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단체, “외국병원 도입,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
정부 이미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제도 도입 준비
2004-07-15 오후 5:33:12
2008년경 인천·부산과 전남 광양 등 경제자유구역에 외국병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17일 외국병원에서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국내병원보다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예상되는 외국병원 도입은 과연 현재 의료서비스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이에 대해 일선 의료인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즉 외국병원 도입과 내국인 진료 허용은 ▲전국적인 의료개방조치에 해당 ▲건강보험제도 파탄 ▲일반 서민 의료서비스 소외 ▲진료비 급등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의료계 진보 성향의 의료단체들로 구성된 ‘경제자유구역법폐기와 의료개방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집행위원장 최인순)은 15일 오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까페에서 ‘경제자유구역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 및 영리법인화 허용 반대’를 핵심으로 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외국병원 도입 및 내국인 진료, 사실상 전국적인 의료개방조치
법제처는 지난달 8일 올해 안에 경제자유구역내 외국병원의 내국인진료 및 영리법인 허용을 골자로 하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계획을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또 지난 14일에는 재정경제부가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에 외국병원, 학교 등을 유치하고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부속병원 등 외국병원과의 협상에 상당한 진척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처럼 정부는 오는 2008년경 경제자유구역내 외국병원 유치를 위해 법률 개정 및 외국병원과의 협상을 진행해 오고 있다.
공대위는 정부의 이같은 방침이 ‘실질적으로 전국적인 의료개방조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재경부 및 복지부가 밝힌 외국병원의 규모는 5백~1천병상 규모인데, 이런 규모의 병원의 수익구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경제자유구역 거주인구를 훨씬 넘어서는 최소한 50만~1백50만명의 배후인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인천의 외국병원유치는 경인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부산의 외국병원유치는 영남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경제자유구역법폐기와 의료개방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15일 오전 안국동 느티나무 까페에서 정부의 외국병원도입의 문제점을 발표하고 있다. ⓒ프레시안
외국병원 영리법인화 허용, 국내병원 영리법인화 및 의료서비스 이용의 빈부격차 심화
또다른 문제점으로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허용과 영리법인화 허용은 연쇄적으로 국내병원의 영리법인화 및 민간의료보험도입을 초래해 현재도 극심한 의료서비스 이용의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인천에 유치될 예정인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병원(일명 유펜)이 발표한 경영수지평가 보고서를 보면, 국내병원의 5~7배의 진료비를 받아야 수지타산이 맞다는 내용이 나온다”며 “이에 따를 경우 외국병원은 국내의 극소수 부유층만을 위한 병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대위는 “외국병원의 높은 의료비는 국내병원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즉 국내병원이 외국병원과 경쟁을 하려면 고급진료를 할 수밖에 없고, 결국 국내병원 의료비도 상당부분 상승하게 된다. 의료비 상승은 공적 건강보험재정을 크게 악화시키고 결국 대체형 민간의료보험도입은 필연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공적 건강보험제도도 위협, 정부도 대체형 민간의료보험 도입 준비
실제로 정부도 외국병원도입에 따라 대체형 민간의료보험 제도 도입을 정책방향으로 잡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04년 2월 발표한 <지구촌에서의 한국 보건복지정책의 방향>을 보면, 향후 보건의료 재원조달 모형을 최상층(전 국민의 상위 10%), 중간층(전국민의 80%), 취약계층(하위 10%)로 3단 분류를 한 뒤, 최상층의 경우 ‘재원은 본인부담’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행 공적 건강보험제도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재원의 본인부담’은 곧 대체형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공대위는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되면, 건강보험재정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유층들이 빠져나가게 돼, 건강보험 재정은 위축되고, 급기야 대다수 서민들은 보험혜택이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우석균 정책국장은 이와관련 “정부의 정책방향은 미국의 의료체계를 답습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 전국민의 15% 약 4천3백만명이 일절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장래우리의 모습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싱가폴, 의료개방 성공 사례 과장
공대위는 정부와 일부 언론이 의료개방으로 인한 성공예로서 드는 싱가폴의 예도 과장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싱가폴은 병원의 80%가 공립병원이며 정부가 공공의료에 투자하는 돈이 우리나라에 10배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의 경우와 동일선 상에 놓고 비교할 수없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미국을 제외한 OECD 어느 나라도 의료부문을 WTO DDA주요협상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으며 협상도 없이 일방적으로 의료개방을 추진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주장했다.
우석균 정책국장은 이와관련 “한국정부는 구체적 득실을 따져보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국내에 무조건 도입하고 있다”며 “의료개방 역시 이런 맥락에서 진행되다보니,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대위는 “우리나라에 지금 필요한 것은 고급진료나 병원의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빈부와 상관없이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김경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