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괴담’은 ‘MB 불신’ 타고 흐른다
프레시안 | 기사입력 2008.05.21 07:23 | 최종수정 2008.05.21 18:23
민영화되면 요금 폭등ㆍ수질 저하ㆍ단수 사태 등 우려
[프레시안 전홍기혜/기자]
‘광우병 파동’으로 궁지에 몰린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간 공기업은 비효율과 방만 경영의 대명사로 여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IMF 이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도 공기업 구조조정과 민영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지만, 여론은 결코 동정적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공약으로 “공기업은 기본적으로 민영화돼야 한다”는 방침을 들고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여론 덕분이었다.
하지만 ‘광우병 파동’ 이후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인터넷을 통해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수돗물 괴담’, ‘건강보험 괴담’ 등이 유통되면서 공기업 민영화 문제 역시 서민들의 건강권, 생존권 문제와 직결된 것일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광우병보다 더 무서운 일들이 수돗물 민영화, 병원 민영화, 에너지 공기업 민영화 등이 되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또 공기업 민영화는 혁신도시 문제와 연관된 것이라는 점에서 지방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공무원 노조 등 일부의 반발만 억누르면 별다른 탈 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도 여론의 반발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이명박 정부는 이달 안으로 공기업 민영화 방안을 내놓고 최대한 서둘러 이 문제를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이다. 공기업 민영화를 둘러싼 논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그간 상수도 민영화의 위험성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해온 < 프레시안 > 은 이 같은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기사를 집중적으로 게재할 계획이다. 편집자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슈청원 게시판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과 함께 ‘수돗물 민영화 반대’ 서명(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41484)도 진행 중이다. 지난 4월30일부터 시작된 서명운동이 21일 오전 8시 현재 5만3356명을 넘어섰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서명 운동에 비해서는 확산속도가 느리지만, 상수도 민영화 역시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드러나지 않은 ‘화약고’라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수돗물 민영화에 대한 반대는 자칫 공기업 민영화 자체에 대한 반대로 흐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힌 이명박 정부는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MB 노믹스’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다시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다.
< rimgcaption > ▲ 인터넷 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수돗물 민영화 반대 포스터. ⓒ프레시안
환경부, 물산업지원법 제정안 입법 예고…”오히려 물 값 내려갈 수도”
환경부가 이달 중 ‘물산업지원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민영화 작업을 본격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나서면서 인터넷을 통해 “민영화되면 하루 수도요금이 14만 원에 이를 것”이라는 등 ‘수돗물 괴담’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법률안에는 상수도에 대한 소유권은 국가나 지자체가 갖되 수도시설 관리권은 지자체가 설립한 법인이 보유토록 하고, 이 법인에 민간사업자가 지분투자를 통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사업자의 지분 참여 비율을 제한하고 있지 않아 이론상으로는 100%까지 이 법인의 지분을 가질 수 있고, 외국 기업이 참여 제한 규정도 없어 해외 사업자도 자유롭게 국내 수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환경부 측은 수돗물 민영화를 통해 “오히려 물값이 내려갈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사업자가 상수도 관리에 나서면 상수도 누수율, 관리 인력 감소, 수도사업 관리주체의 광역화 등으로 원가가 오히려 절감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환경부는 “상수도의 소유권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남게 되는 만큼 ‘민영화’보다는 ‘전문화’라는 표현이 옳다”며 해외의 다국적 물기업이나 국내의 민간기업이 물 값을 올리게 될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가능성이 적다”는 입장이다. 수도시설 관리권을 갖게 될 법인의 지분을 민간기업이 100% 모두 갖게 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적고, 만일 민간기업이 지분을 100% 갖는다 해도 법인에 대한 관리권은 지자체가 그대로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 올랐는데 무슨 수로 우리만 안 올리냐”
환경부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수돗물 민영화를 반대해온 이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정용천 전국공무원노조 대변인은 “지금 수자원공사에 상수도 관리를 위탁하고 있는 논산의 경우 수도요금이 올랐다”며 “외국의 사례를 봐도 민영화하면 물값이 다 2-3배 올랐다”고 말했다. 정 대변인은 “민간 기업에 관리를 맡기면 이윤을 추구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 상수도 요금은 1t에 577원 정도다. 민영화가 추진된 영국(1820원), 프랑스(1579원), 독일(2446원)은 우리의 3-4배 수준이다.
그는 또 반대 여론 때문에 수돗물 민영화가 미뤄질 가능성에 대해 “상수도 민영화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된 것이며 이명박 정부도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일축했다. 현 정부에서 민영화가 강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지난 2007년 7월 발표된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추진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164개 지자체별로 나눠진 상수도 사업 구조를 오는 2009년까지 30개 이내의 광역권으로 개편하고, 이를 공사화 또는 민영화한다는 계획이다.
‘빈익빈 부익부’ 수도 사업…인천은 삼성-베올리아에 하수도 관리 위탁
현재 우리나라 상수도 요금은 각 지자체가 별도로 수도 사업을 운영하다 보니 지자체의 크기, 물 사정, 재정 여건에 따라 다르다. 똑같이 1t의 물을 써도 경기도 과천의 요금은 345원에 불과하지만, 강원도 평창군 주민은 1071원을 내야 한다.
< rimgcaption > ▲ ‘물 사유화 반대’ 캠페인 포스터 ⓒwww.citizen.org
또 시설 낙후,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논산, 정읍, 사천, 거제, 남원 등 11개의 지자체가 상수도 관리.운영 업무를 한국 수자원공사에 맡겼다. 인천광역시는 지난 2006년 프랑스의 다국적 기업인 베올리아에 상수도 관리를 위탁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었다. 이 양해각서는 서로 요구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기됐지만, 인천의 하수도 사업 관리는 지난 2006년부터 삼성-베올리아 콘소시엄이 맡고 있다. 김재철 전공노 인천지부장은 “베올리아가 하수도 관리를 맡으면서 요금이 20% 가량 올랐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물산업지원법’이 통과되면 세금을 부과해가며 생산원가보다 싼 수돗물을 공급해오던 농어촌 지자체들은 ‘비효율’이라는 이름하에 통폐합되고, 이를 차지하기 위해 국내 기업과 수에즈(프랑스), 베올리아(프랑스), 알베에(독일) 등 다국적 물기업이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도시민들보다 2~3배 비싼 물값을 감수해야 했던 농어촌 주민들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더 많은 돈을 내야할 지도 모른다.
남아공은 민영화 이후 수도요금 600% 인상되기도
수돗물이 민영화된 나라는 모두 물값 인상, 서비스의 저하, 농촌 등에 대한 서비스 중단 등 부작용을 경험했다.
특히 IMF의 민영화 압력으로 2000년 미국 벡텔에 상수도 운영권을 넘겨줬던 볼리비아는 물값 폭등으로 민중 봉기 사태를 경험하기도 했다. 벡텔은 운영권을 따낸 지 1주일 만에 수돗물 가격을 20%까지 올렸다. 이는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에 상수도 민영화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정부는 이를 무력으로 강제진압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175명이 다치고 2명의 아이를 포함해 6명이 사망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이 과정에서 또다시 17세 소년이 총을 맞아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대통령이 사임하고 벡텔사가 물러나야만 했다. (관련기사 : ” 코차밤바의 쓰디쓴 승리와 그 교훈 “)
남아프리카공화국도 1994년 프랑스 물기업 수에즈의 자회사인 온데오가 상수도 사업을 운영하면서 2년 만에 수도요금이 600% 인상됐었다.
인도네시아도 민영화 후 수도요금이 2001년 35%, 2003년 40%, 2004년 30% 등 4년 만에 3차례나 대폭 올랐다.
아르헨티나는 수에즈가 새로운 하수처리장을 설치하겠다는 계약 의무를 지키지 않아 95% 이상의 도시 하수가 리오 델 플라타(Rio del Plata) 강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빈민국에서만 수도 민영화로 인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다. 미국 애틀랜타시는 수에즈와 1998년 물 사유화 계약을 맺었으나, 2003년 1월 이를 폐기했다. 계약 직후 수에즈는 시 당국에 추가 투자를 하려면 800억 원을 더 내 놓으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면서 상하수도 구조 개선 등 약속은 지켜지 않았다.
영국도 1989년 10개 물기업에 상수도 운영을 맡긴 이후 4년 만에 수도 요금이 평균 50% 이상 오르는 일이 발생했다. 잉글랜드는 6년 만에 수도 요금이 106% 올랐다. 영국은 또 1994년까지 단수 가정이 민영화 이전보다 3배 증가했고, 1997년까지 환경청은 물회사들을 식수원 오염 등 이유로 260회나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돗물 민영화에 대한 좀더 자세한 얘기는 : ☞ “그들 만의 ‘물 비즈니스, 더욱 목 마른 우리”
☞ “유럽기업들, 한국의 블루골드 노린다”
☞ “신자유주의가 명령한다. 남김없이 팔아라 “)
전홍기혜/기자 ( onscar@pressi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