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의 ‘메스를 들이대며’
한미FTA의 새로운 상황과 사회운동
우석균 ( 의사/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한미FTA 반대 총력 파업을 선언한 금속노조 –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
한미FTA를 둘러싼 상황이 변하고 있다. 민주당과 부시가 새로 합의한 이른바 “신통상정책”은 한미FTA를 둘러싼 지형을 변화시켜 앞날을 예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노동 부문에서 신통상정책이 한미FTA에 적용된다면 한국 정부는 FTA의 대가로 복수노조와 실업자노조를 허용해야 한다. 만일 의약품 분야의 신통상정책을 한미FTA에 적용하면 한미FTA의 핵심 내용인 지적재산권과 의약품 분야 협상을 다시 해야만 한다. 미국 제약 자본이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다.
그러나 벌써 미국 통상본부 대표 슈워브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이 아니므로 의약품 분야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페루·콜롬비아 등에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노동 분야나 의약품 분야에서 신통상정책이 공화당의 통상정책보다 부분적으로 진보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의약품 분야 적용 배제에서 보듯 한미FTA에 대한 신통상정책 적용은 부분적으로는 진보적이겠지만 미국의 축산·자동차 기업들의 요구를 더 반영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민주당의 통상정책은 미국노총(AFL-CIO)의 지지도 얻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 민주당도 공화당과 마찬가지로 미국 자본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이다.
이번 신통상정책도 결국 신속협상권한(TPA)을 연장해 주는 대신 민주당이 대변하는 자본 분파의 이해를 더 반영하려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거래의 산물이다. 미국의 시민단체인 퍼블릭시티즌은 미국노총이 이 거래에서 완전히 배제됐으며 심지어 민주당의 ‘말단 하원의원’들조차 거래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미국의 시민단체들이나 불룸버그통신이 지적하듯 상황은 “불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한미FTA가 끝난 것이 아니라 한미 양국의 계급 역학 관계에 따라 가변적이며, 반전 운동에 따른 부시의 패배와 민주당의 의회 장악은 한미FTA의 앞날을 매우 불확실하게 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노무현 정부는 재협상은 없다고 한다. 노무현도 체면이 있는데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재협상이라니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재협상을 하면 6월에 정식 체결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뿐인가? TPA의 시한을 핑계 삼아 막가파 식으로 몰아붙이기도 어려워졌다. 더욱이 대선까지 6개월도 안 남은 정권에서 한미FTA 재협상 타결을 임기 내에 하겠다고 밀어붙이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러나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미국 정부의 거부로 아예 한미FTA 정식 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니 재협상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노무현 정부에게는 난감하겠지만 어찌됐든 한미FTA의 시간표는 다시 짜여질 수밖에 없다.
불확실
불명확한 상황 속에서도 현 정부의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첫째, 이미 협상이 시작된 한EU FTA 등 동시다발적 FTA 협상을 지속하면서 한미FTA를 기정사실화하려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지난해 9월 독일 총리 메르켈이 제안한 미-EU간 FTA(TAFTA, 대서양자유무역협정)가 한미FTA 협정을 디딤돌 삼아 추진력을 얻어가는 상황에서는 가능한 전략이다. 그러나 이것도 한EU FTA나 한중FTA 등 다른 FTA들이 ‘전 세계 FTA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되는 한미FTA를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여기에서도 한미FTA는 결국 다시 문제가 된다.
둘째, 자발적 신자유주의 공세의 가속화이다. 한미FTA가 불안해진 만큼 자본과 보수 세력을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공세는 더욱 노골화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의 의료법 개정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힘들 것이라던 의료법 개정안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의료법 개정안은 이를 반대하던 의사협회가 돈로비를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마치 개혁입법처럼 포장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의료법 개정안은 병원이 비영리법인으로 규정돼 병원 밖으로의 이윤을 배분할 수 없는 현 제도를 영리법인인 경영지원회사(MSO) 설립과 병·의원의 인수합병을 가능하게 해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이다. 또, 이 법안은 보험회사가 환자를 알선할 수 있게 해 보험회사가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이 특정 병·의원을 이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허용한다.
삼성이나 현대 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전국 영리병원 네트워크가 설립되고 이 영리병원 네트워크를 삼성생명 같은 보험회사들이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보험회사와 영리병원 네트워크의 결합이 미국의 영리의료시스템(HMO)의 핵심이다. 결국 공적 보험제도 바깥에 보험사와 영리병원이 지배하는 별도의 의료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 되면 의료비 폭등은 물론이고 결국 공적 건강보험의 기초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가속화
연금법 개악, 의료법 개악, 의료급여법 개악 등 복지정책의 전반적 후퇴나 노사관계로드맵 관철 등 ‘혼자서도 잘하는’ FTA, 즉 자발적 신자유주의 조처들이 더욱 가속화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분명해진 것은 한미 양국 자본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제 반전 운동과 미국내 반전 운동에 따라 한미FTA는 그 궤도를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또, 한국에서의 반대 운동은 이미 한미FTA를 차기 대선과 총선의 주요 쟁점으로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가 애써 표정을 관리하겠지만 한미FTA는 이미 현 정부에서는 국회 비준이 불가능해졌고, 이에 더해 새로운 정세는 협정 정식 체결조차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한미FTA 반대 운동은 이제 새로운 기회를 얻었고 더 대중적인 운동이 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은 운동의 힘이다. 현 상황에서 국익에 근거한 재협상을 주장한다거나 다른 FTA를 먼저 체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도 아니며 노무현 정부가 도망갈 길을 터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한미FTA 반대 운동은 모든 FTA가 자본의 이익만을 위한 협정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추진되는 자발적인 신자유주의 조처가 FTA와 같은 반노동자적인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중적인 한미FTA 반대 운동을 건설할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