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2005년 건강보험재정 중 약제비는 29.2%인 7조 2천억원이며 이는 2000년의 3조 5천억원에 비해 105% 증가한 것이다. 한국의 약제비 지출은 OECD 보건의료비 중 약제비 비중 평균 17.8%보다 무려 11%가 높은 28.8%에 해당하고 그 중가율은 OECD 평균인 6.1%에 비해 두배 이상 높은 12.7%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보험약가제도가 제약업체 위주로 편향되어 있고 약값이 높게 책정되어 있으며 약값을 협상하는 보험자의 권한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필요한 약제비지출을 절감하여 건강보험혜택을 늘이기 위해서는 약제비 절감정책이 절실하게 필요하며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래전부터 약가제도의 개선을 요구하여 왔다. 지난 5월 3일 날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발표되지 않는 등 미흡한 점이 많지만 선별등재 목록 채택, 가격협상을 통한 보험약 등재 결정, 경제성 평가를 통한 합리적인 약가의 결정, 특허 만료약의 가격조정 등 약제비절감을 위한 진전된 방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바 있다.
복지부의 이러한 정책방안은 다른 OECD 국가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일반적으로 시행되는 정책으로 한국정부의 약제비 절감정책의 도입은 사실 너무나 늦은 조치이다. 약제비 절감정책이 지연된 탓에 한국의 약값은 지나치게 높고 지금까지 불필요한 약제비가 지출된 것만 해도 수조원이 넘는다는 것은 구태여 계산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약제비 절감정책 도입이 지연된 상황속에서 한국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허술한 제도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챙겨왔으며 현재 건강보험재정의 약제비 지출 중 59.5%가 직간접적으로 다국적 제약회사의 몫이다(별첨자료 1). 사실이 이러한데도 현재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한국의 건강보험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부과하고 높은 약가로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게 만드는 등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것에 반성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약제비 절감정책에 반대한다고 나서고 있다. 더욱이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한미 FTA등을 통해 의약품가격을 더 높이려는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그들의 모국정부인 미국정부와 EU의 주장이 근거가 없으며 약제비 절감정책이 더욱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보험약가제도의 개혁은 국민의 건강권을 최대한 보호하려는 원칙에 입각하여 내려지는 결정이며 전적으로 개별국가의 고유한 주권적 결정사항이다. 이 때문에 이미 다양한 약가절감을 하고 있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자기 나라에 조건에 맞는 제도들을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다. 독일, 덴마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이 참조가격제를 실시하고 있고 영국은 이윤율 통제를 통해 약 가격을 조절하고 있으며 하다못해 전국민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도 보험약의 대량구매를 통한 매출할인으로 약가를 조절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은 의약품시장의 성장률이 2005년 동안 4%로 (영국은 -3%) 감소하였다. 이에 반해 같은해 브라질은 41%, 중국은 20.4%의 증가율을 보였고 한국은 2000년 이후 약제비 증가율이 21%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자국정부의 약제비 절감정책에 대한 반대급부로 다른 나라들에서의 의약품 판매를 늘이기 위해 비상식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다국적 제약협회는 ‘선별등재목록의 선택은 신약에 대한 차별로서 신약개발에 관련된 투자 욕구를 감소시켜 소비자들의 신약에 대한 접근권을 줄이는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근거가 없다.
우선 이미 오스트리아,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등 많은 OECD국가들이 선별등재목록을 채택하고 있다. 이미 포지티브리스트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이 국가들에서 신약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 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다. 이 나라들의 의약품 시장 중 신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것도 아니다.
또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만드는 신약들이 모두 효과가 우수한 약제들인 것도 아니다. 미국 FDA에서 1989년부터 2000년 사이에 1035개의 의약품을 승인하였으나 이 중 152개 제품만이 실질적 임상효과개선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별첨 자료 2) 즉 1,035종 중 실질적인 개선효과가 있는 제품은 240종에 즉 23%에 불과했다. 신약 중 진정한 신약이 1/4이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약을 등재시킬 때 비용-효과를 따져서 기존 약에 비해 우수한지를 판별하여 등재를 할 것인지, 가격을 얼마로 할 것인지를 판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의 입증은 당연히 제약회사의 몫이다.
셋째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저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다국적 제약회사가 생산하는 의약품가격이 고가이기 때문이며 그들의 의약품특허권 때문이다. 자신들이 생산하는 약품을 고가로 유지하고 이에 대한 값싼 복제약품의 생산을 특허보호라는 주장으로 막고 있기 때문에 전세계의 수많은 환자들이 의약품이 있음에도 한해에도 1000만 명 이상이 죽어가고 있다. 신약에 대한 접근권이 약가절감정책 때문에 저해가 된다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말도 안되는 주장에 우리가 일일이 대응을 해야 하는지 참으로 당혹스러운 심정이다. 다국적 제약협회가 스스로가 개발한 신약이 자신 있다면 경제성 평가를 통해 인정받는 자세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다국적 제약회사가 특허보호와 고가의 약값을 통한 이윤의 최대 확보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것이야 말로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는 유일한 길이다.
넷째 다국적 제약협회는 가격산정기준의 투명성을 이야기하며 약가결정시 제약회사의 참여를 주장하고 있다. 투명성은 보험자, 제약회사에게 공히 똑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하며 선별등재방식은 약가협상과정에서의 모든 절차와 내용, 약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위한 자료의 제출과 공개 등을 추진함으로서 최대한 투명성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이런 것이 생략된 채 보험자의 가격산정기준만 문제 삼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한미 FTA를 통해서 주장하고 있는 모든 신약의 선진7개국 평균약가 적용, 식약청-특허청 연계, 의약품특허기간 연장, 전문의약품에 대한 소비자광고 허용, 독립적인 이의신청기구의 신설과 투자자-기업 중재제도 등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이는 외국 신약의 가격을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높이게 되며 또한 특허기간연장으로 복제약품의 생산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약값폭등을 불러올 것임은 물론 한국의 약가정책을 언제라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제도들이다.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는 한미 FTA의 체결은 정부의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정책도입의 의의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것이다.
다국적 제약협회는 이전부터 유럽상공인 회의소와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를 통하여 주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의약품 제도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해왔다. 처음에도 주장하였듯이 보험약가제도의 개선과 결정은 전 국민의 보건의료 제도를 고려하는 보험자의 권리이며 한 국가의 주권사항이다. 물론 정당한 이의제기는 수용하여야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재 다국적 제약협회가 주장하는 것은 논리가 빈약하고 비상식적인 것이다. 여기에 한미 FTA를 통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은 약값을 폭등시킬 주장들로 그들이 말하는 신약에 대한 환자들의 접근권과는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국적 제약협회가 사실에 근거한 주장을 할 것을 기대한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은 다국적 제약협회의 인간의 생명보다 기업의 이윤을 앞세우는 주장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며 이들의 보험약가제도 개선을 방해하는 행위 및 의약품특허기간을 연장하고 약값을 높이려는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우리의 주장
1. 약제비 절감정책은 국민건강권을 위한 필수적인 제도이다. 다국적 제약협회는 약제비절감정책 반대행동을 중단하라
2. 다국적 제약협회는 한미 FTA를 통해 약가인상과 약품특허강화를 추진하는 행위를 중단하라.
3. 이윤보다 생명이다. 약값폭등을 초래하는 한미 FTA 협상 중단하라.4. 보건복지부는 약제비 절감정책에 대한 구체적 실행계획을 조속히 제시하라
2006년 6월 15일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을위한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공공의약센터 기독청년의료인회 다함께 민주언론시민연합 의료사고시민연합 정보공유연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사회보험노동조합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 진보네트워크 참여연대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감염인연대 KANOS HIV/AIDS인권모임 나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