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2일 서울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의료진이 코로나19 음압격리병동에서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작년 11월 국립중앙의료원 기자간담회 때 보건복지부가 중환자 병상 200∼300개가 있다고 했는데, 복지부에서 원장님들한테 전화를 걸어요. ‘귀 병원의 중환자실 병상 몇 개 가능합니까?’ ‘20개 가능합니다.’ 그걸 (그대로) 다 적어서 (합산해) 발표했어요. 우리는 현장에서 중환자를 매일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했어요. 여기서 총괄했거든요, 실제로 (병원에) 물어보면, 10개 남았어요, 수도권 전체 합쳐서…”(국립중앙의료원 관리자)
국립중앙의료원 ‘코로나19 대응 총괄백서’ 표지.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지난 2년간 코로나19 대응의 최전선에 있었던 국립중앙의료원(NMC)이 5개월 연구 끝에 최근 펴낸 ‘코로나19 대응 총괄 백서’에 나타난 병상 부족 실태다. <한겨레>가 26일 단독 입수한 백서에는 코로나19와 관련한 국가 의료대응체계의 성과와 한계, 제언 등이 담겼다. 특히,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 23명과 외부 정책결정자 등을 망라한 총 27명을 면담한 ‘코로나19 대응 평가 연구’ 부분을 보면, 정부가 이미 1년 전 병상 부족의 원인을 파악하고도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지난달 단계적 일상 회복 이후 반복된 병상 부족 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의 병상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과잉 공급되고 있다곤 하나, 전체 병상의 약 90%를 민간의료기관이 차지하고 있어,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병상은 매우 제한적이다. 백서에 언급된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의 말은 ‘공공의료체계 취약 국가’인 우리나라 의료대응체계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코로나19 병상이 필요하다고) 연락하면 4~5일이 돼도 (민간병원에서) 대답을 안 한다. (정부가 민간병원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이미 확보해놨고 병상을 비워놓은 상태에서 계속 거기(병원)에 돈을 주고 있는데, (민간병원이 돈만 받고) 실제 (환자는) 받지 않는다.” “‘우리 병원은 (코로나)중증환자를 치료해야 되니 (중증이 아닌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하다가, 막상 중증환자를 의뢰하면 ‘중증환자 비율이 너무 높아서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등 갖은 이유를 들면서 환자를 안 받는다.” 이 때문에 전체 병상의 약 10%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 약 90%를 담당하는 악순환이 반복돼왔다. 백서는 이런 사례를 언급하며 “대부분의 민간병원들이 병상 부족 위기 상황에서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매우 소극적이었고, 정부는 손실보상금 지원과 일부 병상에 대한 행정동원명령 외에 민간병원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었다”고 평가했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병상과 의료진 정보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것도 병상 위기의 한 원인이다. 사용 가능한 격리병상이나 중환자 병상에 투입할 수 있는 의료진에 대한 정보들이 체계적으로 수집되지 않다 보니, 위기 상황에서 이를 활용하기 어려웠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들이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코로나19) 병상 개수와 실제 사용 가능한 병상 숫자가 달랐다’거나 ‘필요한 정보들이 정리되지 않고 총괄하는 사람도 없어 중환자 간호사에 대한 분포를 파악하는 기관이 없었다’는 평가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민간병원의 책임회피와 이에 대한 정부 관리체계 부족으로 병상 부족 사태가 심화됐지만, 민간병원 소속 전문가의 의견이 과대 대표되면서 공공병원에 부담을 몰아주는 식으로 병상대책이 수립됐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백서는 “국내의 코로나19 환자 진료는 대부분 공공병원에서 이루어졌지만, 의료와 관련한 정책 결정엔 사립대병원 교수 개인이나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학회의 의견이 과대 대표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서술했다. 이는 “실제 환자 진료의 경험, 공공병원의 어려운 여건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기 어려운 상황에 기여”했고, “전문가 개개인을 동원하는 방식이었기에 의사 결정의 책임을 분명히 묻기도 어려운 구조”였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의료대응을 총괄한 국립중앙의료원은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를 만들어 입·퇴원 및 진료 지침 등을 제안했으나, 공식적인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열악한 코로나19 의료체계에서 27명의 면담자가 그나마 꼽은 주요 성과 중 하나는 국립중앙의료원이 코로나19가 아닌 일반 환자, 특히 취약계층의 필수의료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은 필수적인 의료공급을 담당하는 ‘국가중앙병원’으로서 메르스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환자 외에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과 노숙인 등 취약계층을 치료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의료진 ㄴ씨는 백서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환자는 노숙인, 외국인 등 진료비 상환 능력이 없는 환자들”이라며 “이 환자들은 정말 전원이 어렵고, 그런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되게 극소수”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백서는 “메르스와 달리 병원 전체를 완전히 비우지 않고 비코로나 환자들에게 외래와 입원 서비스 제공을 어느 정도 유지한 결정”을 매우 중요한 성과로 꼽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24일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의료원 등 주요 공공병원 병상을 비워 코로나19 환자만을 돌보는 전담병원으로 지정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일반진료 공백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백서는 “현재는 병상 확보 지침이 내려지면 환자 소개(疏開)와 관련된 모든 부담을 공공병원이 떠안게 된다”며 “초기 혼란이 해소된 이후엔 병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의료기관들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무엇보다 전체 의료자원 중에서 공공병원의 역할과 비중을 늘리는 ‘체계로서의 공공성’ 강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에필로그에서 “이제 곧 신규 확진자 1만명, 2만명 시대가 올 것”이라며 “무조건적인 차단과 격리, 그나마 (병원숫자 기준) 전국의 5%밖에 되지 않는 공공병원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것으로는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한 공중보건위기 대응을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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