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오늘, 주치의와 의논하세요. 이 약이 당신한테 맞는지

오늘, 주치의와 의논하세요. 이 약이 당신한테 맞는지  

[홍실이의 이상한제국의앨리스](4) – 미국 의약품 광고 실태  
  

홍실이  

각종 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지구촌 한 가족(?) 시대를 살고 있는데다, 생활 구석구석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보니, 실제로 미국에 와도 특별하게 새로운 걸 찾기는 힘들다. 대개는, 실제로 보니 예상보다 ‘더 크군’ (햄버거와 콜라), ‘더 많군’ (집집마다 걸려 있는 성조기), ‘더 심각하군’ (사회적 불평등) 정도의 반응…. 하긴, 지난달 이 곳을 방문한 친구에게 진짜(!) 체리와 씨 없는 포도를 보여주면서 “너 이런 거 첨 봤지?” 하며 으쓱했다가 면박만 당했던 일도 있다. “이 인간이 정신 나갔나? 야, 서울 백화점 가면 다 있어” 진짜? 아니, 나도 모르는 새에 언제 이런 걸 들여갔대?

그 와중에 그래도 조금은(!) 놀라운 것들이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의약품 관련 광고라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도 의약품 광고 엄청나다. 불세출의 명작 “맞다! 게○린”을 비롯하여 “감기 조심하세요~ 판○린 에프” 등 몇몇 광고들은 한국을 떠난 지 1년이 다 되는 이 마당에도 마치 어제 본 듯 생생하게 떠오른다.
허나, 미국의 의약품 광고들을 들여다보면 다른 점이 있다. 물론 각종 패치 (파스), 소염/진통제 등 일반 의약품 광고들은 한국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광고들은 어떤가?

그림 1. 혈중 지질 강하제 Lipitorⓡ의 광고 화면 “오늘 의사에게 요청하세요”

  

그림 2. 또 다른 혈중 지질 강하제인 Crestorⓡ 의 TV 광고 화면: “위약 (placebo) 복용 시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C가 7% 감소한데 비해 Crestorⓡ 10mg 복용 시 52% 감소”

그림 3. 항암 치료로 인한 백혈구 감소증 치료제인 Neulastaⓡ TV 광고: “화학 요법 1일 후에 투약 시작. 추가 정보는 의사에게 요청하세요”

  

그림 4. 발기부전 치료제 Cialisⓡ 의 웹 사이트 광고 – 제품을 1회 무료로 사용해보고 (물론 의사의 처방 필요) 결정할 수 있다는 내용

척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들은 모두 의사의 처방전을 필요로 하는 전문 의약품들이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약, 항암 화학 요법 시 나타나는 백혈구 감소증을 치료하기 위한 약, 거기다 발기부전을 받는 환자들에게 1회 무료 투약 기회 제공이라니….. 한국에서는 절대(!) 접할 수 없는 광고들….

역사적 배경

이렇게 제약회사가 (학술지 등이 아닌) 비전문 매체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전문 의약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판촉 형태를 DTC (Direct-to-Consumer) 광고라고 한다. 미국 사회에 이런 형태의 광고가 출현하게 된 배경을 잠깐 살펴보자.
자본주의의 절대지존답게, 미국은 이미 18세기부터 지역 신문에 특허 약물에 대한 광고를 싣기 시작했고, 19세기 초에는 언론과 제약(발모제부터 배우자의 부정 치료약까지) 업자들의 강력한 공생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단다. 그러다가 1938년, 식품의약국 (FDA)이 의약품 안전 관리에 대한 권한을 갖게 되었고 1962년에는 통상 무역부서로부터 의약품 광고에 규제 감독 권한까지 넘겨받았다. 이 때부터 의약품 안전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의약품 관련 판촉 활동은 전적으로 의사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80년대 관리 의료 (managed care) 의 성장 속에서 처방의약품에 대한 보험을 갖는 사람들은 늘어난 반면, 의사의 약물 선택 권한에는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판촉활동으로는 2% 부족하다는 것이 제약회사들의 판단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마침내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으니, FDA에 소비자 직접 광고를 허용해달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즉,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일반인들의 지식수준을 높이고, 이를 통해 그동안 진단 받지 않았던 환자들이 의사를 찾게 만들며, 환자들은 까먹지 않고 치료를 꾸준히 받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가 어느 시점인가? 레이건 정부의 빛나는 영도 하에 사회 구석구석에서 규제 완화가 꽃을 피우던 시기 아닌가! 여기에 덧붙여 소비자 운동이 확산되면서 기존의 온정주의적 관점 (의료 이용에서 전문가인 의사가 환자의 판단까지 알아서 대리해주는) 으로부터 소비자의 자율성과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는 흐름까지 있었으니, 더 이상의 절묘한 타이밍은 있을 수 없었다.
1985년, 제약회사들이 소비자를 직접 대상으로 하는 판촉활동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이러한 판촉에는 엄격한 기준 준수(효과는 물론 부작용, 금기 등 제품 설명서에 담긴 정보를 모두 전달해야 한다는)와 FDA의 사전 검토가 요구되었다. 여기에 만족 못한 제약 회사들, 그걸 모두 설명하려면 엄청난 비용의 추가 인쇄비가 들고 TV나 라디오 광고로 그 많은 내용들을 설명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강력한 반박을 벌였다. 결국 수많은 논란 끝에 1997년 FDA의 새로운 지침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제품 설명서에 인쇄되어 있는 구체적인 정보들을 모두 나타내지 않고도 광고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대신에 다른 경로(웹 사이트, 무료 전화, 의사, 약사 등)를 통해 추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일각에서는, 이를 강력히 반대했던 FDA 국장의 사임이 정책 변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어쨌든 규제 완화의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98년에 Shering-Plough 제약사가 Claritinⓡ 이라는 항히스타민제 (알러지 치료약제의 일종) 판촉에 1억 8600만 달러를 쏟아 부은 후, 그 다음 해 극적인 판매 수익을 기록한 것은 그 서곡에 불과했다.

그래서 현실은?

그 동안의 통계를 잠깐 살펴보자. 96-2000년 사이 제약회사의 판촉비용은 71% 증가했으며 (91억 불 → 155억 불), 그 중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판촉비용이 58% 증가한데 비해 (80억 불 → 130억 불), DTC 광고비용은 216% 증가했다 (8억 불 → 25억불). 최근 2004년의 DTC 광고 총액은 무려 40억 불 (약 4조 5천억 원)에 이른다.
97년의 DTC 광고 매체 비율은 텔레비전이 27%, 잡지가 62%를 차지한데 비해, 2000년에는 전자가 64%, 후자가 30%를 차지하게 되었다. 절대 수치도 놀라운데, 이를테면 작년 가을 이후 새로운 부작용의 발견으로 시장에서 자진 철수한 류마티스 치료제 바이옥스 (Vioxxⓡ)의 경우, 2000년도의 광고비가 펩시콜라 (1억 2100만 불)와 버드와이저 (1억 4600만 불)를 넘어서기도 했다.
자, 이렇듯 엄청난 판촉활동 덕에 의약품의 블록버스터 (매출액 10억 달러 이상)가 탄생하게 된다. 2001년에는 총 29 종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나타났으며, 이들의 매출은 미국 전체 제약 산업 매출의 34%를 차지했다. 이들이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광고 때문이다. 이를테면 2000년에 가장 많은 광고를 했던 다섯 가지 의약품들이 2001년에 모두 블록버스터가 되었으며, 최고 7개 의약품 각각의 광고비는 나이키의 신발 광고비 7800만 불보다 많았다. 한 연구는 제약회사가 판촉에 1달러를 쓰면 4.2불의 판매 증가를 거둔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제약회사의 이윤율이 그 어느 산업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은 독점적인 특허에서 기인한 것으로, 제약회사들은 이러한 높은 이윤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연구개발 투자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막대한 수익 중 30.4%가 광고와 행정 비용으로 지출되며, 이윤이 18.5%, 실제로 연구개발에 투자되는 돈은 1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영향은?

DTC 광고의 옹호론자들은 무엇보다도 교육 효과를 강조한다.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치료 결정 과정에서 환자의 자율성을 촉진하고 의사-환자 관계를 증진시킬 뿐 아니라, 그동안 진단/치료를 받지 않았던 환자들이 치료를 받게 하고 처방 약물에 대한 환자의 순응도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물론 아직 구체적 증거는 없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제약 회사들 사이의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제품 가격의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발랄한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DTC 광고에 대한 내용 분석에 따르면, 질병 관리와 관계된 대안적 치료법 (이를테면 운동이나 식이요법 등)을 언급하는 광고는 채 1/3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 상품 정보 전달 외에 딱히 보건 교육 효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과 달리 DTC 광고에서 가격 정보를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대개 신약, 효능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지, 기존 약보다 훨씬 싸다는 식의 광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쟁을 통한 가격 하락설도 그다지 설득력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환자의 자율성 증대와 의사-환자 관계 증진은? DTC 광고 반대론자들은 소비자가 광고 내용의 질을 판단할 전문성이 부족할뿐더러 이러한 광고들이 위험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의사-환자 관계를 오히려 해치며 의약품의 오남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연구결과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일반 시민들)의 43%가 의약품의 안전성이 완벽하니까 광고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으며, 22%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약의 광고는 미리 금지되었을 거라고 믿었고, 21%는 매우 효과적인 약만이 광고가 허용될 거라고 믿었다. 실제로는 이러한 사전 규제 기능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실제 처방과 관련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광고를 접한 32%의 환자가 그 약에 대해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26%는 실제로 그 상품을 요구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1차 의원을 방문한 환자들 중 광고에서 접했던 의약품을 요구했던 이들의 71%가 그 의약품을 처방 받았으며, 10%만이 다른 약물을 처방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4월 발표된 우울증 모의 환자 실험 연구에 따르면, 임상적 적응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요구에 따라 특정 항우울제를 처방한 경우가 거의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84%가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는데, 의사들은 이러한 광고가 환자에게 편향된 정보를 전달하며 의사의 전문성을 훼손시킬 수 있고 의사-환자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이를테면, 환자는 혈압 강하제 광고를 보고 약을 먹는 것만이 혈압 조절의 유일한 방편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으며, 또 광고에서 보았던 그 약을 주치의에게 요구했는데 의사가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약을 처방해주지 않는 경우 오히려 의사를 불신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의도적 수요 창출은 미국 사회의 엄청난 보건의료비 지출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전문의약품의 사용 증가는 미국 의료비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2000년 통계에 의하면 국민 1인당 평균 처방의약품 비용이 3백 불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맺음말

소비자의 알 권리 확대를 넘어서 의약품 소비자 직접 광고가 가져오는 여러 가지 폐해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흐름이 뒤바뀌지는 않을 듯싶다. 광고비 지출 증가 행진은 멈추지 않고 있으며, 제약회사들은 매출과 수익성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또한 의사들이 이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지만 DTC 광고 금지법안을 지원하자는 시민단체의 제안에 미국 의사협회 (AMA)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며 거절의사를 밝혔다.

흔히 광고를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미국 사회, 흐드러진 꽃들의 향기에 질식할 지경이다. 이 사회, 도대체 어디까지 갈까? 늦은 밤 멍하니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고심하고 있자니, 친절하게 ‘꽃’이 나타난다.
“밤잠을 뒤척이시나요? ….. 꿈처럼 작용하는 Ambienⓡ…. 주치의와 상의하세요.”
아유, 세심하기도 하셔라. 네. 고맙습니다!

* 참고문헌
△ Pharmaceuticals Rank as Most Profitable Industry, Again. Public Citizen’s Congress Watch. April 17, 2002
△ Lyles A. Direct marketing of pharmaceuticals to consumers. Annual Review of Public Health 2002;23:73-91
△ Wilkes MS, Bell RA, Kravitz RL. Direct-To-Consumer Prescription Drug Advertising: Trends, Impact, And Implications. Health Affairs 2000;19(2):110-128
△ Lenzer J.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rejects proposal to ban consumer adverts for prescription medicines. BMJ 2005;3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