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서프 조희연교수 / ‘시장화 대 공공성 실현’의 전선 출현

‘87년 체제’의 전환적 위기와 민주개혁

개발독재 시기를 건너 87년 6월 민주항쟁을 분기점으로 한국사회는 본격적인 민주화의 시기로 전환되었으며 이후 주어진 새로운 체제를 흔히 ‘87년 체제’라 부른다.

조희연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는 “87년 체제는 한편에서 민주개혁이 시대적・국민적 과제가 되어 있는 체제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구체제의 프레임이 일정하게 구속력을 가진 형태로 작용하면서 민주개혁의 철저한 전개를 제약하는 체제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87년 체제가 군부독재체제의 혁명적 극복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급진적 민주화’의 프레임 속에서 민주개혁이 전개되기 보다는 구 집권세력이 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타협적 권력구조’ 속에서 전개된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가 결합된 체제라는 평가다.

87년 체제를 시기적으로 좀 더 세분화하면 변형된 구 집권세력이 주도하는 과도기적 시기(노태우 정부), 반독재민주세력의 한 분파가 구 집권세력과 연합한 시기(문민정부), 반독재민주세력의 집권 시기(국민정부와 참여정부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조 교수는 “87년 체제 하에서 진행된 민주개혁과정은 국민정부에 이어 개혁자유주의정부 2기라고 할 수 있는 참여정부에 이르러 전환적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고 지적한 후, “이는 87년 체제의 병목지점에 도달한 것이며 ‘포스트-87년 체제’로의 이행을 둘러싼 진통과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전환적 위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조 교수는 “87년 체제가 전제하고 있었던 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 혹은 반독재민주세력의 ‘헤게모니’의 위기가 존재한다”고 꼬집었다.

먼저 민주개혁의 ‘수평적 확산’이 한계지점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민주개혁 주체들의 국정운영과정에서의 많은 문제점들에 의해서 위기가 증폭된다는 것. 여기에는 집권세력화된 반독재민주세력들의 국정운영 상의 오류와 타락, 행정적 미숙 등이 거론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민주정부 주도세력의 ‘통치의 미덕’이 부재함으로써 위기가 가속화된다고 꼬집었다. 특히 참여정부의 정책추진과정에서의 비(非)헤게모니적 행태들, 일종의 미숙성, 원숙성의 부재 같은 것들도 위기를 촉진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참여정부 주도세력들이 저항의 미덕과 통치의 미덕을 혼동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된다”며 “이러한 통치의 미덕 부재는 반독재민주세력 전반의 헤게모니의 균열이라고 하는 결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개혁 자체의 내제적 한계로 인해서도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87년 이후 국가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자본주의의 가혹한 축적구조가 규율되지 않은 채로 작동하였고 이는 97년 경제위기와 이른바 지구화의 신자유주의적 영향에 매개되면서 한국사회의 양극분해와 시민사회의 계급적 양극화가 촉진되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민주개혁의 이러한 위기에 대응해 나타나는 가장 직접적인 현상으로는 ‘보수세력의 능동화’를 들었다. 개발독재시기에는 단순히 위로부터 동원된 관변단체들의 능동화가 있었다면 민주개혁의 위기속에서 적극적으로 보수를 동원하고 보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집단행동이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 지점에서 ‘포스트 87년 체제’ 전선의 새로운 구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한편에서 개혁 대 반개혁이라는 87년 체제의 주된 전선이 유지되면서도 동시에 ‘민주적 계급사회’의 출현에 조응하는 ‘시장화 대 공공성 실현’의 전선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

조 교수는 여기서 민주개혁 담론의 사회적 확장이자 전환의 성격도 지닌 ‘공공성 담론’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공공성 담론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적-대중적 전선을 구성하기 위해 민주개혁운동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그 핵심적인 과제로 개혁자유주의세력의 ‘사회적 자유주의’ 세력으로의 전환을 꼽았다.

이어 “개혁자유주의 정부가 구 보수적 세력에 근접하여 보수화하든지 아니면 개혁자유주의의 정책지평을 사회민주주의적 방향으로 확장함으로써 현재의 정치경제적 문제점을 다른 지평에서 해결하도록 시도할 것인가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며 “이는 이른바 ‘386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주의’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이런 시각에서 “최근의 대연정론은 현재의 민주개혁의 위기에서 잘못된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개혁자유주의가 ‘사회적 자유주의’로 그 지평을 확장하는 과제는 시민사회의 자유주의적 사회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에게도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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