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장을 원한다!] 맘 놓고 아플 수 있는 서울시가 필요하다
21.03.28 이서영(4meandyou)
2021년 4월 7일 재·보궐선거가 치러집니다. <오마이뉴스>에서는 각계각층 유권자의 목소리를 ’이런 시장을 원한다!’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뉴노멀’ 시대 새로운 리더의 조건과 정책을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
▲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환자와 의료진이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해 코호트 격리가 시행된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한 입원환자가 선별 검사를 마치고 마스크를 쓴채 누워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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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슬으슬하긴 한데, 그것만 빼면 정말 괜찮아요.”
증세가 어떠냐 묻자 A씨가 답했다. 얼굴에는 심지어 미소까지 띠고 있다. 그런데 미소 띤 얼굴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이 심상치 않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급히 진행한 혈액검사상 염증 수치도 범상치 않게 높았다.
‘괜찮을 리가 없는데… 저렇게 중증인데 괜찮을 수가 있냐’고 묻자 경험 많은 간호사 선생님이 말했다. 저렇게 아픈 것을 잘 참는 분들이 있다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더 아프다고. A씨는 ‘의료급여 대상자’이다. 그리고 그는 서울에 있는 한 코로나 격리병상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고통에 강한 인내력과 빈곤 사이에는 후천적 인과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이들을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게 하는 불평등한 의료체계가 원인일 것이다. 서울시는 지자체 중 국내 병·의원 수가 가장 많아 ‘병원 천국’처럼 보이지만, 경제 취약 계층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그 병원 문이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병원은 저소득층, 이주민, HIV 감염인, 홈리스 환자를 거부하기 일쑤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의료급여 환자는 민간병원을 찾아가면 입원보증금과 연대보증인을 요구당한다. 홈리스들은 아예 서울시가 6개 공공병원을 지정해 그곳에서만 입원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공공병원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다. 그런데 공공병원은 충분치 않고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 특히 서울시는 인구당 공공의료기관 수가 전국에서 최하위권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는 설상가상이다. 서울시내 공공병원들이 대부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어 취약계층들은 그나마 다니던 공공병원에서도 쫓겨나게 되었다.
이들이 병원 진료를 계속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환자가 되는 경우뿐이다. A씨도 코로나 검사가 양성이 나왔기 때문에 입원이 가능했다. 만약 그의 고열과 전신증상이 다른 균에 의한 중증 폐렴이었다면 어땠을까?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아무도 모르게, 연고도 없이 심각한 건강이상을 겪거나 죽어가고 있으리라 우려하는 것은 과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병원 천국인 이 사회에서 몸 누울 병상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취약계층만이 아니다. 코로나19가 휩쓴 지난 한 해 수많은 확진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 2차 유행 때 전국에 세 자릿수 확진자가 발생한 지 며칠 만에 서울시 전담 병상이 거의 포화되었다. 3차 유행 때는 하루에만 서울시민 600명 가까이 입원하지 못하고 입원대기를 해야 했다.
이 나라 전체 인구당 병상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3배인 ‘과잉 병상’의 나라이고 그중에서도 서울시는 세계적 수준의 덩치를 자랑하는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이 있지만 정작 치료가 꼭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할 병원은 극히 부족하다.
인권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한 보건의료정책
▲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에서 25일 오전 서울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 후보들을 향해 공공의료 강화가 핵심이 되는 재보궐선거 공약을 촉구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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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새로운 서울시장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공공병상수를 대폭 늘리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손을 놓은 사이 민간병상은 늘어나고 공공병상은 오히려 절대 수가 줄었다. 부실 민간병상을 공공병상으로 전환하는 방식까지 고려해서 공공병상을 대폭 늘려야만 아파도 참는 사람들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구별로 적정 규모의 공공병원을 지어 의료공백을 메워야 한다.
또 공공의료의 질을 높여야 한다. 공공병원이 부실하고 취약층만을 위한 병원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이 갖게 된 것은 정부와 지자체 재정 지원이 부족해서이다. 건강을 추구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의료서비스를 흑자·적자 논리에 좌우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공공병원에 충분한 공적 재정을 투여해야 한다. 그 돈으로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인력을 충분히 고용하는 일일 것이다. 간호사들이 과중한 업무에 짓눌려 입사 1년 만에 절반이 퇴사하는 현실이 바뀌어야 간호사도 건강하고 숙련된 간호사에게 치료받을 환자도 건강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서울시부터라도 간호인력 1명당 환자 수를 제한해야 한다. 이것은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사회에서 시급한 과제다.
현재 유력한 시장 후보들이 내놓은 의료 공약은 어떠한가? 오세훈 후보는 스마트워치를 모든 시민에게 보급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스마트워치로 시민들이 알아서 건강증진을 하라는 것은 ‘사회정책’이 아니라 각자도생 하라는 메시지다. 또 스마트워치의 건강 향상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 공공병원 확충과 인력 충원에 투여해야 할 시민의 혈세를 의료기기 기업만 배 불려주는 데 낭비해서는 안 된다.
한편 박영선 후보의 공약에는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슬로건이 붙었지만, 그럴 듯한 선언일 뿐 공공병원 증설과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찾기 어렵다. 대신 ‘원스톱 헬스케어 센터’라는 이름으로 원격의료와 민간기업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시했고, ‘서울 바이오헬스 클러스터’라며 서울 시민의 개인 의료정보를 한 데 모아 기업에게 넘겨주겠다는 계획을 강조했다.
유력 후보들의 보건의료공약에서 영리 기업 돈벌이 장려사업만 있지 ‘진짜 병원’과 ‘진짜 의료진’을 확충하겠다는 공약을 찾아보기 힘들다니 웃픈 일이다.
우리에게는 맘 놓고 아플 수 있는 서울시가 필요하다. 돈이 있든 없든,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최소한 아플 때 언제라도 나를 치료할 병원을 갖춘 사회를 원한다. 공공병원을 양적으로 늘리고 질을 높이는 것은 감염병 대응은 물론 기존에 충족되지 못하고 있던 의료적 요구들까지 메워내기 위한 시민들의 기본적 요구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의료인으로서 의료를 산업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인권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한 보건의료정책을 펼치는 서울시장을 요구한다!
원문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30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