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매·연’의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채널이 생긴 것에 맞춰 병의원·전문의약품의 방송 광고를 허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는 지난해 말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병의원·전문의약품 방송 광고를 일부 또는 전부 허용하겠다는 계획을 담은 ’2011년 업무계획’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부터 대두됐다.
곧장 반발이 일었다. 전문의약품 직접 광고가 허용되면 의약품 오남용이 조장되고 국민 건강이 망가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의료 기관 광고 역시 대형 병원 이용을 부추겨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 광고 허용은 5개로 늘어난 종편·보도 채널의 밥그릇을 챙겨주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함께 일고 있다. “국민건강마저 종편에 팔아넘기나”라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11일, 주승용 민주당 의원이 마련한 ‘종편의 전문의약품, 의료기관 광고허용 관련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약사회, 의사협회 등 의료계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방통위의 방침을 비판했다. 반면, 광고를 추진하는 측인 방통위 측은 발제문만 제출한 채 토론회에는 참석하지 않아 빈축을 샀다.
주승용 의원은 “전문의약품·의료기관 방송광고는 광고비용의 전가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 것이고 약물 오남용을 가져와 국민 건강에 위해를 가져온다”며 “방송광고는 모두 의료법과 약사법 개정 사안인데, 이와 관련한 개정은 있을 수 없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약제비 증가, 고스란히 환자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약품 비용 증가, 안정성 문제, 약 남용 가능성 등을 짚었다.
우 실장은 “미국은 전문의약품의 소비자 직접광고가 허용된 이후(1995년~2007년) 전문의약품 비용이 3배 증가했다”며 “더불어 의약품의 안정성은 시판이 허가 됐다고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데 의약품 직접 광고는 약의 신중한 사용을 아예 배제해 버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아그라와 같은 약품이 당뇨병 의약품에서 정력제로 탈바꿈 하게 된 것은 화이자의 광고에 힘입은 바가 크다”며 “전문의약품의 직접 광고를 대다수 나라에서 금지하는 중대한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약 권하는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 실장은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 직접광고에 1달러가 사용될 때마다 의약품 매출이 4.2달러 늘었다”며 “대부분의 전문의약품이 건강보험적용 대상인 한국은 전문의약품 광고를 허용할 경우, 그로 인한 약제비 증가는 고스란히 건강보험의 재정 증가와 환자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재호 의사협회 의무전문위원은 “전문의약품 광고로 약에 대한 선택권을 국민들이 가져가게 되면 처방에 대해 환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비일비재해질 것”이라며 “대부분 광고시장은 선정성 광고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후 약화사고를 누가 책임지겠냐”고 말했다.
즉, 전문의약품은 일반의약품보다 부작용의 가능성이 높기에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입이 가능한데, 전문의약품에 대한 광고가 허용되면 환자가 해당 약을 처방받겠다고 요구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약화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왜곡된 정보 전달로 약화사고 초래할 수 있어”
김동근 대한약사회 홍보이사 역시 “광고주 입장에서 부작용에 대한 내용을 의약품 광고에 게재할 이유가 없으므로 소비자는 장점만 부각된 약물 정보를 취득할 수밖에 없다”며 “무분별한 전문의약품 광고는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여 의약품 오남용과 약화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형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부회장은 “재생불량성 빈혈 등의 부작용을 낳는 성분을 갖고 있는 게보린은 ‘한국인의 두통약’이라는 광고문구로 이미지를 각인시킨 반면 부작용은 외면했다”며 “일반의약품도 이런데 전문의약품 광고가 허용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특히 약의 부작용은 단시간 내에 드러나지 않고 장기간 지켜봐야 하기에 문제점은 더 크다.
한국 의료 부분 정책을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도 토론회에 참석해 “전문 의약품 광고 허용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김국일 보건복지부 의약품정책과장은 “광고 허용 문제는 국민의 건강 수준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되는데, 광고가 허용됨에 따라 광고비용을 환자에게 전가하는 상황이 발생될 수 있고 의약품 오남용 가능성도 많다”며 “편익보다는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점에서 광고를 불허한 제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자금력 갖춘 대형병원에 의한 의료기관 양극화 가속화”
우 정책실장은 “의료기술은 복잡성으로 인해 다른 전문 분야에 있는 사람이 판단하기 어렵고 그만큼 규제도 어렵다”며 “소규모 임상실험만으로 그 분야에 효과가 있다고 홍보성 기사가 나기만 하면 난치병 환자들이 병원에 몰려드는데 의료기관 광고가 대대적으로 나간다면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재호 의무전문위원은 “자금력을 갖춘 대형병원 등에 의한 의료기관 빈익빈부익부가 가속화 될 것이며 의료기관 간 서열화 및 의료인 간 갈등이 촉발 될 것”이라며 “광고비 과다지출 비용의 일정부분은 환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대형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이는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려는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세우는 정책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병의원·전문의약품 방송 광고를 일부 또는 전부 허용하겠다’고 계획했던 방통위도 최근 반대 논란이 커지자 ‘전문의약품 광고’에 대해서는 한 발짝 물러난 입장을 표명했다.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상수 방통위 방송진흥기획과 사무관은 발제문에서 “방통위 역시 전문의약품에 대한 광고를 전명 허용하자는 입장은 아니다”라며 “전문의약품 중 일반의약품으로 재분류해 광고 허용가능 품목을 확대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의료기관 광고 허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아 이는 기존 입장대로 추진할 것임을 내비쳤다.
그러나 발제문을 접한 우석균 정책실장은 발끈했다. 우 실장은 “방통위에서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행태”라며 “건강을 위해서 (전문과 일반을) 분류한 건데 건강을 위해서 재분류해야 한다고 하는 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고 쏘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