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자연과 동물에 사죄 (강광석 / 전농 강진군 농민회 정책실장)

[낮은 목소리로] 자연과 동물에 사죄

경향신문 2007년 01월 05일 18:07:52

〈강광석/ 전농 강진군농민회 정책실장〉

자연의 모든 동식물은 먹는 것의 성품을 닮았습니다. 식물은 착하죠. 자라면서 경쟁은 하지만 서로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태양과 물은 모든 식물에게 공평하니까요. 동물은 스스로 자연으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남의 몸을 의지합니다.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이죠. 그 꼭대기에 물론 사람이 있습니다.

소는 원래 들꽃과 풀과 냇가의 물을 먹는 동물로 조물주로부터 그것에 맞는 적당한 몸을 받았습니다. 부족한 영양분을 되새김질로 보충하기 위해 위를 더 가진 것이고요.

소가 그저 음식이 아닌 집안의 노동력으로 사람과 공생하던 시절, 초봄 논갈이에 거의 녹초가 된 소에게 아버지가 산낙지를 먹이는 것을 본 적 있습니다. 먹지 않으려는 소의 입을 억지로 벌려 마른 짚과 함께 넣으시며 ‘그래 고생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 욕심보다 미안함 때문에 그러했으리라 짐작합니다만 효과는 분명 있습니다. 없이 살던 시절, 사람도 먹지 못하는 낙지를 그냥 주었을 리 없습니다.

소가 미치고 있습니다. 먹으면 안 되는 것, 먹을 수 없는 것, 흔히 말하는 동물성 사료를 먹은 소가 이상한 병에 걸렸고 사람들은 그것을 광우병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탐욕이 부른 광우병-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우리 조상들은 동네잔치를 했습니다. 소뼈는 고아서 먹었고 내장은 잘 씻어 탕으로 먹었고 고기는 육회로 먹었고 가죽은 말려 북을 만들고 가죽 안쪽 껍데기는 잘 말려 술안주로 먹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소를 서양 사람들은 살코기만 먹습니다. 비싼 사료를 먹여 기른 소인데 전체 중량의 반 이상을 버려야 하니 아까웠던 모양입니다. 내장과 뼈 등을 모아 말립니다. 가루를 내 다시 소에게 먹였습니다. 전에 풀만 먹던 소가 뼈와 내장을 먹으니 이전보다 잘 크고 고기도 더 맛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먹이게 됩니다. 결국 탈이 났습니다. 광우병이 사람에게 옮겨왔습니다. 병을 일으키는 프레온이라는 변형 단백질은 존재 사실 자체만 알려졌을 뿐 생성과정이나 퇴치 방법 등이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약이 없습니다. 걸리면 100% 죽는 병입니다. 비뚤어진 인간의 탐욕이 결국 지구상에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은 뒤틀린 위험물질을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복제하고 세포끼리 전염되는 이 물질은 사람들이 종교처럼 신봉하는 효율과 경쟁의 결과 위에 참담하게 군림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인위적으로 개조하는 것을 과학이라 말했고 필요 이상의 속도로 생산하는 것을 효율이라 했습니다. 경쟁은 계절과 환경과 토양과 심지어 태양까지 만들었고 그렇게 성공한 농업을 선진국 농업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성공한 사람을 신지식인이라 했고, 지금도 경쟁상대인 미국 농민을 닮아야 하는 한국의 농민은 기준치 이상의 항생제와 입으로 담을 수도 없을 만큼의 성장 호르몬으로 소를 키우고 채소를 생산합니다. 겨울 난방비를 감당하기 위해 더, 더, 마지막에 그래도 하나 더 라고 외치며 하우스 밀식(密植) 재배를 합니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곰팡이와 해충은 고스란히 농약의 몫입니다. 많이, 빨리, 싸게 생산하는 미국 농업과 경쟁하기 위해 종자와 재배기술과 농약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습니다.

광우병의 심각함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시민단체를 대표해서 나온 학무모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럼 한우는 안전합니까?” “보리도 먹이고 옥수수 대를 직접 재배하여 먹이는 농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최소한 뼛가루는 먹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부끄러웠습니다. 그 많은 사료 중 내용물을 전부 국산으로 한다는 사료를 본 적 없고, 주재료는 옥수수인데 거의 미국산이며 유전자 변형농산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60년 우리농업 다시 시작하자-

질 좋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은 농민의 의무지요. 그렇지만 당장 먹고 살기 힘든 농민에게 생산자의 도덕성만 말하면 너무 가혹합니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 농업은 철저하게 서구식 자연착취, 동물착취 농업으로 변화되어 왔습니다. 자연과 동물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원상을 복구해야 합니다. 많은 비용과 시간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