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를 ‘포지티브리스트’로 보완하겠다는 거짓말!
노동보건의료단체, 한미FTA의약품 별도 협상 중단 촉구 기자회견 개최
라은영 기자 hallola@jinbo.net / 2006년11월12일 16시38분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의약품 의료기기 작업반의 별도 협상이 11월 12~13일 양일간 하얏트호텔에서 진행된다.
이에 노동, 보건의료단체들은 12일 2시 협상 시작에 앞서 오후 1시 하얏트 호텔 입구에서 ‘협상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다. 노동, 보건의료단체들은 “약제비절감방안을 무력화 시키고 약값 폭등을 부르는 한미FTA 의약품 별도 협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은 하얏트 호텔 앞에서 진행됐다.
왜 하필 지금 별도협상을 진행하는가
지난 10월 제주에서 진행된 한미FTA 4차 협상을 종료하며 양국 협상단은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별도 협상 개최를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쟁점이 되고 있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현재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의 심의과정을 거치고 있다. 규개위는 9일 약제비적정화 방안을 논의하였으나 의약품 별도협상 일정이 잡히자 16일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재논의하기로 했다.
보건의료단체들은 “이는 명백히 한미 양국간 합의사항을 약제비적정화 방안에 반영하려한다는 것”으로 해석하며, 이번 별도 협상은 “규제개혁위원회의 결정이라는 시점을 앞두고 한미 양국정부가 한국의 대표적 의료제도인 약가제도를 결정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의미 지었다.
김경자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은 “보건의료산업 노조가 ‘돈 보다는 생명’이라는 구호로 싸워 왔던 과정을 모두 無로 돌리는 하얏트에서 벌어지는 별도 협상에 분노를 느낀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어 “지금이라도 당장 한미FTA를 중단해야 함”을 강변하며 “대통령은 국민들의 건강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국익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밝히라”고 추궁했다.
기자회견 사회자 멘트 “세계보건기구는 화이자에서 출시하는 HIV/AIDS 치료제를 먹지 못해 한 해 300만 명의 환자들이 죽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300만 명이란 숫자에 감이 안오는가? 이 숫자는 한국의 초등학생 1학년부터 6학년을 합친 전체 숫자다. 매년 치료제가 있지만 돈이 없어서 전국의 초등학생 1학년부터 6학년 학생들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권미란 HIV/AIDS 나누리+ 활동가는 “정부와 제약회사는 의약품 특허가 새 약에 대한 보상제도로 알고 있지만, 이미 이런 기능은 상실했고 오직 제약회사의 수익 보장을 위한 독점 연장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다국적 제약회사는 혁신적 신약이라 주장하며 특허를 재신청하거나 연장하지만, 실제 약간의 성분 변화나 색깔 변화 만으로도 특허를 신청하고 허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권미란 활동가는 한 예로 우울증 치료제로 잘 알려진 ‘푸로작’ 이라는 약을 예로 들었다. 이 약은 용량과 성분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세라팸’이란 약으로 이름을 바꾸고, 생리전증후군 치료제로 바뀌어 특허 신청이 됐다. 제약회사에게 ‘특허’란 그들의 지속적인 수입 보장을 위한 제도일 뿐이다. 반면 환자들에게는 ‘돈’에 의해 생명을 걸 수밖에 없는 제도인 셈이다.
값비싼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절박함
양현정 환우회 공동대표는 “이 싸움에 진다면 나를 포함해 내 가족들에겐 죽음 뿐”임을 강조하며, “치료제가 뻔히 있음에도 돈이 없어 죽어야 한다는 것은 차라리 단기간 심장이 멈춰 죽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며 울먹이며 싸움에 나서야 함을 호소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의 말바꾸기를 지적하며 “6개월 동안 3번 말을 바꿔 왔음에도 이제는 거짓말 까지 하고 있다”며 각성을 촉구했다.
유시민 장관은 한미FTA 협상 초기, ‘한미FTA에서 의료 정책이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협상이 약제비적정화 방안을 둘러싸고 난항을 격게 되자 ’FTA는 하되 손해보면 국민들에게 알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국정 감사 기간에는 ’한미FTA 협상은 미국 요구대로 하면 1조 손해, 한국이 방어해 낸다면 3,500억에서 6천 억원의 손해가 예상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한미FTA도 협상이기 때문에 미국측의 요구를 안 받을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유시민 장관은 한미FTA 의 손해를 약제비적정화 방안(포지티브리스트)로 채울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또한 거짓말이다”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미국 협상단의 요구는 포지티브 리스트를 무력화하는 내용들이 다수 포진돼 있기 때문이다.
들여 보내 주겠다던 대표단도 중간에서 막혀 오히려 기자회견 참가자들과 분리, 고립된 상황이 되자,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강력히 항의 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준비해온 다양한 피켓들이 눈에 띈다.
경찰이 막아세운 하얏트 호텔 입구. 이날 2시 부터 별도 협상이 시작됐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기자회견 참가자들.
현재 미 협상단이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내용은 △현재 원래 등재된 의약품의 보호 △합의되지 않은 의약품의 장관 직권등재 및 직권 약가결정 조치 불가 △제도상의 약가결정과정과 완전히 독립적인 약가결정 위원회의 설치 또는 이의 제기기구 설치 △모든 특허의약품에 대한 혁신적 신약 인정 및 A7 조정평균가 적용 등 16개 사항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주장하고 있는 ‘원래 등재된 의약품의 보호’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기존 약제에 대한 선별등재방식적용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포지티브리스트는 기존 보험적용약품 22,000개를 5,000개 정도로 줄이는 것이 제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정부가 주장하는 한국정부의 직권 등재방식의 권한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약가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에는 약을 철수시키거나 건강보험적용을 받지 않으면서 약가재결정을 요구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글리벡 등이 약품 철수를 했던 바 있고, 돈이 있어도 약을 구할 수 없었던 전례가 있었다.
나아가 미국이 요구하는 독립적 별도위원회 또는 독립적 이의제기기구 설치가 합의 되면 제약회사가 참여하는 별도 위원회나 기구에서 원심에서 결정된 약가나 보험적용범위까지 번복할 수 있는 제도가 된다. 보험등재여부 결정, 경제성평가와 약가협상을 모두 마친 의약품에 대한 원심까지 마련이 된다면 정부의 약가결정 권한은 무력화된다.
결국 미국 협상단이 ‘약제비적정화 방안(포지티브리스트)’ 연내 시행에 동의한다고 하지만 사실상은 무력화 하는 내용들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또한 미국 협상단은 모든 특허의약품에 대한 혁신적 신약 인정 및 선진7개국 평균약가(A7조정평균가)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신약의 가격은 당장 2배 인상이 불가피하다.
아울러 ‘선진7개국 평균약가’제도 도입은 미국의 압력으로 1999년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한덕수 현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장이 체결했던 굴욕적인 비밀협상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글리벡이나 이레사와 같이 한 달에 수 백 만원이 드는 약이 생겨났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를 통해 미국 시장 진출해 잘 살거라 하지만 의약품 가격 상승,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사회 필수 공공재들이 시장에서 팔려 나갈 상황에서 국민의 이익을 운운하는 뻔뻔한 거짓말이 계속 되고 있다”며 규탄했다.
이날 기자회견 단체들은 “정부는 이제 거짓말을 그만두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약가폭등과 의료비폭등을 초래할 뿐인 한미 FTA 의약품 협상, 그리고 한미 FTA 협상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항의서한을 한국 협상단에게 전달키로 했다.
항의서한 전달하겠다는 방송이 나오자, 갑자기 하얏트 호텔 입구를 지키던 경찰들이 2열로 입구 정면을 막아세워 대표단의 이동을 몸으로 막았다. 과정에서 항의가 오고갔으나 결국 3명의 대표자들은 하얏트 호텔로 이동해 들어갔다.
그러나 3명의 대표자가 하얏트 호텔에 갔을 때 이들을 기다리던 사람은 정부 관계자도 아닌 호텔 안내 프론트의 안내원 이었다. 대표단은 강력하게 항의하며 “미국에서도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에게 직접 항의서한도 전달하는데 무리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보건복지부 협상단장도 아니고 관련 공무원에게 전달하겠다 하는데도 사람이 없다는게 말이 되냐”고 항의 했다. 결국 노동, 보건의료단체들의 항의서한은 호텔에 맡겨졌을 뿐 담당 공무원 누구도 나와 보지 않았다.
대표단으로 하얏트 호텔에 들어갔던 임종철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고문은 “이렇게 한심하고 어이없는 상황은 처름”이라고 한탄하며 “관련 단체들이 호텔 안까지 들어가서 항의서한을 전달한다고 하는데 협상 단장은 고사하고 말단 공무원 조차 항의서한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게 말이 되는가”를 반문했다. 임종철 고문은 “오늘 태도만 봐도 정부가 국민들의 요구를 듣지 않겠다는 것이 분명하다”며 “정부가 비겁하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항의서한을 앞세운 대표단의 모습. 경찰에 의해 출입이 막힌 상황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단체들은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을위한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공공의약센터 기독청년의료인회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의료연대노조 정보공유연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사회보험노동조합 진보네트워크 HIV/AIDS인권연대나누리+ 한미FTA저지보건의료학생모임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환자권리를위한환우회연합모임( 한국백혈병환우회 GIST환우회 심장암환우회 뇌종양환우회 강직성척추염협회) 참여연대 등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