각합니다. 그들이 아플 때 의존할 곳은 정말 무료 진료소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이 무료 진료소들이 코로나 상황에서 열 수가 없었어요.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명령만 내리고 아무런 지원이나 지침을 안 줬거든요.

게다가 코로나 상황에서 이주민들이 모이는 걸 주변 시민들이 엄청 경계해요. 진료소 내부에서 운영진들끼리 엄청 토론을 했습니다. 무료 진료소 문 닫아서 약 끊기면 실제 위험한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근데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지역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의 어느 의사)

“장애인들에게 있어 의료공백 문제는 단지 의료기관 접근성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원체계와의 연계가 건강과 생존에 절대적이기 때문이죠.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발달장애인과 보호자의 죽음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즉 ‘사회적 거리두기’ 그 자체로 장애인들에게는 의료공백이 될 수 있는 거죠. 코로나19 확산에서 정부는 장애인과 관련된 교육 시설과 복지시설의 휴교·휴관을 권고했고 실제 전국 대부분의 관련 시설이 문을 닫았어요. 안 그래도 장애인 복지가 형편없는데, 별다른 대책도 없이 그렇게 방치되면서 엄청난 생존의 위기를 겪은 거죠.” (장애인 왕진을 다니는 어느 의사)

의료공백의 배후

이 사례들은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 보고서에 담긴 것 중 일부다. 조사를 진행하며 소설보다 더 잔혹한 현실을 수도 없이 접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례들이 코로나19 때문에 부득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메르스 때부터 더 멀게는 사스 때부터 시민사회단체들은 감염병 대응을 위한 공공의료 확충을 주장해왔다.

물론 의료공백 문제는 의료만의 문제는 아니다. 병원이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당당히 연대보증인을 요구하고 강제로 내쫓을 수 있는 것,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10여 군데 병원에서 쫓겨나야 하는 것, 그 많은 병원 중 정작 가난한 지역 서민이 믿고 찾아갈 병원이 없는 것,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생명줄인 무료 진료소마저 문을 닫게 만드는 것, 대책 마련도 없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장애인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불거졌지만 그 바탕엔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비로소 의료공백이 메워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발생하는 억울한 죽음을 방치할 수는 없다. 이 죽음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의료만이라도 바꿔내야 한다. 의료공백의 또 다른 모습인 ‘코호트 격리’는 이러한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시설에 몰아넣고 있는 것도 큰 문제지만, 그 안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해도 제대로 된 의료시설로 옮기지 못하고 결국 비감염자까지 감염돼 죽음에 이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인이 읽었다는 그 소설에서 결국 살인자는 죗값을 치렀을까? 아니면 다음번 유행을 기다리며 또 다른 살인을 노렸을까? 궁금해 물어봤더니 하도 오래전에 읽은 소설이라 지인도 결말이 가물가물하다고 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의 결말은 어떨까? 백신이 공급되면 의료공백도 사라질까? 확신컨대, 차별과 불평등, 아니 민간병원 중심의 의료만이라도 바꾸어내지 못한다면 “다음번 유행”은 반드시 찾아오고 “또 다른 살인”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규진 시민기자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입니다.

원문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11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