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기관의 대안 없는 호스피스 병동 폐쇄를 중단하라!

2년간 지속되고 있는 유례없는 전염병 대유행의 위기 상황에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정의롭지 못한 상황은 공공병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 및 취약 계층 그리고 소수자들에게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더욱 비극적으로 연출되는 곳은 공공의료기관의 호스피스 병동이며 이곳에는 완치를 목표에 둔 현대의학의 주류에서 벗어난 말기 환자들이 있다. 이들은 공공병원의 모든 병상을 코로나19 전담으로 지정하는 정부조치로 인해 쫓겨나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공공의료 비중이 전체 병상수 대비 8.9%에 불과하다. 그런데 말기암환자들이 입원하는 호스피스 병상의 경우 공공병원이 전체 호스피스 병상의 30%를 넘게 책임지고 있다. 민간의료기관이 전체의료기관의 90%를 넘게 차지하는 국내에서는 수익성이 없는 호스피스는 민간의료에서는 기피하는 영역이고, 그나마 공공의료기관에서 미충족수요의 일부를 책임져 온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2년간 공공병원은 전체 코로나19 환자의 80%를 진료해 오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2020년 초에 코로나19의 대대적인 유행으로 공공병원들이 하나둘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되었고 이 과정에서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을 쫓겨나야만 했다. 지난해 12월 31일에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공공병원으로 호스피스 병상을 유지하던 국립중앙의료원도 호스피스 병동 폐쇄를 결정했다. 새해에 들어서는 국립대학병원의 호스피스 병상도 축소 및 폐쇄하여 이후 코로나 병상으로 전환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88개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의 1/5이 넘는 21개소가 호스피스 병동을 폐쇄한 상태이고 앞으로 이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말기암 환자 역시 우선 보호받아야 할 중증환자이며, 이들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잘 정리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 호스피스 병동이다. 문재인 정부는 꼭 그렇게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까지 내보면서까지 공공병원을 쮜어짜야만 했나?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니 전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쉽게 본 것인가? 이들은 개별이 아닌 집단으로 간주되었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는 환자들에 대해 공리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조처가 비판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말기암환자들은 심각한 육체적,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기에 우울, 통증, 섭식장애 등 긴급한 완화적 치료가 절실하다. 그런데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의 폐쇄로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급성기 병상에서 연명의료를 받거나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며 안타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OECD 최고의 높은 자살률과 경제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죽음의 ‘낮은’ 질은 행복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단면을 보여주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해 지난 20여년간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노력하며 일구어 온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근간들이 코로나-19 유행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를 핑계로 공공의료의 공공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당면한 자원의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한 시기에, 각 분야에서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당연하고 올바른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죽음과 인권을 단순한 수치화된 통계로 봐서는 안 된다. 통계를 보여주지 못하는 그 이면에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고통의 서사를 헤아리는 세심한 의사소통과 최소한의 배려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이다. 전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해 인류애를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훗날, 지금의 이 시기를 평가할 때 그 기준은 무엇이 될 것인가? 정의와 윤리의 잣대에서도 전혀 부끄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에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준)는 문재인 정부에게 아래와 같은 요구사항을 실천할 것을 촉구한다.

 

요구사항:

1. 국립대학병원은 정부의 코로나 중증환자 추가병상 확보 요구에 호스피스 병동을 폐쇄 또는 축소하는 방법으로 대응하려는 시도를 즉시 중단하고 지역사회 말기암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것을 촉구한다.

2. 호스피스 병동 입원을 위해 고통 속에서 장시간 대기해야 하는 수도권 말기암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에 주목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조속히 수립하라.

 

 

2022년 1월 13일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