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밖 절대빈곤층 수백만명…예산은 국회서 발목
[한겨레 2006-12-18 09:42]
[한겨레] 병을 안고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빈곤지역 환자 가운데 보건소 간호사의 방문을 받았다면 운이 좋은 경우다. 의료 지원을 기다리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에게 여전히 정부의 손길이 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현재 무료로 의료지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권자는 모두 176만여명으로, 절대빈곤 인구가 272만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도 100만명 가량의 절대빈곤층이 의료비 부담을 개인적으로 떠안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정부의 보수적인 통계로 계산했을 때 얘기다. 이규식 연세대 교수(보건행정)가 지난 2004년 내놓은 논문을 보면, 340만명 가량의 절대빈곤 인구가 무상 의료지원을 못 받고 있다.
방문간호, 빈곤지역일수록 더 열악=양지마을이 있는 서울 노원구의 보건소 상황을 들여다보면, 의료 보호의 사각지대가 왜 형성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노원구 보건소에는 현재 6명의 방문 간호사가 1인당 대략 300여 빈곤 가구를 맡고 있다. 양지마을이 있는 상계4동을 담당하는 김용덕 간호사는 상계2동과 중계1·4동, 중계본동 등까지 혼자 도맡아야 한다. 그나마 중계4동 임대아파트에 밀집한 200여 가구를 방문하느라, 다른 지역은 크게 신경쓸 겨를이 없다. 상계4동에서는 고작 3가구을 정기적으로 찾아갈 수 있을 뿐이다.
자치단체별로 불균형도 심하다. 방문 간호사 수와 기초생활수급권자 수를 비교하면, 노원구는 방문 간호사 1인당 수급권자 3420여명이 돌아가는 반면 서울 서초구는 방문 간호사 1인당 수급권자 197명만 돌아간다.
방문간호 확대 국회가 막아=보건복지부는 내년 전국적으로 2000명의 방문 간호사를 추가로 파견해 방문보건 서비스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노원구에서도 8명의 간호사가 신규 채용된다. 그렇지만 여기엔 두가지 장벽이 있다.
우선 노원구에서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절반씩 비용을 부담하는데, 8명 간호사의 인건비 등을 포함한 6억여원의 분담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의욕을 ‘가난한 지방자치단체’가 따라가지 못하는 단적인 예다.
지자체에서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한다 해도 이 사업이 실행된다는 보장이 없다. 한나라당이 내년 예산에서 복지부문 예산을 대거 삭감하면서 방문보건 서비스 개선안 자체가 백지화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구멍 뚫리거나 겹치거나=빈약한 공공의료 서비스라도 그나마 효율적으로 움직이면 다행인데,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지역에서 방문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나 기관 사이에 협업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노원구만 놓고 보면, 보건소 외에도 세군데 자활후견기관이 기초생활수급권자 자활사업의 일환으로 방문간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서로 손발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예지만, 중계동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ㅇ아무개(83)씨의 경우 세 기관의 간호서비스가 한꺼번에 몰린 적이 있다. 공공의료의 그물망이 한편에선 구멍이 뚫린 반면 다른 한편에선 불필요하게 겹치고 있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의 한 간부는 “보건 서비스 전달 체계에 정부가 소홀히 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인재 한신대 교수(재활학과)는 “시스템이 미진하다보니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정보가 빠른 이들은 많은 혜택을 받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은 혜택으로부터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며 “일단 보건소에 대한 지원을 늘려 지역 공공의료 단체와 기구들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허브’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차상위계층은 고스란히 자기 부담=의료 서비스의 26.5%는 비급여 서비스로 묶여 있어, 기초생활수급권자라도 결국 얇은 지갑을 열어야 한다. 또 무료 의료지원을 받는 수급권자들보다 소득이 조금 많은 차상위계층은 의료비 부담을 고스란히 지고 있다. 노원구 지역보건과 박성숙 전문의는 “차상위계층은 소득은 수급권자들과 큰 차이는 없지만 의료비 부담은 거의 고스란히 지고 있기 때문에, 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