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미국 말뚝이 되는 한미FTA

전략적 유연성, FTA, 동아시아의 재구조화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32〉미국의 ‘말뚝’ 되는 한국

  
  FTA의 지구정치경제학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사회과학은 국내와 국제, 정치와 경제를 각각 독립된 영역으로 삼는 연구 방법을 취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두 개의 이분법에 익숙해진 지식층들은 현실의 사안들을 이 두 개의 이분법으로 만들어지는 2×2의 표의 네 칸 중 어느 하나로 분류하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전략적 유연성은 국제 정치, FTA는 국제 경제 사안, 미국 문화의 범람은 국내 정치 사회… 등등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에 관한 기사들은 신문에서도 각각 다른 면에서 다뤄지며, 그 사안을 논하는 이들도 자기에게 할애된 그 네 칸의 하나의 한도에서만 사안을 논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클로버 잎처럼 그렇게 네 쪽으로 나눠져 있지 않다. 정치가도 군사 전략가도 국제적 사업가도 사회 운동가도 현실 세계를 움직이고, 또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 그 누구도 자신의 활동 영역이 이 네 칸 중 하나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 세계의 변화와 운동의 진정한 방향과 의미를 가장 늦게 파악하는 이들은 네 쪽으로 갈라진 안경을 쓰고 있는 ‘식자들’일 경우가 많다.
  
  특히 큰 규모에서의 사회적 재구조화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 이러한 두 개의 이분법은 사태의 종합적인 판단에 있어서 치명적인 장애를 낳을 때가 많다. 중국의 성장, 일본의 개헌, 북-미 대립, 유전, 교역로 등을 둘러싼 각축전 등을 거치며 동아시아는 바야흐로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사회적인 모든 측면에 걸친 급격한 재구조화를 겪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재구조화의 한가운데에는 이것을 기회로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하려는, 냉전 시대부터의 지정학적 세력들이 있다.
  
  한미FTA는 아직까지 철저하게 ‘경제적인’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정부는 FTA가 체결되면 GDP 상승률이 0.42%니 1.99%니 하는 소숫점 두 자리의 숫자를 들이밀고 있으며, 보수 언론은 영화인들과 음악인들을 ‘밥그릇 싸움’이라는 제목 아래에 싸움 붙이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시종일관 ‘돈계산’의 문제로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아시아의 전체적 상황, 그리고 조지 부시 미국 정권 이후의 미국의 무역 정책이 어떤 성격 변화를 겪게 되었는가 등에 대해 고찰해본다면 크게 재고되어야 할 사고방식이다. 지금의 한미FTA는 동아시아의 재구조화를 놓고 벌이는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의 하나로서 볼 필요가 있고, 그런 면에서 최근에 불거진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와 하나의 틀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시 정권의 무역 정책: FTA 와 ‘레이저 유도 폭탄’
  
  흔히 오해되는 바와 달리, 미국은 보호무역주의의 역사적 전통이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다. 알렉산더 해밀튼과 같은 공화주의자에서부터 인민주의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에 이르기까지, 자유무역에 의한 국내적인 경제적 이해관계에 극도로 민감한 세력들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이 모여 있는 의회가 무역 협정에 관한 전권을 쥐도록 법제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의회, 특히 하원에 창궐한 보호무역주의의 결과 1930년의 스무트-홀리 법(Smoot-Hawley Act)은 대공황으로 가뜩이나 불안정하던 세계 경제를 보호무역주의로 몰아가는 큰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2차대전 이후 이 실수를 거울로 하여 미국 정부는 의회로부터 무역 협상의 권한을 이양받는, 소위 ‘빠른 협상 권한(fast-track authority)’을 종종 행사하게 된다. 클린턴 대통령도 이러한 권한을 최대한 이용해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와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을 1994년 이전에 현실화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WTO 체제는 가입국 모두의 의사가 반영되는 다자간 협정의 틀을 띠고 있는 데에다 각종 사회적 보호장치의 조항들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고, 미국 내의 보호무역주의 세력들은 이러한 WTO의 틀이 미국의 국익에 장애가 된다고 여겨 크게 반발하기 시작해 클린턴 정부는 94년 이후 그 전권 이양(빠른 협상 권한)을 갱신하는 데에 실패하게 된다. 이렇게 미국 내로부터 반발에 부딪힌 WTO 체제를 더욱 더 위기로 몰아넣었던 것은 99년 말 반세계화 시위가 터졌던 시애틀 사태, 그리고 우리 농민 이경해 씨의 자살 등의 사건이 터졌던 2003년 칸쿤 사태와 같은 아래로부터의 전세계적 저항이었다. 특히 칸쿤 사태는 WTO 체제가 사실상 마비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렇게 클린턴 시절에 구상된 다자주의적 자유무역의 틀이 분명한 답보 상태에 빠진 2000년대 초, 부시 정권은 새로운 무역 전략과 질서를 제시해 2002년 미국 의회로부터 다시 ‘무역 증진 권한(TPA: Trade Promotion Authority)’을 넘겨받는 데에 성공한다. 하원에서 215표 대 212표라는 박빙의 대결이 보여주는 것처럼, 거센 반대를 무마할 수 있었던 것은 9.11테러 이후라는 맥락에서 부시 정권이 무역 정책을 군사 안보 정책과 긴밀히 결합된 하나로 활용하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던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2002년 무역법’의 2101절(section)에서 “오늘날 무역 협정은 냉전시대의 안보 조약과 동일한 목적을 수행한다. 국제 무역에서 미국의 지도력은 세계적으로 열린 시장,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를 조장할 것이다”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이러한 안보 전략의 일환으로서의 무역 정책의 성격은 백악관에서 나온 2002년 미국 안보 전략 문서(The National Strategy of United States of America)의 6장에서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부시 정권의 무역 정책의 새로운 성격은 무엇보다도 2001년부터 얼마 전까지 미국 통상대표를 맡았고 지금은 국무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로버트 졸릭(Robert Zoellick)이라는 인물의 면모와 행각에서 잘 드러난다. 이 사람은 네오콘과 같은 ‘이상주의자’라기 보다는 미국의 국익과 미국 대자본의 이익(그는 엔론, 골드만 삭스, 얼라이언스 캐피탈 등의 기업과 관련을 맺은 바 있다)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냉철하게 지향하는 전통적 현실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98년 현재의 네오콘 집단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새세기 미국 기획(PNAC: Project for New American Century)’에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네오콘 세력과 합류하게 된다. 그 뒤 2000년 〈포린 어페어즈〉에 발표한 글 ’2000년 대선과 공화당 외교 정책(Campaign 2000: A Republican Foreign Policy)’에서 클린턴 시대의 무역 정책을 “너무 경제적”이라고 비판하고 미국의 우월한 군사력과 무역 정책을 결합시킬 것을 주장한다.
  
  결정적인 시점은 역시 9.11이었다. 원래 자유무역의 이점을 신봉하는 이념가라기보다 자유무역을 미국과 미국 자본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이해하는 중상주의자에 가까운 그는, 9.11 직후 미국의 국제경제연구소(IIE: Institute of International Economics)에서 행한 연설에서 무역 전쟁을 명시적으로 ‘대테러 전쟁’의 일환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2003년 5월 같은 연구소에서 행해진 연설의 “미국은 (자유무역을 통해) 대외 정책과 군사 안보 정책에의 협력을 원한다”라든가 “미국의 무역 정책은 우리의 폭넓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 안보적 정책과 연결되어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지적 영역의 통합에 혼란을 느낄지 모르겠으나, 이는 1945년 이후의 전후 재건(마샬 플랜을 암시)과 같은 노선이다”라는 언급에서 일관되게 확인된다.
  
  그가 개발한 새로운 전략은 바로 ‘경쟁적 무역 자유화(competition for liberalization)’였다. 미국은 최고의 군사력과 최대의 시장을 가진 명실상부한 최고 강국이다. 따라서 이러한 나라와의 자유무역의 체결은 당사국에게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 포괄적인 ‘국익’의 증진을 가져오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자유무역을 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can-do countries)과 고집스레 거부하는 나라들(won’t-do countries)로 먼저 나눈다(그는 부시보다 먼저 “악의 국가들(evil state)”이라는 수사를 개발한 이이기도 하다).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뭉쳐서 ‘제2의 종속이론’의 공세를 펼치는 다자주의적 자유무역 협상 대신, 이 가능성 있는 나라들을 따로따로 만나 미국과 한 편이 될 수 있는 그 ‘특권’을 미끼로 하는 양자간 협상을 내걸어서 결국 그 나라들 사이에 미국과의 자유무역 협정에 경쟁을 붙인다는, 그래서 마침내 ‘자유화 국가 연합(coalition of liberalizers)’을 일궈낸다는 전략이다.
  
  이렇게 오만한 ‘자유무역안’이 WTO의 그것보다 훨씬 더 미국 자본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좀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유무역’이라는 것이 전 세계 시장의 공생공영을 내건 스미스나 리카도의 고전적 자유무역의 이상과는 전혀 다른, 사실상 미국의 ‘특권적’ 동맹국들을 줄세우는 지정학 전략이라는 점, 그래서 전세계 국가들을 미국 편과 반대편으로 줄긋기하는 부시 정권의 대외 정책과 정확히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의 간택을 받아 이 FTA의 물망에 오른 남미의 몇 나라들은 폭격당해 무너진 이라크처럼 미국의 동맹 세력으로서의 국가적 사회적 재구조화를 겪게 된다. 반세계화 운동가 아지즈 츄드리(Aziz Choudry)가 불렀듯이, FTA는 이제 “레이저 유도 폭탄(laser guided bomb)”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지정학적 재구조화와 FTA: 요르단과 “MEFTA”의 경우
  
  지난 2000년 미국과 FTA를 체결한 요르단의 경우와 그 후 중동 지역에 불고 있는 FTA의 바람의 성격을 살펴본다면, 이렇게 지정학적 재구조화의 전략으로서의 FTA의 성격이 좀 더 분명히 드러난다. 먼저 1996년 네오콘 집단이 작성했던 저 전설적인 전략 보고서 ‘깨끗한 단절(A Clean Break: New Strategy for Securing the Realm)’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이 문서는 클린턴 시절의 평화 배당금 지향의 중동 정책 대신 이라크와 시리아에 대한 적극적인 전쟁 도발을 통해 중동 지역 전체를 확실하게 미국의 영향 아래로 재구조화하는 전략으로 전환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주지하듯 9.11 훨씬 이전에 작성된 이 문서의 전략은 2002년 미국 안보 전략 문서에 크게 반영되었고, 그 뒤 이미 실현되었거나(이라크) 실현을 기다리고 있는(시리아) 상황이다.
  
  그런데 이 문서에서 강하게 주장되고 있는 전략은 바로 레바논과 시리아 사이의 요르단 왕국을 FTA를 포함한 미국과의 경제적 연결 강화를 통해 군사적 동맹국으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미국 재계의 영향을 통해 요르단에의 투자를 증진시켜 그 내부 경제를 이라크에의 의존에서 벗어나도록 재구조화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다음 해인 1997년 미국은 요르단에 대한 경제 군사원조를 2억 달러 수준으로 올리고, 1999~2000년의 기간에는 군사 원조를 다시 2억 달러, 경제 원조를 1억 달러 늘이게 된다. 또 2003년에는 이미 지급된 3억 달러의 원조에 더하여 이라크 전쟁 피해의 복구라는 명분으로 부시 정부가 7억 달러의 특별 원조를 행하게 된다. 또 97년에는 미국과 요르단 사이의 양자간 투자 협정까지 체결되어 자금의 자유로운 유통이 이뤄지게 된다.
  
  이러한 자금 유입과 더불어, 미국은 요르단 경제와의 실물적 통합도 추진한다. 먼저 요르단과 이스라엘 일부에 산업적 요건 충족 지역(QIZ: Qualified Industrial Zone) – 이 지역에서 생산된 재화는 관세가 붙지 않은 채 미국으로 수출될 수 있다 – 을 창설하도록 미국 의회는 1996년 결정한다. 2003년까지 요르단 내에 이러한 성격으로 지정된 지역은 12군데에 이른다고 한다. 마침내 2000년에는 향후 10년 안에 모든 관세와 장벽을 철폐해 재화와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표로 하는 미국-요르단 FTA가 체결되면서, 요르단은 이스라엘, 캐나다, 멕시코에 이어 네 번째로 미국과 FTA를 체결하는 나라가 된다.
  
  이러한 미국-요르단의 경제적 통합이 군사 안보 외교 전략 상의 통합으로도 긴밀히 연결되었던 것은 물론이며, 이는 이라크 전쟁을 필두로 한 미국의 중동 재편 과정에서 중대한 기능을 한다. 나아가 아랍 국가들을 미국의 영향 하에 두고자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중동자유무역지대(MEFTA: Middle East Free Trade Area)’의 중요한 실험적 국가이자 상징이기도 했다. 사담 후세인이 패배한 직후인 2003년 6월 ‘지구적 통상과 중동 지역’이라는 제목의 세계경제포럼(WEF)이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열렸던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이 자리에 나온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과 졸릭 무역대표는 요르단을 하나의 모델로 내세우면서 중동 지역의 국가들에게 MEFTA의 창설을 주창하였다. 물론 이 MEFTA의 성격이 미국적 가치에 동의하는 친미 동맹의 성격을 띠는, 즉 ‘자유경제와 법치주의’를 신봉하는 국가들로 근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 또 이러한 무역 자유화를 통해 이 지역에 ‘평화와 민주화 과정’을 가져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지역에는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바레인 등이 미국과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한 바 있고, 바로 얼마전 1월 말 경 오만이 새로 이 대열에 합류했고 아랍 에미리트(UAE)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을 중심축으로 하여 이렇게 쌓여가는 자유무역협정국의 네트워크를 합쳐서 미국은 2013년까지 MEFTA의 창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말뚝’ 국가 대한민국: FTA, 전략적 유연성, 동아시아 지정학
  
  이제 중동과 함께 미국의 대 유라시아 전략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동아시아의 맥락을 살필 필요가 있다. 2002년 10월 북측의 핵 보유 발언으로 시작된 위기 국면은 작년의 9.19공동 성명으로 한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를 낳은 6자회담이라는 틀은 애초에 동아시아 지역에 자국의 패권을 통해 재구조화를 주도할 다자적인 틀을 기대했던 미국의 의도와는 크게 빗나간 것으로 판명됐다. 결국 미국으로서는 이 지역의 재구조화에 개입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다른 방책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올해 초부터 불거져 나온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사안과 이 FTA라는 사안의 동질성에 착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냉전 시대에 구축된 한미일 동맹이라는 성채(城砦)를 다시 확고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남한 지역을 다시 그 첨병의 성격으로서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온 전략적 유연성은 남한을 사실상의 미국의 전방위 군사 기지로 전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FTA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희망하는 20여 개국 중 한국을 파트너로 꼽았다는 건 동북아에서 지주국가(stake)로서의 역할 등을 고려한 것 같다” “무엇보다 한미동맹의 공고화라는 상징적 효과가 크다.”(중앙일보, 2월 3일, “경제 외교 안보 아우른 한미 동맹 업그레이드”)라고 하는 어느 외교 당국자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FTA는 한국으로 하여금 미국이 동아시아를 정치적·경제적·군사적으로 경략하는 데에 필요한 전진기지, 즉 ‘말뚝(stake)’ 국가의 역할을 맡길 것이라는 가능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남북 화해나 한중일의 경제 협력, 특히 ‘아세안(ASEAN)+3′와 같은 계기로 동아시아의 통합이 강화될 경우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 동안(東岸)에 적절한 발판을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한복판에 해당하는 대한민국을 ‘말뚝’으로 삼아 대만과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선을 복구하여 중국과 대륙 세력을 고립시키고 해양 세력을 뭉치게 하는 냉전 시대의 지정학적 구도를 일단 재생시키고 그것을 발판으로 다시 대륙 쪽으로 경략해 들어가는 전략을 취하려 할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롭게 주시되는 것은 한미FTA의 반대편 날개가 되는 한-ASEAN FTA의 가능성이다. 정부는 이미 올해 안에 ASEAN과의 FTA를 체결한다는 입장이며, 그 경우 그야말로 “한국은 풍부한 노동력과 광대한 시장을 가진 아시아와, 첨단기술과 선진 경영 시스템을 갖춘 미국을 연결하는 동북아 FTA 허브의 자리도 넘볼 수 있게 될 것”이다(조선일보 1월 28일자 사설, “한·미 FTA 협상에 대통령 리더십 발휘해야”). 그리고 국내의 경제 연구소 등은 한미FTA의 보완책으로서 우리보다 기술 수준이 낮은 한-ASEAN FTA가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렇게 한국을 ‘말뚝’으로 삼아 동남아시아와 미국을 잇는 선으로서 FTA가 동아시아에 본격화 될 경우,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함께 이 지역의 재구조화를 미국이 군사적 경제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이 될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말뚝’ 국가로서의 한국의 위치를 기쁘게 반길 이도 있을 것이고 또 달갑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토론은 열려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돈 계산’의 문제로만 따지고 드는 것만큼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일단 남한이 미국의 ‘말뚝’ 국가가 되면 한반도의 향후 몇 십년간의 삶의 모습이 정말로 총체적으로 방향지워질 수도 있는 국면이기 때문이다.
  
  이 ‘말뚝(stake)’이라는 표현이 자꾸 기억에 남는다. 영어 단어가 병기된 것으로 보아 필시 미국 측에서 쓴 표현을 외교부 관리가 옮긴 것일 터이다. 옛날 마녀 사냥의 불행한 희생자들이 바로 이 말뚝에 묶인 채 화형을 당했던 것처럼(burn at the stake) 우리도 동아시아 지정학의 포화가 집중되는 지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또 우리 탈춤의 ‘말뚝이’처럼 힘 있는 세력에 당차게 맞서며 평화와 화해를 정착시키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 참으로 기로이다.
  
  *사족
  
  황해도에서 내려오는 강령 탈춤에는 두 명의 말뚝이가 나온다고 한다. 똑같은 복색과 가면을 쓴 두 말뚝이는 서로 마주보며 어리둥절하다가 용감성과 우월성을 뽐내며 다투지만 마침내 화해하여 기쁨이 충만한 춤으로 끝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춤사위에는 부당한 권력자들에 대한 공격의 익살이 가득하다고 한다. 남과 북이 두 명의 말뚝이가 되어 동아시아에 평화와 화해를 가져올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