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제자유구역 외국병원 설립의 허와 실

[오피니언] 경제자유구역 외국병원 설립의 허와 실
  
이진석 (충북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최근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와 영리법인 설립을 허용하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재경부가 제시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 근거를 중심으로 외국병원 설립의 타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해외유출 의료이용 흡수’ 측면이다. 재경부는 국내 환자가 해외의료를 이용하는데 연간 1조원을 지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작년부터 떠도는 ‘해외원정 진료비 1조원’은 아무런 근거 없는 통계수치이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2002년 미국병원이 해외환자를 통해 벌어들인 진료비 수익은 1조2천억원이다. 따라서 국내 환자가 해외에서 1조원을 지출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게다가 해외의료 이용의 50∼70%는 해외국적 취득을 위한 원정출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유출 의료이용을 흡수하겠다는 정부 계획은 매우 과장된 것이다. 오히려 외국병원이 통로역할을 하면서 잠재 수요로 있던 국내 고소득층의 해외의료 이용이 실수요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 ‘해외환자의 국내 유치’ 측면이다. 해외환자 유치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싱가포르의 경우, 해외환자의 70%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의료인프라가 취약한 인접국가 출신이고, 나머지도 인접국가의 외국기업 상사원들이다. 싱가포르 해외환자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데, 이에 대해 래플즈병원과 파크웨이의료그룹 관계자들은 “비행기로 2∼3시간의 거리조차도 환자에게는 부담이 되기 때문에 싱가포르로 환자를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현지에 병원을 설립하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을 들어 중국 고소득층을 유치하겠다는 재경부가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특히 중국 현지에는 싱가포르병원 뿐 아니라 미국의 유수한 병원들이 설립될 예정이기 때문에 중국 고소득층의 의료수요는 이들 현지 외국병원으로 대부분 흡수될 것이다. 결국 경제자유구역 외국병원은 국내 고소득층을 겨냥한 ‘내수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계 일류병원 설립을 계기로 ‘국내의료의 질 향상과 선진 관리·경영기업 도입’이 이루어질 수는 있을까? 이조차도 부정적이다. 외국병원은 국내병원보다 6배 높은 진료비를 보장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국병원에 비해 1/6 수준의,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가를 받는 국내병원이 외국병원을 벤치마킹하며 질 향상을 이루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오히려 기대수준이 높아진 국민이 기존 국내 병의원의 서비스에 대해 가지는 불만만 더 커질 수 있다. 그리고 병원의 관리·경영기법은 해당 국가의 의료제도, 특히 보수지불제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현행 보수지불제도가 유지되는 한, 관리·경영기법의 변화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처럼 정부가 추진 중인 외국병원 설립은 현실성도 결여되고, 실익 측면에서도 기대할 것이 없는 정책이다. 오히려 외국병원, 그리고 이들과 합작관계를 맺을 일부 병원에 차별적인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의료기관의 계층화를 부추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재경부는 싱가포르도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싱가포르의 존스홉킨스 분원은 외국병원이 아니라 싱가포르 국립대병원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고 있다. 의료진도 싱가폴계 미국인과 대만인 2명에 불과하다. 일본인 의사가 개설한 의원이 있지만,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일본인만을 진료할 수 있다. 이처럼 재경부는 외국병원 설립의 효과를 과대포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면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자유구역 외국병원 설립은 내우외환에 빠진 국내의료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해법이 아니라 오히려 큰 우환이 될 가능성이 짙다. 일부 ‘잘 나가는’ 병원을 선별, 특혜를 주는 단기처방이 아니라 국내의료의 경쟁력과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차분하고 치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