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맬서스의 유령 / 신영전
드디어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기세가 자못 살기등등하다. 서민들을 괴롭히는 이른바 ‘부동산 오적’을 향해서일까? 아니다. 만만한 가난한 이들을 향해서다. 보건복지부는 빈곤층이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1000~2000원을 내게 하고, 이용할 수 있는 병의원도 제한하며, 별도의 플라스틱카드를 만들어 관리하겠다고 한다. 또한 빈곤층 노인들의 애용품인 파스를 혜택에서 제외하겠다는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공고했다.
낭비는 줄여야 한다. 낭비를 줄이려면 비용 발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지급방식과 전달체계를 바꾸어야 하는데 그것은 안 하고 딴 짓이다. 더욱이 이번 정부안은 낭비도 못 줄이면서 가난한 이들만 괴롭히는 정책이다.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주어야 하는 이들이 진료비로 인해 생계비가 모자라면 어차피 정부는 이를 다시 보상해주어야 한다. 이들 정책을 강행하더라도 ‘시장’은 더욱 약삭빠르게 ‘본인부담금 면제’로 정책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정부가 강행하겠다는 건강생활유지비 정책은 빈곤층에게 얼마의 돈을 지급하고 남는 돈을 가지라는 것인데, 이는 빈곤층이 ‘아파도 참고 병원에 안 가야’ 성공하는 정책이다. 이번 정책으로 인해 진료비가 일부 줄어든다면 그것은 낭비가 줄어서가 아니라 아픈 이들이 돈 때문에 의료 이용을 못해서다. 또한 무엇보다 정책의 내용이 가난한 이들에겐 모욕적이다. 정책에 품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 정책은 참으로 저급한 정책이다.
이번 정책은 ‘빈곤층의 혜택을 일반국민과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지난 30년간의 정책목표를 바꾸는 일이다. 빈곤층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우려해 건강보험증과 동일한 모양의 의료급여증을 만들어주던 ‘따뜻한 정책’을 포기하는 일이다. 또한, 오랜 가난이 남긴 관절염의 통증을 잠시라도 달래보려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서 그 몇 장의 파스마저 빼앗으려는 ‘나쁜 정책’으로 돌아가려는 일이다.
이런 큰 정책 전환 뒤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있다. 그는 최근 의료급여 관련 대국민 보고서에서, 일반국민과 달리 가난한 이들에게 혜택의 일부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저는 이것이 부당한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하였다. 관련 회의석상에서는 “빈곤층에게 동일한 혜택을 주는 것은 죄악”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표현이 경제부처 장관도 아닌 보건복지부 수장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삶에 지친 가난한 이들은 더욱 슬프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대중의 빈곤은 신의 섭리이며, 자비심은 재앙을 부른다”는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의 목소리를 닮아 있다. 당시 맬서스는 빈곤층을 황폐화시키는 질병의 퇴치에 반대했다. 그것이 상류층을 살릴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어려워지면 어김없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차별의 ‘미화’로 쉽게 진화한다. 맬서스가 죽은 직후인 1845년 아일랜드 기근 때가 그러했고, 1930년대 독일이 그러했다. ‘복지’라는 말이 낙인이 되어버린 현재의 미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오늘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수장의 ‘선언’과 그 선언에 박수 치는 이들에게 가지는 우려가 바로 이것이다.
이 겨울, 양극화의 한파를 몰고 다니는 것은 국경을 넘나드는 대규모 투기성 자본만이 아니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 ‘맬서스의 유령’이 다시 배회하기 시작했다. 우연일까? 유 장관은 자신의 책에서 맬서스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계급적 편향성은 천재의 눈을 흐리게 한다” 그리고 “부자들은 언제나 맬서스를 좋아한다.”
신영전/한양의대 예방의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