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한미FTA반대, 비정규직철폐, 반전평화를 위해 시청앞 광장으로 모입시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1시 노동자대회로 모여 시청앞 광장으로 행진을 할 예정입니다.
비정규직에 반대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이윤보다 건강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11월 11일 범국민행동의 날에 함께 합시다.
아래는 11월 집회를 호소하는 우석균 정책실장의 글을 옮겼습니다. 이글은 주간 <맞불> 칼럼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
최근 김용철 변호사가 밝히고 있는 삼성과 국가권력의 유착을 보고 있노라면 보통사람들이 짐작하는 수준의 정경유착을 훨씬 뛰어 넘는다.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는 작은 조직이었다. 이해관계가 맞물린 재경부, 국세청은 규모가 훨씬 더 크다.” “삼성의 정보는 국가정보원을 능가했다. 청와대는 물론 국정원·검찰·경찰의 정보 보고가 매일 들어왔다.”
행정부에서 이 정도이니 국회나 입법부는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분식회계를 통해 연간 1조 원의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삼성이 관리하는 것은 몇 명의 인맥이 아니라 사실상 국가 그 자체다.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비유나 과장이 전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나 법치는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사회의 여론이라는 말은 또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법이 어떠하든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누구로 선출하든 간에 삼성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이 바뀐다. 아예 법의 집행과 국회의원과 입법부가 통째로 삼성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다.
언론 또한 예외가 아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부정을 처음 발표한 다음날 아침 이 사실을 1면으로 보도한 주요 일간지는 <한겨레>가 유일했다. 조중동은 사회면 2∼3단 기사로 처리하고 말았다. 삼성에 의한 국가권력 탈취 쿠데타가 벌어지고 있으며 그 쿠데타가 성공했다는 폭로가 과연 사회면 2∼3단 짜리 기사일까? 대부분의 언론 또한 삼성의 영향력 하에 있다.
절망이다. 1970∼80년대보다는 한국 사회가 나아졌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과연 무엇이 나아졌는지를 묻는다. 50억 원짜리 비자금이 있다는데 금융당국은 1주일이 지나도록 계좌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더욱이 대선 정국을 보면 도대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명박의 독주도 못 봐주겠는데 이제 이회창까지 나서고 그 둘이 양강체제를 형성한다? 도대체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는가? 부패는 더욱 심해졌고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으며 차떼기와 병역기피 주범, 그리고 금융사기와 노조파괴의 주범이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로 나선다.
그러나 냉정히 보자. 한국 사회가 과연 무엇이었던가? 이른바 민주정부 아래서 부정부패가 척결된 적이 과연 있었나? 대중들의 진정한 민주주의적 권리가 향상됐던가? 한국의 정치지형이 변화된 적이 있던가? 없었다. 1987년의 거대한 대중투쟁과 이후의 꾸준한 투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적 권리들은 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침식됐고 권력은 자본에게로 더 집중됐을 뿐이다.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은 언제나 신자유주의가 부패를 척결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다. 신자유주의가 정부의 과도한 규제를 없애 부정부패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유명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폐쇄적인 독점은 반드시 부패한다”라고 말하면서 신자유주의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시장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 철폐, 세금 감면, 공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과도한 복지 축소, 행정 투명성 강화” 등을 통해 부패 없는 투명한 사회를 만들고 세계를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올리브나무 몇 그루를 두고 싸우는 중동국가와 같은 비생산적이고 가난한 사회가 렉서스를 파는 부유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이와 같은 원리들을 교과서처럼 따라 온 한국사회는 어떻게 변해왔던가? 부정부패가 사라지기는커녕 더 구조화됐다. 정부의 규제 철폐는 오직 자본의 이윤을 규제하는 제도의 철폐만을 의미했고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규제는 노동법 개악에서 보듯이 더욱 강화됐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의 위치는 국가 그 자체이다. 이제 아예 4개 재벌의 생산이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그중 1위 재벌 혼자서도 국가를 농락하는 사회가 됐다. 신자유주의는 부정부패를 척결한 것이 아니라 구조화했다. 렉서스? 대다수 서민들은 8천만 원짜리 외제차는커녕 집 장만도 어렵다. 권력자들과 소수 자본가들은 렉서스를 뇌물로 주고받을지 모르나 평범한 서민들은 그나마 있던 ‘올리브나무’마저 불타 버린 것이 오늘의 한국 사회다.
이러한 사회양극화와 민주주의 파괴를 누가 저질렀는가? 다름 아닌 바로 ‘민주정부’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그리고 ‘386’이라 불리는 열린우리당 등의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지금 이 사회의 절망을 만들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에게 선택은 이 ‘민주정부’세력에게 지지를 보내느니, 차라리 정치를 ‘끊거나’ 반대세력인 듯한 한나라당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환멸만 남은 한국 사회의 신산스러운 모습이 바로 삼성공화국과 이명박과 이회창의 대선 정국이다.
한미FTA에 대한 반대가 여전히 40퍼센트 수준이고 비정규직 확대나 사회양극화, 이라크 파병 등에 대한 반대 여론과 저항이 크지만 이것을 대변하는 정치적 지향은 아직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공화국과 이명박과 이회창의 대선을 끝장내는 것은 이제 온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의 몫이다. 더욱 대중적인 운동과 진보정당만이 대안이다. 비정규직 철폐와 한미FTA 반대, 전쟁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는 거대한 대중 운동만이 한국 사회의 절망을 끝낼 수 있다. 11월 11일 거리에서 대통령 선거는 다시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