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2005. 4.2 ] 광우병과 미국산 소고기
김진국(의사·신경과 전문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 언론들의 관심은 대부분 북핵문제와 6자회담, 그리고 한·일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독도분쟁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모아져 있었다. 반면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우리 정부를 향해 단호한 어조로 수입 재개를 촉구한 라이스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는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2003년 12월, 미국 축산농가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된 이래로 지금까지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금지해왔다.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었을 때 미국 정부는 그 소는 원래 미국산이 아닌 캐나다 산이라 발표했고, 그 이후 새롭게 광우병 증세를 보인 소가 미국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또 미국에서 현재 인간 광우병(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과거에 영국에 거주하는 동안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단 한 명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광우병의 청정구역이라 볼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인간이 가진 과학지식은 광우병에 대한 치료방법을 전혀 마련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발병기전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한 과학자가 광우병에 안 걸리는 소를 만들었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흥분한 적은 있으나, 그것은 그야말로 잘 나가는 과학자의 과대망상임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영국에서 시작된 광우병이 유럽 전역을 공포로 몰아갈 때 영국 정부가 내 놓은 유일한 대책이라는 게 소들의 대량도살밖에 없었다.
그 이후 세계보건기구는 광우병 예방을 위해 동물성 사료의 사용금지, 검역·검사기준의 강화, 도축과정에서 살코기와 특정위험물질이 섞이지 않도록 할 것, 그리고 소 혈장 성분의 인공분유로 송아지 사육을 금지하도록 하는, 식용 소의 사육·도축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네 가지 지침을 마련한다. 하지만 구속력 없는 국제기구의 권고사항을 미국의 축산업계가 얼마나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소비자단체는 미국의 축산업계가 송아지의 몸집을 속성으로 키우기 위해 여전히 동물성 사료를 사용하고 있고, 도축과정에서 뇌, 척수, 내장과 같은 광우병의 특정위험물질이 살코기에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자동기계를 사용하고 있으며, 갓 태어난 송아지를 소의 혈장성분으로 만든 인공분유로 사육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광우병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도축되는 소의 연령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현저하게 어리기 때문이다. 광우병은 긴 잠복기 탓에 감염이 된 후 증상을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송아지가 광우병의 보균자 상태라 하더라도 도축시점에 외견상 건강하게 보인다면 굳이 엄격한 검역기준을 적용할 축산업자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24일, UPI 통신은 미국 국립보건원이 수십년 동안 보관해 왔던 뇌조직 표본들을 관련 학자들의 반대에도 아랑곳않고 대부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폐기 대상의 뇌조직은 지금까지 미국에서 광우병과 유사한 증세를 앓은 환자들로부터 채취한 뇌조직이다. 인간 광우병의 진단은 뇌조직 검사를 거쳐야만 확진이 가능한 질병이다. 인간 광우병에 대해서 엄청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귀중한 표본들을 미국이라는 나라는 왜 국가기관이 앞장서서 폐기하는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라이스 장관의 요구에 대해 우리 외교통상부 장관은 “과학적 근거와 절차에 따라 판단하되, 조속히 수입을 재개할 것”이라 답했다. 20∼30대의 비만이 폭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미국산 소고기를 ‘조속히 수입’해야 될 절박한 사정은 없다. 대신 꼼꼼히 확인해야 할 것은 미국 축산업계의 소 사육과 도축의 ‘절차’를 확인하고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일이다. 광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육과 도축의 절차에 있어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 이외에 어떤 대안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광우병이 휩쓸고 지나간 유럽에서 충분히 증명된 바 있다.
영남일보 200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