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
- 정부는 서울아산병원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를 해야.
- 병원에 필수 의료인력 고용 강제하고 공공 의료인력 양성 방안 마련해야.
지난 달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뇌출혈이 발생했으나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 사건은 서울아산병원에 고인에게 필요한 긴급수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었던 것이 원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2700병상이 넘는 굴지의 병원이다. 이런 매머드급 병원에 뇌출혈 응급수술 집도의가 없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문제는 한국 최고의 상급종합병원이 이런 상황이면 한국의료체계의 전반은 더 열악하다고 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정부는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
정부는 수술 가능 인력이 모두 부재 중이었던 행정의 문제뿐 아니라, 뇌혈관질환 1등급 병원임에도 인력기준과 대기인력 기준이 지켜졌는지 등에 대해서 자세하고 투명한 조사를 해야 한다.
물론 고질적인 필수의료 ‘의사 부족’ 문제에 대해서도 대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형병원이 수익성 문제로 인력 고용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상업적·비윤리적으로 경영되고 있다는 뜻일 뿐이다. 경제적 보상이 부족하다는 의사 사회 일부의 주장은 병원들이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돈벌이에 더 열중이라는 증언에 다름 아니다. 서울아산병원은 2020년 기준으로도 매출이 2조원을 넘고 순이익이 280억원인 병원이다. 이런 병원이 꼭 필요한 응급수술 전문가를 돈벌이가 안되어 두 명 밖에 고용하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려 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하여 가산수가를 지불하는 이유는 의료진을 충분히 고용하여 중증질환에도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아산병원에 대한 조사와 감사가 필요하다.
또 사망과 업무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확인이 필요하다. 서울아산병원은 이미 2018년에 과중한 업무로 고통 받던 박선욱 간호사가 사망해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바 있는 사업장이다. 고인이 처했던 노동환경에 대해서도 정부는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필수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인력 기준을 제도화하고, 공공적인 의료인력 양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필수의료 의사 부족과 병원의 인력 고용이 적은 문제는 보상이 적어서가 아니다. 우선 보상을 올린다고 해도 응급진료나 필수진료는 여타 진료처럼 행위 수를 늘릴 수 없고 비급여가 적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적을 수밖에 없다. 또 보상을 늘려도 병원 수익만 상승하지 인력고용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컨대 2009년 흉부외과 가산금이 2배 인상되었지만 전공의는 늘어나지 않았다. 병원이 전문의 고용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흉부외과 수가가산금은 흉부외과 전문의의 고용이 아니라 평균 50%, 많게는 95%가 의료기관 수익상승으로 이어졌을 뿐이었다. 또 다른 예로 이국종 교수가 이미 밝혔듯이 흑자가 나더라도 더 수익이 발생하는 진료과에 병상과 인력을 더 배정하는 일이 민간병원에서는 비일비재하다.
병원이 수익을 쌓아두고도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 필수 의료부분을 등한시하는 것이 진정한 문제이다. 지금도 소위 ‘기피과’ 의사들 상당수가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며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들이 전문의사 충원을 충분히 하면 의사도 살리고 환자도 살릴 수 있다. 이런 곳에 전공의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수련 후 전문성을 살릴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병원이 전문의 고용을 늘리면 수련 전공의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병원자율로 인력고용을 맡겨놓아선 안된다. 정부가 특정진료에 대한 전문의 인력 고용을 제도적으로 강제해야 한다. 아무리 난이도가 높고 활용도가 낮은 수술이라도 사람을 살리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면 대형병원들은 적정 수를 확보하는 것이 기본이다. 나아가 이를 위해 정부는 의사를 공공적으로 양성해서 공공병원과 필수의료에 배치하는 등의 정책을 펴야 한다.
사실 한국에서 의료인력 부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최대 규모 병원이면서도 2018년 열악한 간호사 노동조건으로 인한 사망사건에 이어 의사 부족으로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 이는 열악한 일부 병원들의 문제가 아니라 민간병원의 수익성 추구가 낳는 보편적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민간병원 중심의 상업적 의료체계에 메스를 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구조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일부 의사들이 해왔던 ‘한국의 의료수준이나 의료접근성이 최고’라는 식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시장 의료의 왜곡 때문에 국내 최고의 병원이라는 곳조차 필수 응급진료를 할 의사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민간병원들만을 더 지원하고 공공병원은 위축시키며, 의료’산업’으로 돈벌이 하겠다고 의료영리화 정책을 꺼내놓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이런 비극을 더 양산시키려 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의료의 공공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의료의 본령을 바로 세우는 길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제대로 된 역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