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노말헥산 “마스크 없이 12시간 노출”

“마스크 없이 12시간 노출”

△ 노말헥산이 든 세척제에 중독돼 다발성 신경장애를 앓고 있는 타이 노동자들이 13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일동 안산중앙병원 병실에서 자신들의 증세를 밝히고 있다. 안산/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13일 오후 타이 여성 노동자 8명이 노말헥산에 중독돼 하반신 마비증세를 일으킨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요리 엘시디·디브이디 부품업체인 ㄷ사. 회사 쪽은 노동부의 현장조사에 맞춰 아침부터 몰려든 기자들의 취재를 한사코 거부했으나, 결국 오후에 검사실의 문을 열었다.

검사실은 입구에서부터 강한 화공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너비 3.5m, 길이 8~9m, 높이 2.5m의 밀폐된 검사실 안에는 양쪽으로 책상이 놓여 있었고 빈 책상 위로는 형광등이 줄지어 켜져 있었다. 사방이 온통 막힌 컨테이너 같은 느낌의 방이었다.

환풍기는 천장에 매달려 있었지만 검사실 안의 독한 냄새를 빼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바로 이 방에서 일하다 노말헥산에 중독된 타이 여성 파타라완(30)은 “보통 아침 8시30분부터 밤 10시에서 11시까지 일했고, 휴일에도 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아무개 공장장은 “세척제로 사용하는 ‘노말헥산’이 유독성이 강한 줄 몰랐다”며 “정전기로 인한 화재 발생을 우려해 지난해 8월부터는 친환경적 세척제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회사 관계자는 “노말헥산이 유독성 물질이라는 것을 공장장이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입마개를 쓰기만 해도 줄일 수 있었던 피해였는데, 안전 불감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ㄷ사 검사실을 둘러본 뒤 이곳 공장에서 일하던 타이 여성 노동자들 세 사람이 입원한 경기도 안산시 일동 산재의료관리원 안상중앙병원 203호를 찾았다. 얼굴이 가무잡잡한 다섯명의 타이 여성이 병상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대부분이 앉은 자리에서 바로 일어서기 어려울 만큼 하반신 마비증세로 입원한 이들이다.

한국말을 잘하는 파타라완에게 “노말헥산으로 제품을 검사하며 닦을 때 냄새가 나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파타라완은 “플라스틱 제품을 검사할 때 기름 같은 액체로 닦으라고 해서 그대로 했어요. 제품을 닦을 때 나쁜 냄새가 났어요”라고 말했다. 파타라완은 링거 버팀목에 의존해야 간신히 걸을 정도로 하반신 마비가 심각한 상태다. 최근에는 손가락으로도 증세가 번져 물건도 잘 들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파타라완이 그의 어머니와 함께 경기 화성시 향남면 요리 ㄷ사에서 일한 것은 3년째다. 그가 맡은 일은 회사 검사실(세척실)에서 일명 ‘백라이트’로 불리는 엘시디·디브이디 부품의 얼룩이나 때를 지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매일 손으로 만지는 액체가 무엇인지는 한 번도 물어본 적도,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그는 “회사에서 작업 중에 쓰라고 마스크나 보호안경을 준 적이 없었다”며 “그냥 회사에서 준 하얀 가운 하나만 걸치고 일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일어서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하다 동료들이 쓰러지기도 했는데, 잠시 쉬었다가 괜찮으면 다시 일했다”며 “처음에는 나 혼자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동료들도 비슷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이런 증상을 보인 때는 지난해 10월에서 11월 사이다. 제3세계 의료지원활동 단체인 ‘사랑의 봉사단’ 이현애 간사는 “어려움을 겪는 타이 노동자들이 도움을 받을 곳은 타이인을 위한 교회 정도인데,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쉬지 못해 이 교회에도 나오지 못했다”며 “다른 타이인들로부터 고립돼 증세가 더욱 악화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반신 마비증세를 보인 타이 여성 노동자 8명 가운데 t수말리(29·여) 등 4명은 지난 11월 회사를 나와서 인근 마을에 방을 얻어 집단생활을 했다. 그러나 나머지 4명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자신들의 숙소 대신 회사 안의 한국인 기숙사 2층에서 쉬고 있었다. 이들은 “거동이 불편해 밥을 동료 타이 노동자들이 받아다 주고, 용변을 보러 갈 때도 업어서 다녔다”고 말했다.

이 사이 이들이 병원에 갔던 것은 단 한차례뿐이었다. 회사 쪽은 “회사 유관 병원인 오산의 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 증세는 없다고 해서 다시 회사로 데려왔다”고 말했다.

뒤늦게 추언총 등 타이 여성 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6일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타이 노동자들의 등에 업혀 안산의 ‘파로스 태국인 교회’로 실려왔다. 이들은 병이 생긴 지 두 달이 다된 12월13일에야 안산의 중앙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한국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던 5명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고통을 못 이겨서 회사가 마련한 귀국 비행기를 타고 지난해 12월11일 타이로 귀국한 씨리난(37·여) 등 3명은 마비증세가 온몸으로 번졌으나 현재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김남숙 선교사는 “씨리난 등 타이에 있는 사람들과 통화하면 너무 고통스러워하면서 울음만 쏟아낸다”고 말했다.

안산 화성/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