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 생명과 인권을 무시하고 국제사회 연구윤리의 사회적 합의를 훼손하는 법안 발의를 철회하라 –
지난 3월 2일 변재일 의원 등은 감염병예방법과 병원체자원법의 동시 개정을 발의하였다. 두 개정안은 현행 생명윤리법의 인체유래물 정의와 사전 동의절차 및 연구윤리위원회의 심의 과정이 감염병 백신 및 치료제 연구개발 과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감염병 환자의 검체를 인체유래물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연구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와 환자의 동의없이 인체유래물을 무차별적으로 연구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병원체자원법 개정 발의안은 감염인의 혈액, 혈장, 혈청, 타액, 소변, 객담 등의 검체를 인간으로부터 유래된 인체유래물이 아니라 ‘병원체자원’으로 별도 정의하려고 하는 것이다. 감염병예방법 개정 발의안에서 감염병 병원체연구는 환자의 서면동의를 면제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 대상 연구에서 사전에 연구 참여자의 자율적 참여를 보장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 합의한 의학 연구윤리 원칙이다. 이는 환자 인권 보장의 역사적 산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민주적이고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원칙에서 감염병 환자라고 예외가 되어선 안 된다. 따라서 환자의 검체를 환자 개인의 것이 아니라 병원체의 것으로 정의하고, 환자의 서면동의 필요 절차를 삭제하고 배제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다.
또 다른 문제는 병원 의료인이나 연구자가 치료를 목적으로 채취한 환자의 인체유래물을 활용하여 연구를 하는 경우 환자의 서면동의와 기관생명윤리위원회 사전 심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외 학술지에 결과 발표를 못 한다. 즉, 환자의 인채유래물 활용 연구는 학술목적으로 활용이 불투명하므로 공익적 가치보다는 상업적으로만 확대 이용될 소지가 더 크다. 이 두 가지 개정안으로 개악이 이루어진다면 감염병 환자의 서면 동의 없이도 치료 목적 외 혈액과 척수액 채취 등이 이루어져도 환자와 환자 보호자가 알 수가 없게 된다. 제약회사나 기업들의 돈벌이용 연구에 자신의 인체유래물이 활용되는지조차 환자 당사자는 알 수 없어지는 것이다. 만일 진료와 무관한 연구 목적의 과도한 인체유래물 채취가 이루어진다면, 환자의 생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환자의 공익적 의학 연구 참여 권리자로서 환자의 인체유래물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려는 두 법안이 환자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도 두 법률 개정안에 반대한다.
마지막으로 개정 발의안의 취지도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환자의 동의와 연구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가 신속한 연구개발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것은 거짓선동에 불과하다. 이미 생명윤리법은 모든 인체유래물 연구에 서면동의를 받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현행 생명윤리법에 따라, 적절한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환자의 서면동의를 면제받을 방법이 있다. 잔여검체 연구 등 서면동의 면제를 통해 얼마든지 연구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의생명과학연구에 관한 국제사회 윤리 지침은 감염인을 포함한 취약한 연구대상자는 더욱 인권 존중과 보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만약 공중보건위기 등 긴급한 상황으로 빠르게 진단법, 치료제, 백신 등을 개발해야 한다면, 신속심의와 긴급사용 승인 등의 방법으로 상황을 개선할 수 있고, 이미 많은 연구개발의 산물이 이 절차를 활용하고 있다. 개정 법률안은 적용 가능한 대안이 이미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감염인)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려는 것이며, 전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반인권적 행위다.
학술적으로 검증된 좋은 의생명과학 지식이 생성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연구윤리 보호 제도와 함께 가야 한다. 변재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두 법안은 감염병으로 고통받을 환자의 불평등하고 취약한 조건을 이용해 연구개발의 이익을 목표하는 산업계의 이권만 보장하려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법적 윤리적 정당성을 갖기 어려운 감염병예방법· 병원체자원법 개정안 입법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