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대표단 교섭장 퇴장…노조 총파업 예고

병원대표단 교섭장 퇴장…노조 총파업 예고
국·사립大병원 대표단문제 논란…막판 타결 가능성 희박

병원노사간 산별교섭이 최악의 사태로 치달으면서 총파업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전국보건의료노조(위원장 윤영규)와 국립대, 사립대, 전국지방공사의료원 등 90여개 병원대표단은 최근 총파업 돌입 시한을 5일여 앞두고 병원협회에서 12차 산별교섭을 가졌다.

그러나 이날 교섭은 주일제, 의료의 공공성강화, 임금인상 등 5대 요구안에 대한 심의는 이뤄지지 않은 채 병원대표단 문제가 쟁점화되면서 또다시 파행으로 치닫고 말았다.

노사간 논란의 쟁점은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의 대표단 구성 문제에서 비롯됐다.

올해 처음으로 산별교섭에 참석한 국립대병원은 원장급이 아닌 서울대병원 실무자(총무부장)가 참석, 노조측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날 교섭에서 보건의료노조측은 “아무런 결정권한이 없는 일개 실무자에게 9개병원의 교섭권을 위임하고 버젓이 교섭에 참가, 대표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강력히 항의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이처럼 반발하자 국립대병원측은 “이후 교섭에도 의료원장이 참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노조에 제출한 9개 병원장 위임장을 다시 회수해감으로써 국립대병원의 산별교섭 참가가 또다시 불투명해졌다.

사립대병원 역시 대표단 구성 문제로 보건의료노조와 갈등이 커졌다.

사립대병원은 지난 8차 교섭부터 한국노총 출신의 이병오 교섭본부장을 영입한 데 이어 이날 12차 교섭에 또다시 한국노총 출신인 병협 남일상 고문을 참석시켰다.

당초 보건의료노조측은 사립대병원 교섭 대표단에 이병오 본부장과 함께 의료원장이 함께 참석하기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사립대병원측이 오히려 한국노총 출신 간부를 또다시 추가 영입, 참석시킴으로써 보건의료노조측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노조측은 “파업이 불과 5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내용적으로 결정권을 가진 의료원장이 나와도 요구안 심의가 원할하게 이뤄질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병원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고 아무런 결정권한이 없는 병협 노사협력 고문이 나와서 교섭이 된다고 생각하냐”며 강력히 반발했다.

반면 병원대표단은 “노조가 사측 대표단 구성을 계속 문제삼는다면 교섭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며 “특히 이미 교섭권의 위임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교섭 대표의 자격을 놓고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박했다.

결국 병원대표단 구성 문제를 놓고 노사간 논쟁이 가열되면서 사립대병원 등 대표단이 교섭 도중 자리를 박차고 퇴장, 결국 교섭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음으로써 노조측의 공분을 샀다.

노사간 12차 산별교섭이 이처럼 파행으로 끝남에 따라 총파업 이전 막판타결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일단 노사양측은 7일(월) 병협에서 13차 교섭을 갖고, 중앙노동위원회의 마지막 조정회의가 열리는 오는 9일까지 연속해서 교섭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병원 대표단 구성 문제가 누차 제기될 경우 주5일제 및 임금인상안 등 핵심 요구안에 대한 심의는 힘들 것으로 보여진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향후 교섭에서도 사립대 및 국립대가 지금과 같은 대표단이 참석한다면 교섭은 진행될 수 없다”며 “5대 요구안에 대한 노사간 이견차가 큰 시점에서 막판교섭 타결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상기기자 (bus19@dailymedi.com)
2004-06-0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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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산별교섭의 스타 ‘이병오 본부장’

낮고 느린 말투…”교섭전략만 풍부하고 솔직함은 없다”
병원 노사간 산별교섭이 막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사실상 올해 처음으로 산별교섭이라는 새로운 교섭방식이 도입되면서 2개월 여를 넘긴 노사 교섭은 본격적이 요구안 심의에 앞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 와중에 올해 산별교섭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한 사람 있다. 다름아닌 사립대병원 대표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대한병원협회 이병오 노사협력본부장이다.

이 본부장은 이미 ‘한국노총’ 출신이라는 점에서 등장 초기부터 묘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이 본부장이 교섭장에서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특유의 ‘낮고 느린 말투’ 때문이다.

이런 말투는 때로 중얼거림으로 들린다. 노사 교섭을 취재하는 기자는 물론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그가 발언할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울수 밖에 없다.

카운터파트너인 보건의료노조측 교섭위원들이 ‘높고 빠른 톤’의 목소리로 몰아부쳐도 짐짓 여유 있는 웃음으로 일축한다. 이런 그의 모습은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관심거리다.

그의 또 다른 특징은 교섭 진행을 지연시키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차 교섭부터 참여한 그는 어눌한 듯 하면서 나름대로 한국노총에서의 관록이 묻어나는 화법으로 기본적인 교섭원칙안 하나만을 놓고 2차례나 교섭을 질질 끌었다.

뿐만 아니라 교섭의 카운터파트너를 자극시키는 능력도 탁월하다.

그동안 4차례 정도 교섭에 참여하면서 한국노총에서의 경험을 십분 활용하려는 듯 잦은 말바꾸기와 교섭 진행상 더 이상 문제삼을 필요가 없는 부분도 새롭게 들춰내 보건의료노조측을 자극했다.

결국 보건의료노조측도 “이병오 본부장은 교섭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며 그의 교섭 실력을 인정(?)하고 말았다.

노사교섭에서 전략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교섭전략만 있고 ‘솔직함’이 없다면 노사간 대화를 통한 타협은 기대할 수 없다.

오는 10일 총파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노사교섭을 마무리지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다.  

김상기기자 (bus19@dailymedi.com)
2004-06-02 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