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이대로는 사회 전반에 反FTA 연대 결성될 것”

“이대로는 사회 전반에 反FTA 연대 결성될 것”  
  [한미FTA 뜯어보기 7] ‘국내협상’의 중요성

  2006-02-13 오전 11:38:30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이끌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목소리는 희미하다. 한미 FTA 협상을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는지 우리 국민에게 알리려는 최소한의 수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의 최태욱 교수(정치학)가 “우리 정부의 FTA 전략에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 방안과 국내 피해집단에 대한 보상 방안이 빠져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최 교수는 정부가 ‘국가 중심 시각’으로 미국과의 FTA 협상을 주도해가는 데에서 이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정부가 국가 차원의 손익계산에만 기초해 협상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태욱 교수는 정부가 지금과 같은 시각으로 한미 FTA를 추진하면 농어민, 노동자, 중소상공인들뿐 아니라 제조업, 서비스업 분야의 대기업들도 반발하고 나설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반(反) FTA 연대’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한미 FTA 협상을 성공적으로 진행시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일단 국내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최 교수의 주장이다. 최 교수가 보내온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FTA를 추진함에 있어 응당 고려해야 할 주안점들 중 하나는 한미 FTA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FTA 체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협상 체결시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의 ‘국가 중심 시각’
  
  그러나 정부는 이와 관련된 국내협상을 경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의 FTA 전략이 지나치게 ‘국가 중심 시각(state-oriented perspective)’으로 경도된 상태로 수립·집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은 전통적인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 이론 등에서 그러하듯 국가를 ‘합리적인 단일체적 행위자(rational and unitary actor)’로 상정하는 경우에 생긴다. 즉 이 시각에는 국제정치 혹은 국제경제의 주인공은 국가이며, 국가는 자연인과 같은 하나의 단일체로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선택·행동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모든 국제정치경제 현상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있어 특정 국가의 선택과 행동은 오직 주어진 국제체제 환경 하에서 그 국가와 다른 국가들의 국제적 관계와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개별 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사회 혹은 사회세력들의 선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 정부의 FTA 전략에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 방안과 국내 피해집단에 대한 보상책의 마련이 제대로 자리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정부가 이런 국가 중심 접근법을 편향적으로 채택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 즉 정부는, FTA는 어차피 국가 차원에서의 손익계산과 그에 기초하여 수립된 국가전략을 놓고 상대국과의 국제협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만큼 사회 차원에 대한 배려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일 FTA는 7년 지나도 타결 안돼…한미 FTA엔 고작 1년?
  
  정부가 쉽게 추진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칠레와의 FTA도 이에 대한 국내의 저항으로 인해 상당 기간 상당한 비용을 치루고서야 체결됐다. 한일 FTA의 체결도 양국의 국내 제약으로 인해 논의가 시작된 지 7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타결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아직 FTA에 대한 국내 변수의 영향력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별다른 국내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가운데, 칠레나 일본의 경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파장을 일으킬 것이 명백한 한미 FTA를 단 1년 안에 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물론 현실주의 이론이 국제정치나 국제경제 현상에 대한 상당한 설명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국가 중심 시각의 접근법도 상당 정도의 외교정책적 실효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군사안보 등과 같은 영역에 있어서 그렇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은 명백하고 중대한 한계를 안고 있다.
  
  사회문제를 국제문제로만 풀려고 해서야
  
  더욱이 사안이 대외경제정책의 영역에 속할 경우 국내 변수를 무시한 외교적 접근으로는 일반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어느 나라의 경우든 하나의 대외경제정책이 결정되는 데는 다종다양한 국내 사회세력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FTA가 바로 그러한 문제에 해당하는 대표적 이슈 영역이다.
  
  FTA와 관련된 정책 결정에는 자유무역의 확대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될 국내 이익집단과 그로 인해 이익을 얻게 될 이익집단들 모두가 매우 활발하게 참여하게 된다. 그들 모두에 있어 자유무역의 확대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세력들의 참여가 확대되고 그들의 정책적 민감성이 증대하면 결국 정부의 정책결정 권한에 대한 국내적 제약은 증대하게 된다. 정부 독단의 ‘국가’ 이익에 근거한 ‘합리적’ 선택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즉 FTA는 단지 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관련국들 모두의 사회문제에 속한다. 그렇다면 사회문제를 국제문제로 풀려는 시도가 갖는 한계는 명확해진다.
  
  이대로라면 거대한 反FTA 연대 결성될 것
  
  FTA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함에 있어 한국 정부는 국가 중심적 시각에만 매몰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국내변수의 중요성에도 눈을 떠야 한다. 다른 모든 대외경제정책 이슈가 그렇듯이 FTA는 국제정치 문제임과 동시에 국내정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소위 ‘양면게임(two-level games)’적 접근의 필요성에 주목해야 한다. FTA 정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국제변수와 국내변수의 중요성을 항상 동등하게 평가하고, 국제협상과 국내협상 양 게임 모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FTA의 상대 국가들과 국제정치 게임을 벌이는 동시에 자국 내에서 FTA에 이해관계가 있는 집단들과 또 다른 판의 국내정치 게임을 벌여야 하는 스스로의 입장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당장에 한미 FTA를 추진한다고 하면서 스스로 갖고 있는 국내협상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돌아보지 않고 있는 듯하다.
  
  한미 FTA를 자신들의 생존문제로 규정하고 있는 대부분의 농어민과 노동자들, 그리고 중소상공인들의 반발과 저항을 무엇으로 어떻게 막을 것인가.
  
  게다가 한미 FTA의 추진은 반드시 이들과 같은 전형적인 사회경제적 약자집단들에 의해서만 거부될 성격의 정책이 아니다. 상당수 제조 대기업들과 법률·교육·의료·금융·영화 등 주요 서비스 산업에서의 반발도 거셀 것이 명백하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거대한 반(反)FTA 연대가 결성될 것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아직 ‘무역조정지원 법안’도 통과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사회적 저항을 극복하고 한미 FTA를 추진해가기 위해서는, 즉 국내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에 상당한 보상 제공 능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안전망, 복지, 그리고 보상의 체계는 여전히 저급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미 FTA 체결로 인한 피해집단들을 설득하고 납득시킬 수단과 기제가 준비돼 있지 않다.
  
  한국 정부는 최근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피해 기업과 노동자들을 위한 ‘무역조정지원법’ 등과 같은 보상책 마련을 준비하는 중에 있다. 국내변수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징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고무적 현상이다.
  
  그러나 어떠한 보상책이든 그것이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시행착오와 수정·보완 기간이 필요하다.
  
  이미 1962년 ‘무역조정지원법(Trade Adjustment Act)’을 도입해 지금까지 운영해 온 미국도 여전히 재정 마련의 어려움과 운영의 합리성·투명성 등에 대한 문제제기 등의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제야 겨우 유사 법안인 ‘무역조정지원 법안’ 하나를 국회에 상정해 놓고 있는 우리 정부가 앞으로 1년 내에 미국과의 FTA 협상을 타결하겠다고 하는 것은 매우 성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무역조정지원법의 한국적 실효성조차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정부는 미국과의 FTA 체결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우선 국내적으로 충분한 ‘FTA의 사전조치들(pre-FTA measures)’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외교부와 농림부가 부딪치면 어떻게 조정?
  
  한편 정부가 국가 중심 시각에서 탈피해 국내변수를 중시하는 양면게임적 접근방법을 택하겠다고 할지라도 그 수행능력상 결함이 있을 경우 FTA 전략의 실질적 개선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부의 조정능력 문제다.
  
  FTA와 관련된 국내협상은 산업 구조조정과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지원, 피해집단들에 대한 보상 제공 문제 등을 중심으로 정부와 사회세력들 사이에 벌어진다.
  
  이 협상에는 실로 다양한 성격의 이익집단들이 갖가지 다른 방법과 경로를 통해 무수히 참여하게 마련인 바, 정부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이 다양한 이해관계들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조정능력이다.
  
  그런데 이 조정능력은 당연히 소수의 특정 부처에 기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조정능력은 개별 행정부처의 이해관계를 초월할 수 있는 범정부적인 조율과 협조를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상 문제의 경우 농림부가 농민의 손실을, 노동부가 근로자의 위기상황을, 그리고 산자부가 중소기업의 피해를 강조한다고 할 때 정부가 한정된 재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조정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는 보상정책의 부재 못지않은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정부의 조정능력 확보는 사실 대외협상의 경우에도 중요하다. 특히 FTA 체결시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문제에 대해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거대 경제권에 대한 적극적 공세를 강조하는 외교통상부와 국내 피해집단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보다 소극적이며 신중한 접근을 선호하는 산자부나 농림부 간의 이견이 심각하게 맞설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보상 문제에서와 같은 정부의 조정능력이 필요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러한 조정능력의 수행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현재로선 통상교섭본부다. 정부는 2004년 6월 통상교섭본부장이 위원장이 되는 ‘FTA 추진위원회’를 설치해 이곳에 FTA 관련 업무를 주도할 수 있는 포괄적 권한을 위임했다. 그러나 이 추진위원회나 통상교섭본부에 상기한 조정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조성돼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우선 통상교섭본부장의 행정부 내 위치가 애매하다는 것이 문제다. 장관급이라고는 하지만 통상교섭본부가 속해 있는 외교통상부의 장관이 따로 있는 한 통상교섭본부장이 외통부 내에서 수장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외통부 바깥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실질적인 서열이 더 높은 각 부처의 손위 장관들을 대상으로 조정능력을 발휘하기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해결방안은 세 가지일 것이다. 통상교섭본부를 독립시켜 그 장의 지위를 충분히 격상시키든가, 혹은 구조적으로 조정능력의 확보가 가능한 기존의 고위 기구로 FTA 조정 업무를 이관시키는 것, 또는 새로운 고위 기구를 창설하여 그 업무를 맡기는 것 등이다. 방안의 선택은 자유로울 수 있겠으나, 시기의 선택은 그러할 수 없는 듯하다.
  
  (본고의 상당 부분은 필자가 연재 중인 미래전략연구원 칼럼 ‘한국 FTA 정책의 정치경제’에서 발췌된 것입니다.)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